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통의 똑똑한 '아스피린'
아스피린은 해열진통제다. 그런데 해열진통제로서 사용하는 용량보다 조금만 먹으면 아스피린은 또 다른 '재주'를 발휘한다.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다. 이를 '저용량 아스피린 요법'이라 한다.
심혈관계 질환이란 심근경색(심장마비)과 뇌졸중(중풍)을 말한다. 두 가지 병은 혈관이 막혀서 생긴다. 여러 이유로 인해 피가 뭉쳐 혈전(피떡)이 생기고, 혈전이 심장으로 가는 혈관을 막으면 심근경색이 온다. 뇌로 가는 혈관이라면 뇌졸중이다.
아스피린은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도와준다. 생성 속도를 느리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스피린을 매일 먹으면 피가 잘 뭉치지 않게 돼,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이 줄어드는 것이다.
저용량 아스피린이 도움이 되는 가장 확실한 집단은 심근경색과 뇌졸중을 이미 겪은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심근경색이 와서 치료를 한 사람은 심근경색이 또 다시 발생할 위험이 높은데, 아스피린은 이런 2차 심근경색 위험을 줄여준다.
이는 매우 확실한 의학적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다. 때문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치료하는 의사는 환자에게 아스피린 혹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다른 약물을 반드시 처방한다. 환자 개별적으로 아스피린 복용 여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반면 1차 심근경색 및 뇌졸중 예방효과는 이야기가 조금 복잡하다. 아직 두 질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앞으로 발생할 위험이 높은 사람은 아스피린을 먹어서 예방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건 아니다.
◆1차 예방효과는 사람마다 달라
1차 예방을 위한 아스피린의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이 먹으면 좋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는 지침(가이드라인)이 많이 있는데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의사가 어떤 지침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같은 환자라도 아스피린을 권할 수도, 필요없다고 할 수도 있다.
기본적인 판단 기준은 기대할 수 있는 예방효과의 크기와 예상되는 부작용의 위험 정도를 비교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발생 위험이 평균 이상으로 높은 사람은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을 경우엔 부작용을 피하는 게 현명하다.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원인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 고령, 비만 등이다. 이런 위험인자가 많고 심각할수록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이 높은 것이고, 이런 사람은 아스피린을 먹어 예방하는 방법을 택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 본인이 위험과 부작용을 비교해 복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뚱뚱하고 고혈압이 있으니 아스피린을 먹어야겠다"고 스스로 판단해선 곤란하다. 비만과 고혈압이 심근경색의 위험인자임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위험수준이 부작용을 상쇄할 만큼 큰 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전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깐깐해서 손해볼 일은 없다
최근에 발표된 관련 연구는 의사들로 하여금 아스피린을 좀 더 '소극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높다. 아스피린의 1차 예방효과를 본 과거 연구를 종합해보니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게 이 연구의 결론이다. 물론 심근경색과 뇌졸중 예방효과도 있었다.
아스피린의 대표적 부작용은 위장 속 출혈문제다. 흔히 아스피린을 먹으면 속이 쓰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이 심하면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 위장관 출혈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결론적으로 환자 입장에선 '아스피린 요법'을 모르고 사는 것보단 한 번쯤 고려해보는 게 좋다. 본인이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면 병원을 찾아 의사와 상의하라. 최종 판단은 의사가 하는 편이 안전하다. 아스피린은 제대로 사용할 때 '명약'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행 지난 구닥다리 해열제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