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거인병’을 앓고 있는 여고생이 지하철역에서 쓰러진 60대 할머니를 심폐소생술(CPR)로 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할머니가 쓰러진 현장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으나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여고생은 학교에서 배운 심폐소생술을 침착하게 실행했다.
경남 양산여고 3학년인 윤혜신(18·사진 오른쪽) 양은 지난해 10월 17일 오후 2시쯤 학교 현장학습을 마치고 친구와 지하철을 타고 부산 서면으로 가던 중이었다. 윤 양은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연산동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을 때 갑자기 앞쪽에서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환승 통로 모퉁이를 돌아서 가보니 할아버지가 쓰러진 할머니를 안고 애타게 주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주변에 30여 명이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윤 양이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해보겠다며 숨을 쉬지 않는 할머니를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얼마나 세게 가슴을 눌렀던지 ‘우두둑’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3∼4차례 더 강하게 가슴을 누르자 할머니가 숨을 쉬며 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윤 양은 외투를 벗어 할머니를 덮어주고 다리를 주무르며 119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18분 후 도착한 119는 할머니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할머니는 이날 인근 병원에서 평생 알지도 못했던 선천성 협심증 진단을 받고 심장혈관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응급실 전문의는 할아버지에게 “전문가가 심폐소생술을 했으면 갈비뼈가 4∼5개 부러졌을 것”이라며 “학생이 비전문가인데도 아주 잘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4개월이 지난 지금 할머니는 건강한 삶을 되찾아 할아버지와 산책도 하며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윤 양은 중학교 3학년 때 뇌하수체에서 종양이 발견돼 대수술을 받았지만, 말단비대증(거인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성장호르몬의 과다분비로 손과 발, 코, 턱 등이 커지고 다리는 X자로 휘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까지 어려워졌지만 윤 양은 내신이 2∼3등급으로 성적이 우수하고 성격도 활달한 여고생이다.
윤 양의 도움으로 삶을 되찾은 김미화(62) 할머니는 “퇴원하는 날 혜신이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했더니 오히려 나에게 살아나 줘서 고맙다며 울먹였다”면서 “내 생명을 구한 은인인 혜신이와 자주 만나 밥도 먹으며 평생 가족처럼 살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소방안전본부는 지난 1월 19일 김 할머니를 구한 공로로 윤 양에게 ‘부산 제506호 하트 세이버(심장을 구하는 사람)’ 인증서를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