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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한국국적에 가입한 중국 축구천재 ‘중국 축구가 나를 버렸다’

자료도


신문


1월 5일 중국 앙시망(央视网,CCTV)보도에 따르면 인구대국으로서의 중국이 세계 1/5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축구선수 몇명도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줄곧 체육대국으로 되려하나 세계 제1대 운동인 축구로 말할때 남자 축구가 줄곧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 축구의 성적이 줄곧 비난을 받으며 월드컵 진출이 줄곧 몇세대 중국인들의 꿈으로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일부 외국선수들을 귀화시킴으로서 남자축구 국가팀의 성적으로 제고하자는 고함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 한국이 남자축구선수 차원에서도 일찍 ‘배반’의 선례가 있다. 이 논란의 선수가 바로 쉬칭산(许青山,허청산)이다. 1987년 1월 25일 쉬칭산이 랴오닝성 선양(辽宁沈阳)의 한 축구명문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조선족으로서 부친의 감화를 받아 축구를 사랑했으며 축구를 생명처럼 여겼다. 

쉬칭산은 처음에 부친이 창설한 한 청훈클럽(青训俱乐部)에서 축구를 했다. 그러나 자금사슬이 끊어지고 클럽이 도산했으며 그는 자기절로 앞길을 찾게 됐다. 그뒤 그는 난징(南京) 여우여우팀(有有)에 가입했다. 그러나 생각밖에 난징 여우여우팀이 월급을 체불하고 또 많은 문제가 출현하면서 결국 최종적으로 해산됐다.

그뒤 쉬칭산은 시장후이퉁(西藏惠通)에 가입하고 뒤이어 닝버(宁波)츠시중바오 클럽(慈溪中豹俱乐部)에 임대되어 갔으며 2006년 경기 시즌에 츠시중바오를 대표하여 중을 리그(中乙联赛)에 참가했다.

임대기가 결속된후 쉬칭산은 시장 후이퉁에 의해 5만 위안 가격으로 판매를 걸었지만 그 어느 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시장 후이퉁은 2007년 10월 월급 체불로 경기를 그만두고 중국 축구협회에 의해 자격을 취소당했으며 후이퉁 클럽 책임자도 가짜 축구사건에 의해 감옥에 들어갔다. 쉬칭산은 무직업자로 전락하고 생존을 위해 부득불 낮에는 축구를 하고 저녁에 야외 축구로 축구의 꿈을 지속했다. 그후 또 한번 우연한 기회에 그의 형님이 그를 보고 만일 쉬칭산이 정말로 축구를 하고 싶다면 출국하여 한국에 가 한국팀을 위해 축구를 하라고 말했다. 그 뒤 쉬칭산은 한국에 갔으며 한국 대학생 축구리그 경기에 참가했다. 그의 수준은 한동안 다른 선수들을 따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큰 노력을 기울여 점차 자리를 잡게 됐다. 그 후 쉬칭산은 더욱 팀을 도와 3위권에 진입하게 되고 그 자신도 팀 핵심으로 됐다. 

우수한 기술을 보고 한국 프로팀 수원 삼성이 이 중국에서 온 조선족 선수를 주목하게 됐다. 그러나 쉬칭산은 한국인이 아닌 관계로 아시아 외국인 지원 리스트에 수록됐는데 이 점이 바로 그가 수원에 가입하는데 있어서 최대 장애로 됐다. 프로 축구를 하기 위해 쉬칭산은 한국에서 선수를 뽑기 전 한국 국적에 가입하여 한국 선수 신분으로 수원 삼성팀에 가입했다. 

한 차례 취재에서 많은 중국 국내 사람들이 그가 근본을 잊었다고 욕한다고 기자가 그에게 알렸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중국에서 나는 존엄이 없는 벽돌노동자였으며 구박과 조롱을 당했다. 한국에서 나는 존경을 받는 축구 선수이다. 내가 근본을 잊은 것이 아니라 중국 축구가 나를 버렸다. 나는 중국에 미안한 점이 없다.”고 말했다.

당전 중국 축구 발전의 관건시각에 중국은 인재를 발견할 줄 알아야 하며 양성에 노력해야 한다. 기실 중국에은 축구 인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백락이 부족하며 양호한 양성환경과 발전 메커니즘이 결핍하다. 중국은 반드시 축구 인재 유출을 피해야 하며 쉬칭산식의 비극 재연을 방지해야 한다. 


中国作为一个人口大国,有着世界五分之一的人口。但就是这样一个人口众多的国家,却很难找出几个能够在世界上具有影响力的足球运动员。中国一直谋求成为体育大国,但作为世界第一大运动的足球来说,男足一直拖着后退。国足的成绩一直令人诟病,入围世界杯成为几代人的梦想。很多人希望中国能够归化一些国外球员,以此来提高男子足球国家队的成绩,而这样的呼声也越来越高。

中国和韩国在男足运动员方面,也曾经有过“叛逃”的先例,这名争议球员就是许青山。1987年1月25日,许青山出生在辽宁沈阳一个足球世家,他是朝鲜族人,受到父亲的熏陶深爱足球,把足球当做生命。

许青山一开始在父亲创办的一家青训俱乐部踢球,但是由于资金链断裂,俱乐部倒闭,他只能自寻前程,随后选择加入了南京有有的梯队。让人意想不到的是,南京有有由于欠薪而遇到了很多问题,并最终解散。之后许青山加入了西藏惠通,随后被租借到了慈溪中豹俱乐部,2006赛季他代表慈溪中豹参加了中乙联赛,在租借结束后,许青山被西藏惠通以5万元的价格挂牌出售,但并没有球队愿意要他。而西藏惠通在2007年10月因为欠薪罢赛,被中国足球协会取消了资格,老板也因为假球事件锒铛入狱。许青山成为了无业人员,无奈之下为了生存,他白天搬砖赚钱,晚上踢野球维持足球的梦想。

之后,又一次偶然的机会,他的哥哥给他说,如果许青山真的放不下足球,可以出国去韩国,为韩国队效力。随后许青山前往了韩国,之后他参加了韩国大学生足球联赛的比赛。他的水平一度跟不上队友。但他付出了更多的努力,逐步站稳脚跟。之后许青山更是帮助球队杀进三甲,而自己也成为球队核心。

出色的球技,韩国职业球队水原三星很快注意到了这位来自中国的朝鲜族球员。不过,许青山并不是韩国人,会占到一个亚洲外援名额,而这是他加盟水原三星的最大障碍。为了踢上职业联赛,许青山在韩国足球选秀之前加入了韩国国籍,以一名韩国球员的身份加盟到水原三星队。

许青山在一次采访时,记者提到了很多国内的人骂他忘本,他对着镜头回应道:“在中国我是一个没有尊严的搬砖工,被人欺负和嘲笑,而在韩国我是受人尊敬的足球运动员,我没有忘本,但中国足球抛弃了我,我没有对不起中国。”


在当前中国足球发展的关键时刻,我们一定要善于发现人才并努力培养,其实,中国并不缺少足球人才,只是缺少伯乐,缺少良好的培养环境和发展机制,我们一定要避免足球人才的流失,防止许青山式的悲剧再次发生。

/央视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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