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텐진호 선원들이 해적들의 공격에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대형 선박에 설치된 '긴급피난처' 때문이다. '요새(citadel)'를 의미하는 긴급피난처는 해적이 배에 올라탔을 경우 선원들이 구출작전 때까지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다.
해운사 선박마다 비상상황이 벌어지면 버튼을 눌러 외부에 알리고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은 전원 피난처로 이동하는 훈련을 실시한다. 이번에도 박상운(47) 선장 등 한진텐진호 선원들은 이 매뉴얼을 그대로 따랐다. 해적 공격을 받자마자 비상 버저를 눌러
한진해운 본사에 알렸다. 그리고 엔진을 끄고 선원들은 연습한 대로 선박 내 피난처로 들어갔다.
긴급피난처는 보통 빠른 시간 내에 조타실·기관실·선실 등에 흩어져 있던 선원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에 둔다. 컨테이너선·화물선·탱크선 등 배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배 중앙에 두는 경우가 많다. 20여 명이 근무하는 선박이라면 피난처 규모는 20~30평 안팎이라고 보면 된다. 김종도 한진해운 전무는 "컨테이너선의 경우 내부가 복잡하기 때문에 해적들이 피난처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선박에 마련하는 피난처는 두꺼운 철제문을 갖추고 있다. 내부에서 문을 잠그면 밖에서 열 수 없게 돼 있다. 출입문의 두께는 총으로 뚫리지 않도록 두께 13㎜ 이상의 강철로 만들도록 돼 있다.
피난처는 1주일가량 선원들이 생활할 수 있는 시설과 물품을 모두 갖춰놓고 있다. 간이 화장실과 군대용 압축식량, 근거리통신용 워키토키, 위성전화, 구급약품, 전등, 의자, 담요, 물 등이 필수적으로 구비돼 있다.
이번에 납치 위기를 겪은 한진텐진호의 경우 장거리 대신 근거리 통신용 무전기만 갖추고 있었다. 한진해운은 "한진텐진호가 5월 말 부산항에 입항하면 위성통신을 피난처에 설치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삼호주얼리호 사건 때는 선원 21명이 소말리아 해적을 피해 피난처로 대피했지만, 해적들이 피난처 천장을 뚫고 들어왔었다.
국토해양부 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선박 안의 긴급피난처 규정을 강화했고, 한진텐진호는 긴급 피난처를 더 튼튼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