
데일리연합 ] ‘MBC 시사매거진 2580 (864화, 2013년 7월 28일 방영분)’에는 ‘딸기찹쌀떡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대기업과 조폭에게 희생된 ‘한 청년의 억울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당시 억울한 사연의 주인공이자 ‘을’로 다뤄졌던 ‘김’씨의 현재 근황과 악덕동업자이자 ‘갑’으로 알려졌던 ‘안’씨의 생활을 취재했다.
방송 이후 2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억울한 청년 김씨는 과일찹쌀떡 전문 브랜드인 ‘M’브랜드를 창업하여 전국에 10여개의 가맹점을 거느리고 있으며 중국진출을 앞두고 있다. 반면 악덕동업자 안씨는 명동에 2평짜리 가게 하나만을 근근이 운영 중이다.
이 결과는 과연 억울한 청년의 진심을 알아준 사회정의의 승리일까.
사건의 실체는 알려진 내용과 달랐다.
100년 전통의 일본장인에게 기술을 배워왔다던 청년 김씨는 실제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온 사실이 없다. 기술을 전수해준 것으로 김씨가 지목한 일본의 장인을 찾아가 2015년 2월 1일 인터뷰 해본 결과 일본장인은 “김씨를 제자라 생각하지 않고, 기술을 가르쳐준 것도 아니며, 본인은 과일찹쌀떡의 장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씨는 ‘딸기찹쌀떡’ 상품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일까.
사실 원조 기술자는 악덕동업자로 알려진 안씨였다. 안씨는 2012년 말 명동에 가게를 개업하였고 ‘딸기찹쌀떡’의 판매를 시작하였다. 이후 2013년에 ‘딸기찹쌀떡’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던 김씨를 만났다. 안씨는 과거 자신처럼 고생하는 김씨를 안타까워하여 기술을 전수해줬다. 안씨와 김씨는 동업자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경영을 전담하고 있던 김씨의 매출실적 누락과 ‘SBS 생활의 달인(384화, 2013년 6월 10일 방영분) 방송내용(김씨가 단독으로 달인으로 출연)' 관련 문제 등으로 둘 사이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결국 2013년 6월 안씨와 김씨는 갈라섰다.
사건의 발단은 김씨가 2013년 6월 26일과 27일에 네이트판과 카카오스토리에 자신이 억울하다는 허위사실의 글을 올리면서 시작된다. 김씨는 ‘SBS 생활의 달인에 나온 내용처럼 본인이 원조 기술자인데, 안씨가 조폭과 대기업을 동원하여 투자금과 기술을 빼앗았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슈는 2013년 당시 ‘갑의 횡포’ 논란이 일고 있던 사회 속에서 ‘젊은 청년의 억울한 사연’으로 국민의 관심을 얻었다. 방송된 내용만을 본 국민들은 김씨의 거짓 억울함에 속아 다음 아고라에 김씨를 격려하는 서명운동까지 이어갔다. 분노한 네티즌들의 서명은 27,408명에 달했다.
이후 김씨는 강남구 신사동에 ‘딸기찹쌀떡’이라는 동일상품으로 ‘M‘브랜드를 창업했다. 언론과 여론의 힘을 얻은 김씨는 자신의 사업을 프랜차이즈로 발전시켰고 전국에 10개 이상의 가맹점을 둔 상태이다. 반면 여론의 몰매를 맞은 안씨는 여전히 명동의 가게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안씨는 “진정 억울한 건 자신인데 세상 누구도 몰라줬다. 심지어 자신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보는 주변 시선이 두렵다”고 말했다.
이어 안씨는 “2580방송보도 이후 2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가게에 오는 손님들 중 몇몇은 사건의 진실을 묻는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직후에는 수많은 욕설과 비난 문자를 받아 핸드폰 번호까지 바꿨고 지금까지 신경안정제를 먹는다”고 전했다. “그간 추진 중이던 사업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현재 유일한 명동점 매출마저 떨어져 노점판매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본지와의 인터뷰 중 기자가 김씨에게 '김씨가 주장하는 일본스승이 김씨를 제자로 생각하지 않고 딸기찹쌀떡 상품의 장인 또한 아니라는 인터뷰 내용'을 보여주자 김씨는 더 이상 기자와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기사를 내보내지 말아 달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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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이후 2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억울한 청년 김씨는 과일찹쌀떡 전문 브랜드인 ‘M’브랜드를 창업하여 전국에 10여개의 가맹점을 거느리고 있으며 중국진출을 앞두고 있다. 반면 악덕동업자 안씨는 명동에 2평짜리 가게 하나만을 근근이 운영 중이다.
이 결과는 과연 억울한 청년의 진심을 알아준 사회정의의 승리일까.
사건의 실체는 알려진 내용과 달랐다.
100년 전통의 일본장인에게 기술을 배워왔다던 청년 김씨는 실제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온 사실이 없다. 기술을 전수해준 것으로 김씨가 지목한 일본의 장인을 찾아가 2015년 2월 1일 인터뷰 해본 결과 일본장인은 “김씨를 제자라 생각하지 않고, 기술을 가르쳐준 것도 아니며, 본인은 과일찹쌀떡의 장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씨는 ‘딸기찹쌀떡’ 상품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일까.
사실 원조 기술자는 악덕동업자로 알려진 안씨였다. 안씨는 2012년 말 명동에 가게를 개업하였고 ‘딸기찹쌀떡’의 판매를 시작하였다. 이후 2013년에 ‘딸기찹쌀떡’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던 김씨를 만났다. 안씨는 과거 자신처럼 고생하는 김씨를 안타까워하여 기술을 전수해줬다. 안씨와 김씨는 동업자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경영을 전담하고 있던 김씨의 매출실적 누락과 ‘SBS 생활의 달인(384화, 2013년 6월 10일 방영분) 방송내용(김씨가 단독으로 달인으로 출연)' 관련 문제 등으로 둘 사이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결국 2013년 6월 안씨와 김씨는 갈라섰다.
사건의 발단은 김씨가 2013년 6월 26일과 27일에 네이트판과 카카오스토리에 자신이 억울하다는 허위사실의 글을 올리면서 시작된다. 김씨는 ‘SBS 생활의 달인에 나온 내용처럼 본인이 원조 기술자인데, 안씨가 조폭과 대기업을 동원하여 투자금과 기술을 빼앗았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슈는 2013년 당시 ‘갑의 횡포’ 논란이 일고 있던 사회 속에서 ‘젊은 청년의 억울한 사연’으로 국민의 관심을 얻었다. 방송된 내용만을 본 국민들은 김씨의 거짓 억울함에 속아 다음 아고라에 김씨를 격려하는 서명운동까지 이어갔다. 분노한 네티즌들의 서명은 27,408명에 달했다.
이후 김씨는 강남구 신사동에 ‘딸기찹쌀떡’이라는 동일상품으로 ‘M‘브랜드를 창업했다. 언론과 여론의 힘을 얻은 김씨는 자신의 사업을 프랜차이즈로 발전시켰고 전국에 10개 이상의 가맹점을 둔 상태이다. 반면 여론의 몰매를 맞은 안씨는 여전히 명동의 가게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안씨는 “진정 억울한 건 자신인데 세상 누구도 몰라줬다. 심지어 자신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보는 주변 시선이 두렵다”고 말했다.
이어 안씨는 “2580방송보도 이후 2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가게에 오는 손님들 중 몇몇은 사건의 진실을 묻는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직후에는 수많은 욕설과 비난 문자를 받아 핸드폰 번호까지 바꿨고 지금까지 신경안정제를 먹는다”고 전했다. “그간 추진 중이던 사업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현재 유일한 명동점 매출마저 떨어져 노점판매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본지와의 인터뷰 중 기자가 김씨에게 '김씨가 주장하는 일본스승이 김씨를 제자로 생각하지 않고 딸기찹쌀떡 상품의 장인 또한 아니라는 인터뷰 내용'을 보여주자 김씨는 더 이상 기자와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기사를 내보내지 말아 달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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