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송한옥목재소ㆍ전통한옥연구소 장춘덕 대표
![]() |
강원도 일대에서 벌목한 국내 소나무로 한옥목재를 생산해온 다송한옥목재소(대표 장춘덕)는 지름 2자(60cm) 원기둥을 비롯하여 굴도리, 3치(9cm) 서까래까지 고객의 원하는 니즈에 부합하는 굵기와 길이로 원주목을 공급하는 한편 한옥 설계에서 건축시공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펼쳐오고 있다. 한옥목재는 물론 전통한옥연구소도 운영 중인 장 대표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옥목수로 활동하고 있는 대목수이다.
◇나무와 함께해온 삶, 인연을 만들어 오다
어린 시절 다섯 남매를 둔 강원도 산골짜기의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난 장 대표는 방년 나이 16세의 어린 나이로 일찍이 목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1985년 대목장 고 조승환 선생을 만나며 지금의 장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초보 목수에서 장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장 대표는 성실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2년 만에 부편수로 승급되며 다양한 문화재 공사를 진행하고 맡아왔다. 그러나 포천 옥병서원 동재, 서재 툇마루 홈파는 작업 중에 오른쪽 약지 손가락이 절단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지만 바쁜 일정 속에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아픈 손가락을 싸 안고 공사 마무리 작업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장 대표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열정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와 싸워가며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양양의 낙산사 범종루 공사를 87년도 늦겨울까지 매서운 추위와 싸워가며 가까스로 목조공사를 끝냈다. 그러나 2005년에 동해안 북부를 휩쓴 큰 산불로 자식같이 정성을 다했던 낙산사 범종루가 불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깊은 눈물이 흘렀다. 아마도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988년 조 선생님께서 창원 성주사 설법전과 안심료 공사를 진행하다 위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이후 모든 공사는 저의 책임 아래 진행되게 되었다. 당시 30대 초반인 새내기 한옥 목수가 감당하기 너무 큰 공사였기에 부담과 외로움이 아주 컸던 거 같다. 하지만 스님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격려에 다시 힘을 얻고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던 기억이 가장 남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처녀작이었던 창원 성주사의 설법전과 안심료를 비롯한 마야원, 불모루, 지장전, 관음전, 영산전, 웅진암, 등 수 많은 작품을 남겼던 장 대표는 대표적인 성주사의 지장전은 물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인정받은 불모루를 포함한 한옥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정교한 가공으로 장인으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지난 2012년부터는 작업장을 길상 전통한옥연구소로 확장 발전시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장 대표는 아들 성민 군과 함께 전통 한옥의 멋과 대중화를 위해서 오늘도 목공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베테랑 팀워크를 기반으로 전문적인 시공 펼쳐 나갈 것
질 좋은 금강송 소나무를 구입하여 가공하기에 최고의 목재를 자랑하는 다송한옥목재소는 고객이 별도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매끈하고 깨끗한 가공으로 쉽고 빠른 맞춤 시공을 펼쳐오고 있다. 2012년 140여 평의 공장을 신설, 다송한옥목재소는 자연건조실을 갖춰 충분한 자연 건조하여 뒤틀림 하자가 없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장 대표는 "한옥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첫째 가장 좋은 목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며 한옥의 가장 큰 숙제이자 고민인 단열.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천장 윗부분을 이중 황토로 시공하고 외부와 통하는 문들을 이중으로 설치 시공하여 보다 따뜻한 한옥을 만들고 있는 장 대표는 열 손실이 많은 기둥과 벽체의 틈새를 홈을 파서 끼워 넣는 방법을 연구 개발, 완벽한 외풍 차단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냈다. 또한 화학적 재료 대신 천연재료를 사용하며 전통한옥의 유려한 멋과 아름다움은 그대로 유지하며 기존의 불편함과 단점을 최소화시키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