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금잔디광장에서
입학사정관제 합격자모임 학생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지금 세상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라면, 나는 ‘고3 엄마’와 ‘고3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 나누겠다. 수능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3년을, 6년을, 아닌 12년을 준비한 날이 아닌가. 나는 2년 전에도 고3 엄마였다. 그러니 고3 엄마를 한번 경험한 고3 엄마이다. 고로 아는 것도 참 많을 것 같은데, 작은놈은 큰놈과 달리 미술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2년 전의 경험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2년 전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시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큰 아이는 목표하는 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그해 유독 쉬웠던 국어에서 실수를 했다. 방송에서는 수능이 끝나기 무섭게 몇 점이라야 1등급이니 2등급이니 말들이 쏟아졌고, 그것은 거의 정확하다고 했다. 오랜 시간 노력한 꿈은 수능을 치른 바로 그날 좌절되었다.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와 암흑과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일찍이 준비해 두었던 카드를 하나 꺼냈다. 이날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의 36층에서 일본 Y대학의 입시설명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알아둔 것이었다.
엄마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나온 아들이었지만 바깥바람을 쐬면서 얼굴색이 조금씩 변했다. 입시설명회야 어디나 그렇듯이 참 좋은 말만 한다. 좋은 학교이고, 졸업 후 전망도 밝다는 말에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세상에는 많은 학교가 있고, 나의 희망을 담을 수 있는 여러 모양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휴식시간 아들은 36층의 창을 통해서 서울을 내려다보면서 “서울이 이랬구나”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놈이 서울을 처음 본 사람 같다.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놈이 비로소 얼굴을 들고 세상을 본 것이다. 결국 Y대학을 가지는 않았지만 이날 아들이 만난 것은 미래를 향한 큼직한 눈이었다고 확신한다.
둘째가 수능을 준비하는 이 시간에 나는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는 다양한 기관을 찾았다. 대학만이 아니라 전문학교도 있고 기술학교도 있다. 6년이나 예술학교를 다녔으니 아예 일을 하면서 미술 공부를 더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일본 미술학교의 설명회가 있어서 아이의 그림을 들고 찾아갔다. 우리 아이는 지금 수능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이가 보지 못하는 곳에 다양한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내신이 몇 등급이고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몇 등급이고 이런 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아이가 무엇을 전공하고 싶어 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입시에 맞추어서 준비한 것은 서양화인데, 사실 그것을 진정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확신이 없다.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사정관은 “엄마에게는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지요”라고 내 대답을 대신한다.
나는 지금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찾고 있다. 세상은 넓고 네가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일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인생을 길게 볼 수 있는 눈을 아이만이 아니라 엄마도 갖고 싶기 때문이다.
고선윤 백석예술대학교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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