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자식을 키우면서 또 하나의 삶을 경험한다. 나는 귀가 둔하다. 눈은 매서운 편이라 감쪽같이 속였다고 믿고 있는 가발도 금세 알아내고, 코를 높였는지 눈을 찢었는지 다 보인다. 그런데 소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소리를 듣고 그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어릴 적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등교하는 길목에서 들려오는 리듬가락이 애국가라고 믿고 멈추어 서서 경례를 하다가 지각한 날이 여럿 있다. 그러니 노래를 직접 불러야 할 때는 참 가관이다.
노래만이 아니다. 나는 일본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전교생에게 알토리코더를 연주하게 했다. 일본친구들은 초등학교에서 소프라노리코더를 배우고 왔다고는 하지만 모두 참 잘 불었다. 그런데 내 리코더에서는 항상 ‘삐삐~’ 특별한 소리가 나는 바람에 주눅이 들어서 손가락만 움직이고 소리를 내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미술과 음악 중 선택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었다. 여하튼 음악이 필수과목이고 전적으로 실기로만 평가하는 것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을 거다.
나는 이렇게 확실하게 못하는 게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하게 잘하지 못하고 그래서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할 때 버려야 할 확실한 카드가 있는 것이어서 나쁘지 않다. 그래도 새끼들에게는 '음악을 좀 아는 삶'을 살기 바라며 일찍이 피아노를 가르쳤다. 특히 딸아이가 피아노를 잘 친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내 딸이었다. "어머니, 피아노보다는 공부를 시키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동네 피아노학원선생님의 조심스러운 말씀에 그날 이후 악기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다행이 하나는 다르다. 아들이 피아노를 좋아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 오시는 날이면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고 간혹 피아노 소리도 들린다. 초등학교 교내 콩쿠르에도 나갔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관현악 담당이셔서 우리 아이는 트라이앵글 하나 들고 무대에 올랐다. 어떤 곡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관현악의 웅장한 울림 속에서 높은 음역의 트라이앵글 소리가 찡~하고 도드라졌다. 나는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것 같았다.
다음 공연에서는 심벌즈를 들었다. 관현악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우리 아이의 심벌즈 소리가 있었다. 5학년이 되자 작은북 다음 큰북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이가 “엄마 나 승진했어”라는 말에 한참 웃었다. 형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내심 부러워했던 모양이다. 6학년 큰형이 되고, 드디어 팀파니를 연주하는 팀파니스트가 되었다.
6학년이 한명 더 있었는데 선임이라는 이유로 우리 아이가 팀파니를 차지했다. 이 조그만 세계의 서열도 장난이 아니다. 나는 아들의 맬릿(mallet, 북채)을 사러 예술의 전당 앞 타악기 전문 가게를 찾았다. 살다 살다 내가 이런 가게를 찾을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가마솥만한 악기 3개를 옮기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하나도 무겁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팀파니는 북 중에서 유일하게 음높이를 가진 악기다. 다른 악기들이 연주하는 동안 팀파니에 귀를 대고 다음 부분의 소리를 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내 아들입니다’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 많은 악기 중 내 귀에는 팀파니 소리만 들렸다. 타악기의 소리는 파란 바탕에 빨간 점을 찍는 것 같아서 두드러지게 잘 들린다. 그러니 하나의 곡이 끝날 때까지 긴 시간 바짝 긴장해서 혹시나 박자라도 놓칠까 마음을 졸이면서 바라본다.
그런데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아이의 엄마 말에 의하면 그 많은 바이올린 소리 중에서도 자기 아이의 바이올린 소리만 부각되어서 들린다는 거다. 2악장 어디에서 음이 이탈했다면서 안타까워한다. 정말 그게 들린단 말인가. 믿어지지 않지만 ‘엄마’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분명 엄마라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엄마가 되면 아주 우수한 또 하나의 눈, 또 하나의 귀가 생긴다. 사람의 몸이란 참 신기하다.
우리 부부는 <아스타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초청 차이코프스키 협주곡과 함께하는 로맨틱 콘서트> 초대장을 들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찾았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접하는 것은 얼마만의 일인가. ‘졸리면 자야지 뭐’ 이런 말을 하면서도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2시간 동안 역시 나의 눈에는 그리고 귀에는 팀파니만 보이고 들렸다. 아들 덕에 생긴 또 하나의 눈과 귀가 가을밤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고선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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