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서울 종로경찰서 등에 따르면 서울 강북 소재 S병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A씨는 "병원 관계자 B씨와 C씨 등이 협박해 국가 지원 사업비를 횡령하는 데 동참하게 됐다"며 병원장 등 병원 관계자 5명을 업무상 횡령과 배임, 강요 혐의로 지난 3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 병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의 연구 위임을 맡은 서울대 산학협력단(주관 연구기관 서울대 의과대학) 의뢰로 2007년부터 국민의 질병과 건강 상태, 자연경과, 예후, 질병 결정 인자 등을 평가하는 대규모 장기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사업비는 모두 국립보건연구원과 질병관리본부가 지급한다.
고발장에 따르면 B씨와 C씨는 A씨에게 "네 통장으로 한 달에 한 번 돈이 들어올 것이다. 그 중 5만원을 빼고는 무조건 B나 C의 통장으로 전액 송금하라"며 통장 사본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2010년 8월~12월, 2012년 3월~12월에 17차례에 걸쳐 '연구비급여' 명목으로 송금된 금액 1600여만원을 B씨와 C씨의 통장으로 전달했다.
A씨는 고발장을 통해 "통장 사본을 제출하게 하고 한 달에 한 번 들어온 돈을 자신들의 계좌로 다시 송금하라고 지시한 것은 연구비 급여를 횡령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5만원을 빼고 나머지를 전부 송금하라고 한 이유는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봐 두려워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형병원 고위직 의사와 간호사의 직위를 이용해 세금을 연구비 명목으로 받아 챙겼고, 이 연구의 총책임자인 병원장도 범죄를 묵인했다"며 "수년간 다른 직원을 동원해 연구비를 가로챈 것을 합치면 액수가 수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지난 4월 서울 종로경찰서에 수사 지휘를 내렸다. 경찰은 B씨와 C씨의 계좌를 압수수색하고 소환 조사했지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A씨가 통장을 함께 제공했다고 하는 병원 관계자들도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발장에 적시된 횡령 의혹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고 있다"며 "모두 몇 명이 범행에 가담했는지, 참고인으로 조사한 직원들을 공모자로 전환할 수 있는지 등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례에 비춰봤을 때 횡령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으나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며 "관련 법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당국은 국내 몇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유명 대형병원에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6개월째 사건 파악조차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액의 정부예산을 지원한 뒤 사후 관리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셈이어서 관리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매년 회계 정산을 하고 있지만 해당 병원에서 연구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전해듣지 못했다"며 "수사 결과에 따라 계약 취소 및 연구비 환수, 연구 정지 등 행정조치를 취할 것이다"고 밝혔다.
해당 병원측은 이에 대해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 중 책임자급은 지난달 수사 도중 퇴직했다"며 "모 교수가 개인 자격으로 묵인한 일로 병원 전체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건은 절대 아니다"고 해명했다.
강지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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