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인천 2.1℃
  • 흐림수원 3.7℃
  • 청주 3.0℃
  • 대전 3.3℃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여수 8.3℃
  • 흐림제주 10.7℃
  • 흐림천안 2.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국제

12월 이야기, '누가 이 씰을 모르시나요?' 12月故事,“谁不知道圣诞募捐活动?”

 

데일리연합(월간, 한국뉴스신문) 박준영 기자 |

 

 

(왼쪽부터) 1934년 아기업은여인, 1935년 널 뛰는 소녀, 1936년 연 날리는 어린이, 1937년 팽이치는 소년

▲(왼쪽부터) 1934년 아기업은여인, 1935년 널 뛰는 소녀, 1936년 연 날리는 어린이, 1937년 팽이치는 소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연말이면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수 준비하던 시절이, 우표와 함께 씰을
사려고 줄을 서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요즘도 결핵이 있어요?” “크리스마스 씰이 아직도 나와요?”

씰은 진화를 반복하며 여전히 발행되고 있다.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는 일이 적어져 씰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취지는 120년 전 덴마크의 한 우체국 직원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 그대로다.

 

씰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2021년 크리스마스 씰은 MBC <놀면뭐하니?>와 콜라보해 씰과 키링, 머그컵 등 다양한 형태로 발행됐다, 대한결핵협회 제공

▲ 2021년 크리스마스 씰은 MBC <놀면뭐하니?>와 콜라보해 씰과 키링, 머그컵 등 다양한 형태로 발행됐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샀던 기억이 언제인가. 씰은 결핵 퇴치를 위해 무려 12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 지구적 모금 운동이다. 우리는 지금 씰은커녕 우표를 살 일도 없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수집가가 아닌 다음에야 크리스마스 씰을 사 우표 옆에 가지런히 붙일 때의 뿌듯함을 잊고 살 수밖에 없다.

 


과거 국내 최초로 씰을 발행하던 시절처럼 결핵을 유전병으로 아는 사람씰을 가슴에 붙인 채 결핵이 낫기를 바라는 사람은 이제 없다. 다만 ‘요즘도 결핵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누군가는 ‘아직도 크리스마스 씰이 나오느냐’고도 한다. 씰은 지금도 계속 발행되고 있다. 아쉽게도 결핵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연말을 맞아 한때 온 국민에게 ‘최소한의 기부’와도 같았던 크리스마스 씰의 역사를 살펴본다.

 

 

 박준영 기자

사진 대한결핵협회

 

 

한 사람의 따뜻한 아이디어,
전 세계적 모금 운동 되다

먼저 세계 최초의 씰이 나오던 19세기 말, 유럽으로 가보자. 19세기 말은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했던 시기다.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성이 착하고 어린이를 좋아했던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 ‘아이날 홀벨’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늘 안타깝게 여겼다. 그러던 중 연말에 쌓인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던 그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동전 한 닢짜리 작은 그림을 만들어 우표와 함께 붙여 보내는 캠페인을 하면 어떨까? 모인 동전으로 결핵 퇴치 기금으로 사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최초의 씰을 발행한 아이날 홀벨(좌). 본문에는 직원이라고 썼지만, 우체국장이었다는 설도 있다. 하긴 일개 직원이었다는 것보다는 신빙성이 높아 보이긴 한다. 게다가 관상과 눈빛도 국장이 어울리기도 하다.&nbsp;오른쪽은 그가 만든 세계 최초의 씰이다. 바로 이 씰 한 장이 세상의 연말을 바꿨다.

▲ 최초의 씰을 발행한 아이날 홀벨(좌). 본문에는 직원이라고 썼지만, 우체국장이었다는 설도 있다. 하긴 일개 직원이었다는 것보다는 신빙성이 높아 보이긴 한다. 게다가 관상과 눈빛도 국장이 어울리기도 하다. 오른쪽은 그가 만든 세계 최초의 씰이다. 바로 이 씰 한 장이 세상의 연말을 바꿨다.

 


그의 아이디어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천 9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마침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로 세상에 나왔다. 그의 소박한 발상은 많은 덴마크인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었고, 후에 전 세계가 함께 할 크리스마스 씰 모금 운동의 원형이 됐다.

 


덴마크 넘어 신대륙 건너간 씰
세계를 움직이기 시작하다


어느 날 덴마크에서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이 붙은 편지 하나가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갔다.

 


덴마크계 미국인 작가 ‘자콥 리이스’는 고향에서 보낸 편지 봉투에 붙은 씰을 보고 크게 감명받는다. 형제 중 6명을 결핵으로 잃은 그는 결핵의 비극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핵 기금 마련을 위한 씰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에밀리 비셀과 함께 결핵 환자를 치료하는 한 병원의 운영비를 마련하는 씰 모금 운동에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두 사람의 의지에 감동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1907년 미국 최초의 씰이 ‘윌밍톤 우체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호응도가 낮았다.

 

 

 

미국 최초의 씰을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에밀리 비셀은 아래와 같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 미국 최초의 씰을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에밀리 비셀은 아래와 같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위대한 사상은 생각이 깊은 이들에게만 전해지지만,

위대한 행동은 모든 인류에게 전해진다.

-에밀리 비셀

 

 

이에 에밀리는 신문사를 찾아가 ‘씰 운동을 기사에 실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마침내 마음이 움직인 편집장은 씰 운동 이야기를 기사로 내보냈다. 지역사회 언론을 통해 씰 운동 이야기가 전달되면서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회의장이 모금에 앞장섰고, 시민들의 참여도 본격화했다.

 

각국의 초판 씰의 모습, 대한결핵협회 제공<br>
&nbsp; &nbsp; (왼쪽부터) 노르웨이(1911), 프랑스(1927), 영국(1933), 인도(1955), 캐나다(1957)

▲ 각국의 초판 씰의 모습, 대한결핵협회 제공
    (왼쪽부터) 노르웨이(1911), 프랑스(1927), 영국(1933), 인도(1955), 캐나다(1957)

 

씰 운동, 유럽 전역 일파만파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움직여

덴마크와 미국에서 씰 운동이 성과를 거두자 곧 스웨덴, 독일, 노르웨이 등 주변국이 뒤따랐다. 1912년에는 루마니아까지 전파됐다.

 

 

아시아에서는 1910년 필리핀이 가장 먼저 씰을 발행했고, 1924년에는 일본 결핵예방회도 뒤를 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씰 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1925년 이후로는 프랑스, 벨기에, 체코, 영국, 포르투갈, 폴란드,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와 칠레, 우루과이, 브라질, 콜롬비아, 쿠바, 파나마, 페루,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국가는 물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 남아프리카와 튀니지 등의 아프리카 대륙까지 운동이 퍼져나가며, 세계 120여 개국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기에 이른다.

 


인류 공동의 적, 결핵
“로렌 십자로 맞서자”


씰에 항상 들어가 있는 상징이 있다. 빨간색 ‘복십자’다. 십자가는 아니지만 비슷한 모양의 상징이 그려져있고, 명칭도 ‘크리스마스 씰’이니 씰 운동이 기독교에서 출발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붉은 십자 상단에 가로획이 하나 더 있는 복십자는 실제로 9세기경 한 그리스도 교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이후 제1차 십자군 지휘관인 ‘로렌 공’이 이를 방패 문양으로 쓰면서 평화와 희망의 표상이 돼 ‘로렌 십자’로도 불렀다.

 

 

1953년 크리스마스 씰. 소녀 왼쪽에 그려져 있는 문양이 복십자다.

▲ 1953년 크리스마스 씰. 소녀 왼쪽에 그려져 있는 문양이 복십자다.

 


‘제1회 국제결핵예방회의(베를린, 1902)’에서 “인류 공동의 적인 결핵과의 싸움에서 로렌 십자를 국제 상징으로 삼자”는 프랑스 대표의 제안에 만장일치로 결의된 후로 로렌 십자는 결핵 예방 운동에 있어 만국 공통의 기치가 됐다.

 

 

한국 최초의 씰을 발행한 셔우드 홀. 대한민국 초판 씰의 모습, 대한결핵협회 제공

▲ 한국 최초의 씰을 발행한 셔우드 홀. 대한민국 초판 씰의 모습, 대한결핵협회 제공

 


한국 최초 씰 창시자, 셔우드 홀
“씰 붙여봤는데도 결핵이 안 나아요!”


셔우드 홀은 1932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며 다음과 같이 발행 취지를 밝혔다.

 

“첫째로 한국인에게 결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둘째로 부자든 가난한 이든 모두 살 수 있도록 저렴한 씰을 만들어 만인을 항결핵운동에 참여시키며, 셋째로 재정이 절실한 결핵퇴치사업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실제로 초창기 크리스마스 씰 모금은 결핵에 대한 교육과 홍보 목적이 컸다. 우리나라 환경이 결핵이라는 병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했기 때문이다.


결핵을 앓던 한 여인이 씰을 가슴에 붙인 채 셔우드 홀을 찾아와 “선생님, 씰을 이렇게 가슴에 붙였는데도 결핵이 낫지 않습니다”라고 호소한 일화는 결핵에 대한 낮은 인식과 기부 개념이 없던 당시 사회상을 보여준다.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는 질환인 결핵이 가족 간 전염을 일으키자 이를 유전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하니 ‘방역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 크리스마스 씰의 홍보물 변천사

▲ 한국 크리스마스 씰의 홍보물 변천사

 

 

‘캐한민국’ 사람, 셔우드 홀
“한국에서 잠들고 싶어”


셔우드 홀은 캐나다인이었지만, 1893년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한국의 가난한 결핵 환자와 서민을 돌보고 계몽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캐나다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26년 해주 구세병원에서 일하다가 1928년 해주 구세요양원을 설립했다.


당시 함께 일하던 문창모 박사와 김병서 선생(크리스마스 씰 위원회 집행위원)이 그의 씰 운동을 물심양면 도왔다. 그렇게 숭례문(남대문)을 도안으로 한 국내 최초 씰이 발행됐고, 이후 1940년까지 9개의 씰이 발행됐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일본 헌병대에 첩자로 몰린 셔우드 홀이 강제 추방되는 일이 발생했다. 씰 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그가 추방되자 씰 발행도 중단됐다.

 


셔우드 홀은 1991년 4월 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9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유언에 따라 그는 자신의 부모가 묻힌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안장됐다. 같은 해 9월 그의 부인도 셔우드 홀을 따라 그의 옆자리에 묻혔다.

 

 

씰 운동에 대한 오해
“난 불자라서 씰 안 사!”


중단됐던 씰 운동은 광복 후인 1949년, 문창모 박사가 주도해 한국복십자회에서 재개했고, 1952년에는 한국기독의사회에서 씰을 발행했다. 이후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비로소 창립되면서 범국민적인 모금 운동이 펼쳐지게 됐다.

 

 

미군장병들이 모금한 14,609 달러를 전달하고 있는 주한 미8군 사령관의 모습(1955.1.20), 대한결핵협회 제공

▲ 미군장병들이 모금한 14,609 달러를 전달하고 있는 주한 미8군 사령관의 모습(1955.1.20), 대한결핵협회 제공

 


이때부터 씰 운동은 결핵 퇴치사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씰 모금이 기독교에서 시작됐다는 오해로 불교 등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부터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사와 학생 등 온 국민이 씰 모금 운동에 참여했고, 초창기에는 미8군 장병이 동참하기도 했다.

 

 

결핵 발병률 1위, 사망률 3위의 한국
“요즘도 결핵 환자가 있나요?”

 


크리스마스 씰은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크리스마스 전후에 발행하는 증표다. 아직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우편으로 주고받던 시절, 크리스마스 씰을 사기 위해 우체국에서 줄을 서본 경험을 한 번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PC도 아닌 모바일로 소통하는 시대에 크리스마스 씰을 사용할 일이 적어지자 우리는 결핵의 존재도 잊어가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럴까.


대한결핵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우리나라 결핵 발병률은 OECD 가입국 중 1위이며, 결핵 사망률 3위다. 결핵으로 인한 국내 사망자 수는 1,356명이며, 신규환자 수도 19,933명에 이른다.

 

 

한 보건소 관계자는 “결핵 환자를 찾고, 방문해 치료받도록 독려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고 밝혔다. 결핵은 치료할 수 있는 병이지만, 완치되기까지는 번거로운 치료과정을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 중도 포기 사례도 잦고, 보건소와의 연락이 끊기거나 외면하는 환자도 많다. 목표 모금액의 97.4%를 달성한 2020년에 모인 총 30억 원 중 결핵 환자 발견사업(약 13억 원, 44%)과 대국민 결핵 인식개선(약 13억 원, 44%)에 가장 많은 모금액이 투입되는 이유다.

 

2021년 크리스마스 씰은 MBC 예능 프로그램 &lt;놀면뭐하니&gt;의 유재석의 부캐를 활용해 10개의 도안으로 발행됐다, 대한결핵협회 제공

▲ 2021년 크리스마스 씰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뭐하니>의 유재석의 부캐를 활용해 10개의 도안으로 발행됐다, 대한결핵협회 제공

 


진화하는 크리스마스 씰
형태는 달라도 취지는 같다


크리스마스 씰 모금 운동은 이제 우표 옆에 붙이는 형태만은 아니다. 인터넷 발달로 편지나 카드를 우편으로 부치는 일이 줄어들자 씰도 달라져야 했다.

 


2007년 이후 전자파 차단스티커 형태부터 다양한 상품(머그잔, 키 링, 모빌, 자석, 디자인 엽서 등)이 씰을 대신했다. 2020년에는 EBS 인기 캐릭터인 ‘펭수’를 활용해 매년 감소하던 모금액이 크게 늘어 목표 대비 97.4%를 달성하기도 했고, 올해는 유재석이 모델로 등장했다.

 

사람이 진화한다고 본질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형태가 달라졌지만 씰 운동의 모금 취지는 120년 전 덴마크의 한 우체부가 씰을 기획하던 그 마음 그대로다.

 

 

결핵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우리의 관심이 끊어져서는 안 될 이유다.

 

 

 

 

每日联合新闻(月刊,韩国新闻报道)朴俊英 记者 |

 

曾经有过那么一段经历。

年末的时候,为了亲手制作贺年卡或者圣诞贺卡的邮票和募捐卡而排长队等待的时节。

 

(왼쪽부터) 1934년 아기업은여인, 1935년 널 뛰는 소녀, 1936년 연 날리는 어린이, 1937년 팽이치는 소년

▲(从左边开始)1934年 背小孩儿的妇人,1935年 奔跑的少女,1936年 放风筝的少年,1937年 转冰陀螺的少年

 

 

有那么一个时期。

每到年末,贺年卡或者圣诞节的卡片,基本都是亲手准备和制作,和邮票一起的圣诞募捐活动的参与形式融合在一起的时节。

 

“最近结核病还严重嘛?” “圣诞节的募捐卡最近如何?”

 

圣诞的募捐卡的样式一直没有多大变化,结核疫情还在继续持续着。信笺贴上邮票传递的方式,近段时间虽然随着科技和互联网的发展而有所减少,募捐卡的样式虽然改变了不少,但是其宗旨亦如120多年的一个来自欧洲的平凡的邮局职员的质朴而又温热的心。

 

圣诞的募捐方式吗,仍然在我们周边围绕。

 

2021년 크리스마스 씰은 MBC &lt;놀면뭐하니?&gt;와 콜라보해 씰과 키링, 머그컵 등 다양한 형태로 발행됐다, 대한결핵협회 제공

▲2021年的圣诞募捐是和韩国MBC《闲着干嘛呢?》节目组一起合作,将圣诞募捐和钥匙链,马克杯等结合进行多种形态的衍生。

 

 

韩国结核病协会提供的近期圣诞相关的募捐是否还留存在脑海里。圣诞募捐,是为了抵抗结核疫情,这足足有120多年的历史渊源的全球性的集体爱心奉献行动。在现在如此的氛围下,抛开募捐不说,连基本的生活保障和营生都是问题的时代下,若不是专业的收藏家,已经平凡到只是作为邮票的一种贴在邮件上传送而已,似乎已经淡忘了募捐形式的故事的渊源。

 

前段时间韩国内最初正如圣诞募捐初次到来的时节一样,结核作为一种传染病在人群中传播开来,将通过募捐活动期盼结核病好转起来的人们几乎已经不存在了,证明人们的医学和科学的知识相对提高了不少。

 

但是,想再问一问“最近结核病还流行吗?”正如有人还会在征询最近是否有圣诞募捐是否还存在一样性质的疑问。募捐专用邮票还在发售。因为结核病还在这个世界蔓延和流行。

 

 

迎接年末的降临,正如给与所有韩国国民的“最低限度的资助”的爱心奉献活动一样,我们来一起回顾圣诞募捐活动是如何形成的。

 

编辑:朴俊嬴 记者

照片出自:大韩结核病协会

 

 

来自某人的温暖的畅想,成就了世界性的爱心奉献的规律性的运动。

 

世界上首创圣诞募捐的产品一样的19世纪末期,让我们将目光放逐到欧陆大地。19世纪末期是第二次工业革命的时期,也是结核病在全欧洲流行和蔓延的同期。当然,丹麦也不例外

 

 

天性善良且喜欢孩子的丹麦的哥本哈根的一个邮递员的职员“艾纳尔·霍尔贝尔”认为孩童们因为结核病而失去生命是一件非常痛苦的事情。一直抱有这样的想法的“艾纳尔·霍尔贝尔”在年末整理圣诞节积压的邮件和包裹的时候,脑海里突发奇想一个主意。

 

 

“将铜钱大小的图画刻在邮票上邮递的活动如何呢?将收集到的铜钱作为结核病防治的爱心支援金该有多好呢?“

 

 

최초의 씰을 발행한 아이날 홀벨(좌). 본문에는 직원이라고 썼지만, 우체국장이었다는 설도 있다. 하긴 일개 직원이었다는 것보다는 신빙성이 높아 보이긴 한다. 게다가 관상과 눈빛도 국장이 어울리기도 하다.&nbsp;오른쪽은 그가 만든 세계 최초의 씰이다. 바로 이 씰 한 장이 세상의 연말을 바꿨다.

▲世界最早发行圣诞募捐倡议活动的“艾纳尔·霍尔贝尔”在本文虽然被称作职员,但是也有传闻说是邮局局长。但是比起一位职员来讲,说是邮局局长来说更符合实际情况。再者外貌和眼神来看,与局长的气质非常的温和。右边是他本人制作的世界上首枚圣诞募捐的标识。正如这一张特别的邮票改变了世界上的年终的结束方式。

 

 

他的建议得到了丹麦当时的国王“基督9世”的积极的反馈和支持,恰逢1904年12月10日,作为世界的最早的圣诞募捐活动而确立起来。他的质朴的想法得到了很多丹麦当地人的共鸣和参与,将募捐活动推到了一个高度,之后也成为了世界性圣诞募捐活动的爱心奉献运动的最初原型和出处。

 

 

跨越丹麦过境和欧洲大陆,圣诞的募捐活动开始向全世界流行开来

 

某天,来自遥远的丹麦发行的圣诞募捐形式的信笺一份跨越大西洋传递到新大陆,到达美国境内。

 

丹麦籍美国作家“雅各布 路易斯”收到来自丹麦故乡的信笺的信封上看到了带有募捐形式的邮票之后受到了很大的震撼。因为结核病而失去6位家人的“雅各布 路易斯”对于结核病而造成的悲痛比谁都感同身受。

 

 

他和为了结核病防治而不断分走呼号的艾米莉 费舍尔一同开始了为建立一栋治疗结核病医院的运营费用的募捐活动中来。

 

 

因为俩人的事迹而深受感动的亲朋好友们的资助下,1907年,美国最早的募捐邮票从“威尔明顿邮局”开始正式发售。但是超乎想象的是,人们对于募捐邮票的好感度并不高。

 

미국 최초의 씰을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에밀리 비셀은 아래와 같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美国最初发起募捐形式的奠定了具有功勋地位的艾米莉 费舍尔总结了以下的名言。

 

伟大的思想,只在思想深邃的人群中传播,而伟大的行动会在全人类传播开来。

 

艾米莉 费舍尔

 

 

为此艾米莉专门找了报社(传媒公司)发出了如下的诚挚的请求“将募捐活动通过媒体的方式传播开来”正巧已经被说动的编辑局长经过反复考量后将募捐活动发布在了新闻头条报道

 

里。通过地区性的媒体报道的形式,将募捐活动的故事传递到大街小巷,同时,将总统,法院院长,国会议长也参与到了募捐活动的最前沿,市民们对于募捐活动的热情空前高涨。

 

각국의 초판 씰의 모습, 대한결핵협회 제공<br>
&nbsp; &nbsp; (왼쪽부터) 노르웨이(1911), 프랑스(1927), 영국(1933), 인도(1955), 캐나다(1957)

▲各国的出版的募捐活动的形式,大韩结核病协会 提供

(从左开始算起)挪威(1911),法国(1927),英国(1933),印度(1955),加拿大(1957)

 

募捐活动不仅仅是在欧洲全境得到了响应,一波未平一波又起,在亚非等洲际和国家,地区得到了积极的响应,在丹麦和美国的募捐活动得到丰硕的成果的同时,在瑞典,德国,挪威等周边国家也得到了积极的响应和跟进。1912年此活动散播到了罗马尼亚。

 

 

在亚洲地区,1910年的菲律宾首先得到了响应和发售行动,1924年的日本的结核病的专门会议也紧随其后。

 

 

在世界各地的募捐活动得到了成功的反馈之后,1925年之后的法国,比利时,捷克,英国,葡萄牙,波兰,意大利等欧陆国家,不仅是智利,乌拉圭,巴西,哥伦比亚,古巴,巴拿马,秘鲁,阿根廷,墨西哥等中南美国家,以色列,巴勒斯坦等中东地区,南非和突尼斯等非洲大陆的国家也将响应的募捐活动散播开来,可以说世界120多个国家和地区对于圣诞节的募捐活动有了一定规模的响应和活动。

 

 

 

人类共同的敌人,结核病

“用劳伦的十字来应对吧”

 

 

募捐一向存在它积极的意义。是红色的“双十字”。虽然不是十字架,但是相似的模样,名称也称作“圣诞募捐”,所以很多人误以为募捐的出发点源自于基督教。

 

 

红十字上段多了一个横的双十字,实际是约9世纪的时候一只单独的基督教派的象征,但是第一次十字军指挥官“洛伦 宫”将十字模样印刻在防御的盾牌上象征着和平和希望,也被称作“洛伦十字”。

 

1953년 크리스마스 씰. 소녀 왼쪽에 그려져 있는 문양이 복십자다.

▲1953年圣诞募捐活动。少女右边放置的图画是十字架。

 

 

在“第一回国际结核病预防会议(德国柏林,1902)”上,法国代表发出“人类共同的敌人是与结核疾病的斗争,将洛伦十字提高到国际的象征地位”的号召和提案,在得到全场一致同意的决议后,洛伦十字作为结核病预防运动的象征,同时也到了许多国家共同的旗帜。

 

한국 최초의 씰을 발행한 셔우드 홀. 대한민국 초판 씰의 모습, 대한결핵협회 제공

▲韩国最初发起募捐活动的舍伍德 霍尔。大韩民国最初募捐活动的原型,大韩结核病协会提供

 

 

 

韩国最初募捐活动的初创者,舍伍德 霍尔。

“贴了结核防治的贴片,结核还是没有好呢!“

 

 

舍伍德 霍尔在1932年最初发起了圣诞的募捐活动,同时发起了如下的主旨。

 

“第一,给韩国人灌输正确的结核疾病的相关的知识。

 

第二,无论贫穷还是富有,全部按可以存活且性价比高的结核疗法推进,尽可能发动一切可以参与的人加入到防治结核的运动中来。

 

第三,这是符合国家财政实际情况,且为了与结核疾病抗争的发起的爱心募捐的活动。“

 

实际上,初创期的圣诞募捐爱心活动主旨是为了预防结核疾病的教育普及和宣传推广为主要目的和目标。大韩民国整个环境对于结合疾病的知识和理论太过缺乏的缘故。

 

因为结核疾病的痛苦而将结核治疗贴片贴在胸腔的情况下,直接找到了舍伍德 霍尔“医生,我将结核贴片贴在胸前,可是结核病还是没有痊愈。

 

 

通过呼吸机而将病患者的结核杆菌传染给家人的情况下,被称作流行传染病,这也是大多数人的认知,与那个时代相比,现如今再次回顾那段历史来说,作为如今的“流行病防疫先进国家”的韩国来讲,简直不敢想象的境地。

 

한국 크리스마스 씰의 홍보물 변천사

▲韩国圣诞募捐活动的宣传物品的变迁史

 

 

“加韩民国”国民,舍伍德 霍尔

“想在韩国休息”

 

 

舍伍德 霍尔虽然是加拿大人,但是是1893年出生于首尔的韩国人。

 

照顾了韩国的贫困的结合疾病的患者和市民之后,带着对于结核疾病的启蒙教育的使命感从加拿大医学专业毕业后,回到韩国的舍伍德 霍尔在1926年在海州救世医院一遍工作,不久在1928年建立了海州救世疗养院。

 

当时一起工作的文昌茂博士和金秉瑞先生(圣诞募捐委员会执行委员)的他们在舍伍德 霍尔的圣诞募捐活动里从精神和物质层面进行了极大地帮助。所以用崇礼门(南大门)的图案发行了韩国最初的募捐形式的邮票,到1940年截至一共发行了9枚的圣诞募捐形式的邮票。

 

但是太平洋战争爆发前,因为日本宪兵队奸细的出卖的舍伍德 霍尔遭到强制的驱逐,这是一件值得深度思考的事情。作为全面参与到圣诞募捐活动的发起人和负责人,在遭到驱逐的那一刻,整个圣诞募捐的活动遭到了中断和无情的破坏。

 

 

舍伍德 霍尔在1991年4月5日在加拿大温哥华市以98岁高龄与这个世界做了告别与辞世。根据联合国提议舍伍德 霍尔先生的遗体和他亲生父母的墓葬一起埋葬于杨花津的外国人庙址。同年的9月他的夫人跟随舍伍德 霍尔离世同葬在他的墓旁。

 

 

对于圣诞募捐活动的误解

“作为佛门弟子我不参与圣诞募捐活动!”

 

 

一时中断的圣诞募捐活动,韩国光复后的1949年在文昌茂博士的主导下,在韩国红十字会得到了重新开始的机会,1952年在韩国基督议事会上再一次发行了圣诞募捐活动。之后的1953年,在大韩结核协会成立的同时,发起了韩国内全境的募捐活动。

 

미군장병들이 모금한 14,609 달러를 전달하고 있는 주한 미8군 사령관의 모습(1955.1.20), 대한결핵협회 제공

▲将军士官们募捐的4,609美元传转交给驻韩美军第八军司令官的记录瞬间(1955.1.22),大韩结核协会提供

 

 

此刻开始,圣诞募捐活动成为了消灭结核疾病的一部分。但是由于对圣诞募捐活动的出发点和渊源是来自基督教的误解,而导致了佛教等其他的宗教人士对于圣诞募捐形式产生了很大的抵触情绪。

 

第一代韩国李承晚总统(先生),每年以国家领导集体为表率,各阶层的代表和学生代表们等为羁绊都会积极响应圣诞募捐活动,在朝鲜半岛近现代解放初期,作为从民间发起的募捐活动到国家层面的募捐形式的升级和升格,作为当时朝鲜半岛和亚洲地区的和平和发展的守卫者的驻韩美军第八集团军的长官和士官们也都积极参与其中。

 

结核病发病率第一位,死亡率第三位的韩国

“最近还有结核病患者嘛?”

 

圣诞募捐活动主要是为了抗击结核疾病而进行的圣诞节前后发售的一种券。那时候圣诞银行卡或者贺年卡用信笺的方式相互传递的时节,为了购买圣诞募捐券而在邮局排长队而等待的经历也是有那么一两回的。但是,现在的时代,已经用惯了个人电脑,同时,以便利的各种型号的手机型号到智能手机的时代,对于圣诞募捐形式的淡忘,人们似乎在渐渐遗忘结核疾病依然存在在我们身边,实际是这样的嘛?

 

根据大韩结核协会的统计来看,2021年现如今的大韩民国的结核疾病的防御率是OECD国家排列的水准中排行第1,结核的死亡率排名第3。由于朝鲜半岛(韩)半岛内韩国内的死亡人数的统计约1,356人,最新的确认者为19,933人。

 

 

 

采访一位韩国内保健所的相关人士,“找到结核疾病患者,访问并督促其接受治疗的事情相当程度有难度。“结核疾病虽然是可以治疗的疾病,若说痊愈的话,是一件非常麻烦的治疗过程,同时需要非常耐心地坚持施行才有一定的可能性。治疗过程中放弃的示例频繁,和督促机构保健所的联系中断或者回避的患者非常多。(从过往的经历来看,耐心坚持治疗和合理膳食,有健康的自我管理意识,特别是健康的时间管理意识,对于提高诸如结核疾病这样难以短期内治疗的疾病来说,是一件值得提倡的治疗建议。)

 

 

2021년 크리스마스 씰은 MBC 예능 프로그램 &lt;놀면뭐하니&gt;의 유재석의 부캐를 활용해 10개의 도안으로 발행됐다, 대한결핵협회 제공

▲2021年圣诞募捐活动在MBC娱乐节目《闲着干嘛呢?》中的主持人刘在石制作了10个图案进行了发行。大韩结核协会 提供。

 

 

 

不断地升级的圣诞募捐形式。

虽然形态各异和有所变化,但是取材和灵感基本相同。

圣诞募捐活动现在已经不只是局限于贴在邮票旁边的形式了。由于互联网的发展和发达,信笺或者贺年卡用邮递的方式逐渐减少,募捐的形式也改变了不少。

 

 

 

2007年后防辐射产品(马克杯,钥匙链,移动玩偶,磁铁,自制的明信片等)代替了原来的募捐形式。2020年的EBS人气卡通人物玩偶“企鹅君”将每年递减的募集金拉升了一个高度,达到了97.4%,2021年的模特换做了人气主持人刘在石。

 

人虽然进化但是本质在一定程度上没有变化一样,募捐活动的形态虽然有所改变,但是犹如120年前的丹麦一个邮局的募捐活动的发起一样,初心不变。

 

结核疾病一直会在我们周边存在,正因为如初我们的防范意识不可掉以轻心。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가장 많이 본 뉴스


SNS TV

더보기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