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연합 박보영기자) 일본의 정식사과를 받기 전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했다.
열 네살이던 1940년,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에 끌려갔다.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같은 낯선 이국 땅을 떠돌며 참혹하게 인권을 유린당한 채 8년간 고통받았다.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평생의 악몽, 그렇지만 김복동 할머니는 용기를 내 세상으로 나섰다.
지난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스스로 공개하며 시작한 '수요시위'는 27년간, 1천 3백 번이 넘는 수요일마다 일제의 만행을 잊지 말라고 시민들을 일깨우고 있다.
할머니는 나라 밖에서도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힘썼다.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영국, 독일 등을 매년 수차례 방문해, 전쟁 중 성범죄에 희생된 이들을 위로했다.
2012년엔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 기금'을 설립했고, 장학재단을 세워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동포 학생들을 도왔다.
김복동 할머니는 '끝까지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을 이루는 건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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