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란 생체측정 센서, 임상진단지원시스템,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유무선 네트워킹을 활용한 유비쿼터스 ICT 기술로 언제 어디서나 제공되는 보건의료 서비스다. 이는 ‘예방과 관리’ 중심의 맞춤형 스마트 헬스케어(Smart Healthcare)를 제공한다.
원격의료는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향상시켜 실시간 진단ㆍ치료, 교통비와 소요시간 등 간접비용 절감 등의 혜택을 준다. 또한 의료전달체계를 디지털화시켜 상급병원으로 전원할 때 진료기록을 환자가 가지고 다닐 필요 없이 네트워크로 전송한다.
이 기술이 진화하면 궁극적으로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듯 아침에 일어나면 기계가 자동으로 모든 건강상태를 스캔하여 진단하고 치료해주게 된다.
원격의료를 통한 해외환자 유치ㆍ관리 또한 한류열풍과 더불어 우리나라 의료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관광객은 크게 증가해 2012년 기준 15만7000명에 달하고 있으나, 의료관광이 국가 주력사업인 태국, 인도, 싱가포르 등에 비하면 1/10 수준에 불과하다. ICT 응용기술, 관광자원 등의 국가 인프라와 세계 최고 수준의 의술을 고려하면 상당히 저조한 실적이다.
의료관광산업은 연계산업으로서 호텔관광산업, 쇼핑업계, 요식업, 문화산업, 외국투자유치 등도 활성화시킬 수 있다.
박근혜정부도 원격의료를 핵심 미래신성장동력으로 추진 중이다. 하지만 원격의료를 실시하려면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 사이 원격진료만 허용하고 있다. 원격진료와 서비스 중계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해 10월 29일 입법예고됐다. 그 핵심은 의료인과 환자 간 온라인(on-line)진단, 처방, 처방약 택배 서비스이며, 이를 1차 개원의에게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나 의료계와의 사전 협의 없이 입법을 강행함으로써, 의료계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원격의료는 국민의 건강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대국민 홍보와 대회원 교육을 통해 투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미래첨단의료기술의 꿈을 좇아 10여 년 전부터 연구와 시범사업이 활발히 진행돼 왔다. 하지만 수요와 시장을 창출하지 못하고 원격진료의 핵심 솔루션인 유헬스에 투자한 의료기기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도산했다.
원격의료 산업이 활성화되려면 선결과제가 있다. 아니면 국민건강에 위험을 초래하고 또한 투자기업만 손실을 입는다.
첫째, 오진과 의료사고의 개연성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 대면진료로 의사가 문진, 시진, 촉진을 해도 감별진단이 어려운 질환이 많다. 기침, 열, 구토 등의 단순한 증세는 가벼운 감기일 수 있지만 폐렴, 폐암, 뇌수막염 등 중병일 수도 있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한 진단과 치료는 오진의 위험을 높인다. 따라서 원격 의료기기와 통신 환경의 의료적 안전성과 정확성이 확보돼야 한다.
정부가 지난 9월 말부터 대한의사협회 참여 없이 독단적으로 강행하고 있는 원격의료 안전성 검증 시범사업은 불과 6곳의 의원과 5곳의 보건소에서 6개월 단기간 실시하여 졸속ㆍ부실의 불안이 있다. 안전불감증의 구태를 반복하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이다.
둘째, 철저한 보안이 담보돼야 한다. 보안이 가장 민감하고 철저한 금융권에서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원격의료 시스템은 구성요소가 다양한데, 보안이 각 구성요소별로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하므로 정보가 유출될 구멍이 많다.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원격 의료기기, 서버 하드웨어, 서버 소프트웨어,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 문서 등의 보안과 더불어 운영상 보안에서 관리적 보안, 물리적 보안, 기술적 보안이 각각 별도로 시행돼야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아직 기술적으로 정보 보안 후진국이다. 인적사항, 임신, 성병, 정신질환 등 민감한 환자의 병력이 유출되고 최악의 경우 영리목적으로 거래될 때 개인의 명예회손, 금전적 손실 등 사회적 파장이 크다.
셋째, 임상적 유효성과 비용효과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원격 의료기기 가격은 30만~300만 원에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등도 고혈압 환자의 약값을 포함한 한달 진료비가 1만5000원 정도인데 300만 원이면 거의 20년치 진료비에 해당한다.
하지만 원격진료로 실시간 혈압, 체지방 등을 측정한 고혈압 약 처방을 예로 든다면, 오늘 2알, 내일 1.5알, 모래 1.75알, 이렇게 조정해도 치료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므로 비용 대비 효과는 아직 의문이다.
넷째, 금전을 목적으로 한 고의적 의료사고에 대해 시스템상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대면진료도 진료환경의 한계로 인한 불가피한 오진으로 의료소송이 빈발하는데 원격진료는 시스템적으로 고의적 의료사고에 취약하다.
다섯째, 1차 개원의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 원격의료 시장은 없다. 원격진료의 실수요자는 의사와 환자다. 능동적 수요자인 주치의가 수동적 수요자인 환자에게 권유해야 시장이 형성된다.
사실 환자는 기계보다는 의사의 얼굴을 보고 진료를 받고 싶다. 전체 의사의 10%도 안 되는 일부 유명 대형병원과 일부 의료서비스·기기 대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여섯째,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진료가 2·3차 의료기관, 특히 유명 대학병원에서 시행되면 의료시장이 왜곡된다. 즉 원격의료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자기 병원 환자 리스트를 확보하는 의료시장 선점과 유지의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다.
KTX 개통 이후 지방의 환자들이 서울 유명병원에 몰리고 있는데 이러한 쏠림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 다음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된다. 현재 원격의료의 기술 수준은 1차 진료만 가능하므로 2·3차 의료기관이 1차 개원의들의 환자를 뺏어가게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회적 의료보장제도와 의술을 자랑하고 있다. 그 견인차는 의사들의 노력과 희생이었다. 정부는 국민, 의료계와 소통하고 대한의사협회의 진정성 있는 의견을 수렴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최선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박길홍 고려대학교 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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