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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죽을 서훈했으면 김원봉, 박헌영, 김일성도 서훈해야

서훈의 포상을 이념보다는 항일에 맞춰

 

  주세죽과 박헌영

 

 

얼마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김원봉 서훈추서에 대해 보수진영이 반발해 결국 취소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서훈추서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노무현대통령이 공산주의자로서 항일운동을 한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을 서훈한 바 있기 때문이다.

 

출처 연합뉴스, 주세죽의 딸

 

"위는 우리나라 자주독립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다음 훈장을 추서함"

 

▲     ©편집인

 

주세죽은 러시아이름으로 카레예바이며, 박헌영(朴憲永)의 첫째 부인이다. 189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함흥의 영생여학교에 2년 동안 다녔으며, 3·1운동에 참가하다가 체포되어 1개월 수감되었다.

 

1925년 1월 허정숙·박원희 등과 함께 조선여성해방동맹을 결성하였고, 그해 4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후보위원에 선임된 뒤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27년 5월 김활란, 유영준,최은희,·박원민,정종명 등과 함께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槿友會)를 결성하였으며, 1928년 11월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로 탈출하였다.

 

1929년 주세죽은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이 모스크바에 설립한 공산주의 운동 지도자 소양교육기관인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1931년 졸업하였으며, 1932년 상하이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벌였다. 1940∼1946년 카르마크치의 협동조합에서 일하였으며, 1946년 스탈린 정권에 해방조국으로의 귀국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되었다. 1989년 3월 소련에서 명예가 회복되었다.

 

소련에서 명예가 회복된 사람을 항일운동애국자로서 수훈에 추서한 것이다.  그녀는 두번째도 러시아 공산당이었던 김단야와 결혼하여 공산당 활동을 계속 해왔다. 현재 국가보훈처는 공산당활동을 한 사람으로서 이동휘, 여운형, 주세죽을 서훈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항일운동을 한 김일성과 박헌영도 서훈해야 하지 않을까?

 

▲     ©편집인

 

▲     ©편집인

 

 

그러는 의미에서 문재인대통령의 김원봉 서훈추천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분은 이동휘, 여운형, 주세죽 모두 공산주의자들도 서훈을 받았는데 의열단으로서 봉사했던 김원봉을 왜 서훈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문재인대통령의 서훈추천은 당당한 것이었다.

 

서훈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에 벗어나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을 설립하고 소련에서 공산대학을 나오고 지속적인 공산활동을 하였는데 1919. 3.1운동을 했다고 해서주세죽을 서훈한다면 3.1운동 만세운동을 한 공산당 모두를 서훈해야 할 것이다. 보훈처는 속히 김원봉의 서훈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김원봉과 주세죽은 항일적으로 이념적으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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