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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간병인은 봉사하느 마음적 자세가 우선’

 

대한휴먼회전경순 부장의 한국생활 체험기

 

전경순 부장 (기사에 나오는 주인공)

한국에 온 중국조선족가운데 간병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간혹 간병인협회라고 쓴 간판이 눈에 띄우는데 어떤 협회에는 거의 1000여명이란 회원이 있어 그 규모가 여느 단체보다도 방대하다. 나도 한 강병인협회 회원으로 있은지 2년 남짓된다. 회원지간에는 상호 정보를 공유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우면서 의좋게 보낸다. 때로는 일터에서 있었던 즐거우 이야기, 때로는 슬프고 외로웠던 이야기도 나누는데 어떤 이들은 고생많았던 지난날들을 말할때면 설음에 북바쳐 눈물을 쥐어짜기가 일쑤다.

그만큼 간병인이란 직업이 쉽지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생각해보니 나도 간병인업종에 종사한지가 거의 10여년이 되는 것으로 기억된다. 200811월에 한국에 와 어느 순대국집에서 일당으로 55000원 받고 일했는데 3일만에 잘리우고 말았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게다가 돼지머리를 손질하지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인은 순대국집 일군으로 돼지머리마저 손질못하면 식당이 망한다면서 그냥 내보는 것이였다.

일자리를 떼우고나니 속상한건 더 말할나위 없었고 매일 힘겹게 현장일을 뛰는 남편보기도 미안했다. 마침 한 친구가 보문동 사무실에 오라하기에 갔더니 일자리기 하나 있기는 한데 매우 어려운 일이라면서 해낼 수 있겠는지 모르겠다면서 우선 실습을 하라고 했다. 알고보니 바로 간병일이였다. 강동에 있는 개인요양병원이였는데 내가 맡은 첫 환자는 변나가는줄도 모르는 중환자였다. 난생 처음이다. 더욱이 남자환자의 변을 받아내는 일이란 실로 쉬운일이 아니였다. 냄새난다거나 보기 흉측하다는건 괜찮으나 육중한 환자의 몸을 움직이거나 번져놓는다는게 왜소한 나의 몸으로는 정말로 당해내기 어려웠다. 옆을 지나던 한 일군이 무거운 환자를 다루자면 뚝 힘으로는 안 될 것이니 요령을 장악하라고 타이르는 것이였다. 그 요령이란 대체 어떤 것일가? 배워달라고 하니 그건 본인이 실천가운데서 알아내는 것이라며 자리를 뜨는 것이였다. 말그대로 실천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환자를 간호하면서 우선은 동작이 빨라야하고 더욱 중요하게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두려워말고 담대해야한다는 것이였다. 귀저기를 번져놓는다거나 변기를 넣어준다거나 끄집어낼 때 모든 행동이 순간적으로 신속해야하는 것이다.

나의 노력은 헛되지않아 책임 간호사로부터 간병일을 할만한 사람이다는 평판을 받게 되었고 3일후에는 정식으로 목동 따스한 봄날 요양병원에 취직하게 되었다. 26만원 주고 간호 전용복을 사입고 어느 한 사장의 어머니 간호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간병인들은 운수가 좋으면 좀 편한 환자를 만날 수 있고 그렇지않으면 못된 환자를 만나 고생을 한다고들 한다. 이번에 나는 좀 편한 환자를 만난 셈이였다. 한편 내가 맡은 환자외에도 3명의 환자가 더 있었는데 나는 모두 돌봐주었다. 뿐만아니라 짬짬이 화장실 청소도 하고 구석진 곳도 깨꿋이 정리하여 깨끗한 환경을 유지했다.

그런 원인으로 간호 기한이 다 되어 떠날 날자가 되었는데도 환자의 요구에 의해 계속 남게 되었다. 나는 내가 맡은 환자외에도 6명의 환자를 더 간호했는데 그중에는 가래뽑는 환자 4, 중풍환자 2명 있었다. 이들은 모두 중증환자로 2시간 한버씩 체위변경을 해야하며 잠시도 곁을 떠날 수 없다. 한번은 피딩환자가 아침에 코줄일 빠져있는 상황이 알려져 팀장한테 혼줄난 일이 있다. 그후부터 나는 세벽 3시에 일어나 환자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원래 규정은 5시지만 나는 보다 책임있게 하기 위해 남보다 더 곱절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욕창(살이 썩는다는 뜻)환자, 발을 절단한 당뇨환자, 고관절 수술환자 등 여러종류 환자들을 간호하였는데 그중에서 한 환자가 저녁이면 옷을 홀랑 벗어던지는 습관이 있어 엄청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이 지금도 잊어지지않는다. 그럴때면 세 살먹은 애를 다루듯 달래는 수 밖에 없다. 다른 한 환자는 심술을 부리면서 보조침대를 주지않고 TV도 못보게 하여 그가 잠들때까지 온밤 서있어야하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환자들의 인격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인내하며 견딜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집에서 밥 한번도 해보지못했고 부모님들로부터 남다른 사랑을 받으며 곱게 자란 편이였다. 한국에서 간병일을 하면서 행복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노라니 설음이 북받혀 오를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나한테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또 하나 있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같은게 정말로 머리를 아프게 했다. 요드약솜을 보리라 하고 산소호흡기를 오투라고 하니 난생 처음 듣던 용어들이다. 그 외에도 뜻을 알 수 없는 용어들이 하도 많아 나는 메모지를 갖고다니며 새로운 말이 나오면 알심들여 메모했다가 다시 기억하군 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로 현재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막힘이 없다. 그후 지인들의 추천으로 대한휴먼회에 가입하였고 20107월에는 팀장이라는 직책. 이어서 부장직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남양주 한양종합병원, 맑은수병원, 대한민국요양병원, 브레인병원, 대진 요양병원, 의정부 민락의원 등 6개 병원의 200여명 간병인들을 관리하고 있다. 어느 병원이든 간병인이 부족하면 약속된 시간에 보내줘야 하며 이어 인건비 책정, 인건비 지급 등도 뒤따라야 한다. 간혹 급히 수요되는 간병인을 찾지못할때면 내가 택시를 잡아타고 직접 찾아간다. 혹은 택시비를 몇만원 들여서라도 멀리 있는 일군을 약속한 시간내에 대기시켜야 한다. 한번은 직접 환자를 간호하다가 몸으로 미끌어져 내려가는 환자를 받치다가 다리를 심하게 상했다. 그 미열로 현재 나는 도다리가 되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 업종에 종사하면서 간병일이란 아무사람이나 하는게 아님을 깊이 깨달았다. 적지않는 사람들이 간호를 왔다가 환자를 보고는 자신이 없어 도리머리를 저으며 돌아선다. 혹은 두어시간 하다가도 견지못하고 지어 새벽에 깜쪽같이 살아지기도 한다. 오직 천사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위해 봉사하려는 정신적 자세가 있는 자라야만 가능하다. 돈보다도 우선 마음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간병인의 직책은 고귀하고 신성하다. 때문에 나는 지금도 환자들의 안녕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아니 힘이 자라는한 멈추지않을 것이다

대필 / 전춘봉 기자 qcf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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