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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선윤 칼럼]모든 일에는 멈춤이 있더라

 
 <사진제공 : 코리아뉴스타임즈> 글 :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중학생이 된 딸아이가 마구 자라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어제 입었던 교복이 작아져서 오늘 다시 사러가야 할 형편이었다. 발도 엄청나게 커졌다. 시집보내려면 전족을 해야 한다고 지 오빠는 놀린다. 먹기도 얼마나 잘 먹는지 토스트를 마치 비스킷 먹듯 한다.

이렇게 자란다면 키가 170cm은 훌쩍 넘을 것이고 발도 엄청 클 것이다. 아들도 아니고 딸이 너무 크면 이것도 걱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교복 치마를 수선하고 아직 멀쩡한 신발을 작아졌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야 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백화점 세일이라 찾았더니 마침 메이커 신발을 균일가로 팔고 있었다. 교복에 어울리는 단화가 있어서 이때가 기회다 하고 사이즈별로 골랐다. 235cm, 240cm, 245cm, 250cm 네 켤레. 255cm도 담을까 했지만, 보트만한 크기에 망설여졌다. 그리고 이렇게까지는 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내려놓았다. 네 켤레 똑같은 모양의 신발을 신장에 나열하니 한동안은 신발 걱정은 없을 거라는 마음에 뿌듯했다.

235cm, 240cm의 단화는 뒷굽이 닳기도 전에 버려졌고, 245cm의 단화를 신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현관이 놓인 딸아이의 구두를 보니 너들너들 헌 구두가 되어 있었다. 245cm의 신발을 한 학기 이상 신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키도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멈춘 것 같았다.

1~2년 사이에 폭풍 성장을 한 딸아이의 키는 165cm, 발은 245cm. 내년에 대학생이 되는데 그대로다. 노력해서 살이 좀 빠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전족을 해야 하니 어쩌니 했건만 지금 보니 요즘 아이들치고는 그리 큰 것도 아니다.

신장에는 한 번도 신지 않은 250cm의 단화가 있다. 헤아려보니 5년이나 주인을 기다리고 기다렸건만 결국 한 번의 손길도 받지 못하고 버려져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이 시간이 영원할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길어야 20년이다. 젖병을 사고, 책가방을 사고 성장해가는 그 마디마디마다 필요한 것들을 사 모으면서 많아지는 물건들을 보고 삶은 계속해서 팽창할 것으로 여겼건만 250cm의 구두가 남겨지는 것처럼 조용히 멈추는 시간이 있다.

우리나라의 무한 경쟁 교육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엄마들까지 참 힘들게 한다. 11월 찬바람 속에서 치러지는 수능은 한 아이의 12년 노력에 대한 결과물로 나타난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자식이 이 날을 위해서 잘 달려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한다.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달린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없다고 생각하고 찾지 않았을 뿐, 브레이크는 분명 존재하고 때가 되면 멈춘다. 여하튼 영원한 것은 없다.

어디까지 자랄지 몰랐던 딸아이의 키도 발도 중학교 2학년 겨울 이후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교복을 수선하러 다니는 일도 새 신을 사러가는 일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영원할 것 같았던 수능에 대한 열망도 올해로 졸업이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지레 당겨서 겁먹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닥치면 다 할 수 있는 일이고, 때가 되면 멈추는 일이다.

250cm의 구두를 사고, 255cm의 구두까지 사려고 했던 지난 시간의 나의 모습이 그냥 웃기기만 하다. 우리집 신발장에 남겨진 250cm의 신발 주인을 찾아야겠다. 올 망년회 때 ‘신데렐라를 찾습니다’는 문구와 함께 이 신발을 들고 나갈까 생각 중이다.

데일리연합뉴스팀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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