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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봉사한다는 정신적자세 힘의 원천이다’


오른쪽 남명자 총무국장


         대원들과 함께 거리순찰을 나서다

전국동포산업재인협회 남명자 총무국장의 한국생활 체험기

우선 전국동포산업재해인협회(아래 재해인협회로 약칭)에 대해 말해야겠다. 한국에는 산업재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도입된 사회보험제도라는게 있는데 산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보험이다.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에 오면 일현장에서 사고를 당할때가 적지않는데 이럴 경우 국가보험제도에 의해 산재보상을 받게 되어 있다. 허나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며 더욱이 이와 관련된 법을 잘 모르기에 사고후에도 보상을 받지못하고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다. 재해인협회는 바로 이들을 대변해 보상을 받도록 도와주는 단체다.

동포출신인 내가 이 협회 사무총장을 맡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008년도에 한 지인이 경북상주 어느 세멘트공장 현장에서 일했는데 퇴근길에 주의하지않아 배수로에 빠지면서 두다리를 상하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상처가 엄중하여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산재처리가 되지않아 곤혹을 치러야 했다. 회사의 해석은 일하다가 상한 것이 아니고 현장을 떠난 상태에서 다쳤기 때문에 보상해 줄수 없다는 것이였다. 내가 나서서 당사자가 그래도 그 회사의 일군이고 의외로 당한 사고인데 어느정도는 도와줘야하지않겠는가고 질문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와같은 상황에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게 되었고, 글럴수록 마음이 더 아팠다.

그러던중 서울 대림역 5번 출구를 지나다가 전국산업재해인총협회서울협회란(이하 총협회라 약칭) 간판을 보게 되었는데 들어가 한번 문의라도 해볼 생각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이 협회 담당자가 유관 규정과 법률에 대해 상세하게 해석해 주었고 결국 그의 도움으로 원만한 해결을 보게 되었다. 몇 달동안의 고민을 이 협회를 통해 풀게 되면서 불행을 당하지않을려면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특히 한국에 온 중국인들에 대해 말하면 산재 보상을 받는게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면서 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후 몇 번인가 총협회에 들리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국인들이며, 이들은 모두 산재보상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무실에 앉아있는 동안 중국인들이 들어왔기에 몇마디 통역을 하였는데 협회 담당자가 총협회 업무를 보는데 중국인 직원이 필요하다며 며칠 통역을 서보라고 부탁했다. 나는 쾌이 승낙하고 잠시 통역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산재에 대한 지식이 없이 통역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나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담당자가 컴퓨터를 내주며 해당 규정 및 법규에 대해 배우라고 권고했다. 그날부터 나는 유관 지식을 장악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산재는 물론 노동법에 이르기까지 밤을 새워가며 알아보고 이론 지식을 터득한후에는 산재보상 사례까지 세심하게 고찰해 보았다. 때로는 사고현장에까지 찾아가 사고 경위를 알아보기도 하고 당사자를 만나 조사를 진행했다.

한번은 한 젊은이가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현장에서 3메터되는 높이에서 떨어져 팔을 못쓰게 되는 사고를 당했으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산재처리를 받지못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번마다 신경병증 혹은 50견이라 하면서 증명을 써주지않았다. 나는 며칠동안 관찰한후 담당의사를 찾아가 확실히 팔을 쓰지못해 자주 넘어진다는 사실과 정신적인 타격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반영했다. 최후 근로복지공단에서 사실에 기초하여 요양승인을 하게 되어 정상적으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후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많았는데 나는 직접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았다.

2년 후인 2009년 나는 총협회의 도움으로 정식 전국동포산업재해인협회를 설립하고 이 협회 총무국장을 맡았다. 매일 산재처리가 안되어 찾아오는 중국인들을 만나면서 측은함을 금할 수 없다. 뼈빠지게 일해 번 돈을 받지못하거나 사고를 당한후 산재처리가 제대로 안되어 고민하는 그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아무 때든지 휴식 따로없이 만나준다. 나역시 한국에 와 처음에는 죽도록 고생한 경력이 있기에 다 같은 처지라는 생각에서 더욱 잘 대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거듭한다.

고향이 흑룡강 가목사인 나는 한국 오기전에는 고향에서 음식점도 경영하고 노래방도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았었다. 내가 한국 오게된 계기는 1970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때문이였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북청송군이였는데 생전에 주소를 적으주면서 꼭 찾아가보라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주소를 잃어버려 찾을 길이 없었다. 하여 나는 1979부터 한국 KBS방송국에 친척을 찾는 편지를 여러통 보냈는데 행운스럽게도 한국에 있는 친척을 찾을 수 있었고 2004년도에 작은 엄마의 초청으로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며칠 휴식한후 나는 곧 춘천닭갈비집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고, 아침에는 남보다 30분 일찍 오고 퇴근은 30분 늦게 하면서 열심히 닭갈비 요리법을 배웠다. 열흘만인가 원래 있던 주방장이 중국에 들어가자 그를 대신하여 주방을 책임지게 되면서 더욱 주방일에 대해 익숙하게 되었다. 그러던중 비자가 만기되어 2년만에 귀국하게 되었고, 2007년에 취업비자로 재 입국하게 된 것이다.

생활을 위해 야간도 해보고 일당도 뛰면서 고생은 했지만 나의 노력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는 점은 나로서도 대견스럽다. 재해인협회를 운영하면서 항상 봉사정신으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는데 사회를 위해 더 봉사르 하기위해 자율방범대에 들어 정기적으로 치안봉사에 나선다. 벌써 8년째나 된다. 그 외 ()진상일양행테크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기업경영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다는 평가를 받아 서울특별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고 대한민국나눔봉사 대상, 대한민국신창조인 대상, 2017년 대한민국 인류를 빛낸 대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수여받았다.

한국에 온지도 어언 14, 매일과 같이 한국에 와 있는 조선족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보아오면서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을 느낀다. 그간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보려고 교도소, 경찰서, 요양소 등 기관들을 수없이 찾아 다녔고 때로는 피곤을 무릅쓰고 먼 현장까지 방문하면서 힘들고 고독하고 외로울때도 있지만 항상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신적 자세로 일하기에 마음만은 즐겁고 행복하다

  대필 / 전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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