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다. 시원한 팥빙수보다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이 생각나는 요즘, 아름다운 선율로 우리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선청성사지기형 1급 장애로 손가락이 양 손에 두개 씩 밖에 없는 피아니스트 이희아씨다.
"이제 나의 피아노 연주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나누며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넘어져 울고 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웠고 세상을 향해 밝은 웃음을 활짝 웃게 해준 피아노의 아름다운 사랑이 선율을, 다시 삶의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과 친구 여러분들께 돌려 드리고 싶다"고 그녀는 자신의 꿈을 수줍게 말한다.
희아씨에게 피아노를 처음 권한 건 그녀의 어머니다. 희아씨의 손가락에 힘을 키우고, 뇌기능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세상이 그녀를 바라보는 장애인이라는 인식과 냉대, 신체적 어려움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다들 안 된다고 했어요. 제가 수리영역이 조금 부족하거든요. 뺄셈도 못하는 제가 박자와 리듬에 나눗셈 천지인 피아노를, 그것도 네 손가락으로 해 내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죠. 정말 힘들게 연습했어요.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준 어머니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피아노를 잘 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희아씨의 어머니 우갑선 씨의 악보 읽는 실력은 피아니스트에 버금간다. 악보를 보는데 어려움을 겪는 딸을 위해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희아씨가 양손으로 처음 연주한 곡은 '나비야'다. 오른손으로 멜로디를, 왼손으로 반주를 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 당시 7살이었던 희아씨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제가 처음 '나비야'를 쳤을 때, 온 집안이 눈물바다가 됐어요"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피아노를 그만둬야 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피아노만 보면 머리가 아프고 숨도 쉬어지지가 않았었거든요" 그때 그녀를 일으켜 준 것은 바로 초등학교 아이들이 이희아씨를 주제로 쓴 동화책 '네 손가락의 즉흥환상곡'을 읽고 쓴 감상문과 신문에 난 기사였다.
"아이들의 감상문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신문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은 없다'고 실린 이 기사가 너무 좋았어요. 아마 방송과 사람들의 관심이 없었더라며 피아노를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그 후로는 피아노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한 벅이 없어요. 피아노 치는 게 너무 행복하니까요"
희아씨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하루에 10시간은 피아노 의자 위를 떠나지 않는다. 희아씨의 연주 레퍼토리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쇼팽의 '즉흥환상곡'이다.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4분 55초'의 연주를 위해 그녀는 5년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쏟아부었다.
희아씨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적'이란 말을 한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을 그녀가 해냈기 때문이다.
끝으로 그녀가 북한에 있는 장애우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실어본다.
사랑하는 북측 장애우들 보세요. 저는 네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입니다. 저는 세계 여러곳의 장애우들과 만나며 진실된 사랑과 희망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북측 장애우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장애우들이 천국인 나라에 가보는 것이 아니고, 북측 친구들에게 제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제 가장 가까운 북측 장애우들에게 제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이뤄졌어요. 소아마비 장애인인 ITF태권도 협회 회장님과 열네손가락을 꼭 잡고 당신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있습니다. 특히 연주곡 중에 아리랑과 도라지는 북측피아니스트 작곡가 정관 선생님이 편곡한 작품이어서 더할 수없는 애정을 담아 연주하려고 합니다. 이 소중한 음악회를 통해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마음을 모아서 이뤄낸 그 사랑의 결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그 기쁨을 전하려고 합니다. 하루 빨리 우리 소원인 통일이 이뤄져서 그대들과 함께 하나이 겨레된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