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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통신) 그에게 예술이란 아름다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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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NEWSPAPER OF HAPPINESS

파일명: 르누아르1

깊은 생각에 잠긴 르누아르의 젊을 적 모습

 

그에겐 예술이란 아름다움일 뿐

 

예술은 예술의 현장으로 나아감이란 말이 있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할 때. 비로서 작품의 가치를 아는 것이다. 오래전, 밤늦게 장맛비가 내리던 7월 9일 목요일 오후, 르누아르(Renoir)전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은 적이 있다.

 

이날 한여름 무더위에도 전시장 내부는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르누아르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알 수 있었다. 미술관 2층 ‘가족의 초상’ 테마 작품들을 설명하는 큐레이터 주위엔 20대부터 50대까지의 관객 30-40명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세련된 차림의 20~3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다. 그들은 대가의 작품을 가까이서 감상하는 즐거움을 한껏 만끽하는 표정이었다.

 


파일명: 시골무도회

시골 무도회(Danse a la campagne, 1883), 오르세 미술관

 

“르누아르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르누아르의 지인들을 모델로 삼았다. 춤을 추는 여인은 필시 알린느 샤리고일 것이다. 알린느는 파리 몽마르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셍 조르주 구역에서 르누아르를 처음 만나 몇 년 후 그와 결혼했다. 르누아르는 이 그림에서 배경을 희미하지 않고 단순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작품 구성에 특히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이 작품에는 팔, 드레스의 움직임, 언덕, 밀집 모자 등 수많은 블록 곡선들과 오목 곡선들이 서로 얽힌 채로 등장한다. 르누아르가 이탈리아 여행 중에 라파엘로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증거이다.”

 

[본문]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어떤 대상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이해한다는 건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가치를 가장 빨리 인식 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르누아르의 <몽마르트르 물랭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7,810만 달러(약 1,022억 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이는 빈센트 반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 8,250만 달러(약 1,079억 원), 재스퍼 존스의 <잘못된 출발> 8,000만 달러(약 1,046억 원)에 이어 전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그였기에 유작의 희소성 측면에서 손해가 불가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명성과 작품성이 얼마나 높게 평가받는지를 깨닫게 한다.

 


파일명: 피아노소녀

피아노 치는 소녀들(Jeunes filles au piano, 1892), 오랑주리 미술관

 

“르누아르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 그림에서도 흰 물방울 무느이의 붉은 옷을 입은 갈색 머리 소녀와 흰 옷을 입은 금발 소녀를 대치시켰다. 행복한 분위기의 실내 풍경이 탄생할 수 있던 것은 바로 두 소녀와 피아노의 구도 덕분이다. 이 작품에서는 화면의 중심 요소들이 안정된 구도에 위치하고 있고 보일 듯 말 듯 한 커튼, 꽃병, 촛대 등의 배경 요소들이 그림 속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르누아르가 의도했던 그림의 주제는 바로 소녀들이 열중했던 악보를 보며 피아노 치는 일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이 여전히 탑클래스로 대접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만의 화려한 색상은 그와 견줄만한 작가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며 그가 창조한 색채 세계를 통해 파라다이스를 꿈꾸었다. 근대 회화가 색채 구성을 최고도로 높이고 감각의 표현을 화려하게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도 그의 감각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한, 그림 속 인물의 행복한 표정은 화폭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그가 아름다움을 예술의 본질로 생각하고 일평생 이것을 추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파일명: 마리테레즈

바느질하는 마리-테레즈 뒤랑-뤼엘(Marie-Therese Durand-Ruel Cousant, 1882), 클락 아트 인스티튜트

 

“이 작품에서 르누아르는 보이는 대로, 그가 원하는 대로 장면을 해석하였다. 따사로운 햇살이 화려한 색깔과 빛깔의 자연 위에 비치고 있는 한낮의 풍경이다. 르누아르는 가족들만이 볼 수 있는, 소녀가 바느질에 열중한 모습을 포착해 냈다.

 

이 작품은 어떠한 엄숙함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르누아르는 다만 단순하고 신선한 순수한 아름다움과 걱정 없는 평온한 인생의 즐거움을 표현하려 했을 뿐이다. 르누아르는 화사한 빛이 하나되어 어우러지는 그 우연성과 순간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또한 르누아르는 이제 막 피어오르는 소녀의 아름다움과 함께,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는 소녀의 수줍은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날 서순주씨(전시커미셔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말년에 르누아르는 아름답게 그려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한마디는 르누아르의 예술 세계를 단적으로 정의하는 동시에 그의 예술 철학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예술 작업에 관한 한 그 어떠한 지적, 논리적 개념을 거부했던 그의 예술 철학은 화폭에 담아지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만이 화가의 역할이자 본분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사고에서 출발했어요.”

 

이날 기억난다. 서순주 씨는 또한 “르누아르 스스로가 정립한 회화의 본질이란, 회화는 벽을 장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그림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단순하고 명료한 명제였다” 했다.

 

르누아르는 라파엘리의 작품에 대해 평하면서 그가 파리 풍경을 화폭에 담아낼 때는 장례식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나라면 그것 대신에 결혼식 장면을 그려 넣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그의 낙관적인 세계관은 자신의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근간이 되었고 그 일관성은 그가 세계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될 수 있게 했다.

 

그 낙관적인 세계관의 배경에 대해 서순주씨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가 작업의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르누아르의 회화가 추함을 거부하고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배경에는 회화를 통해서 조화로운 사회건설을 실현하고자 하는 그의 이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적 가치를 작업의 바탕에 두고 있기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한결같이 작가로부터 행복할 권리를 부여 받은 듯 묘사되고 있습니다.”

 

육체의 고통도 르누아르가 가진 예술에 대한 낙관적인 세계관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는 1897년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면서 오른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얼마 후 오른팔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상태는 심각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류머티즘에 걸려 심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고 말년에는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조차 없었다. 붓을 손에 묶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는 한 점의 슬픔도 괴로운 투쟁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힘찬 생명의 찬가만이 있을 뿐이다.

 

이뿐 아니라,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는 삶의 기쁨과 젊음의 아름다움,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이 눈부신 색채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르누아르가 작품 주제로 도입한 풍경, 정물, 초상 등은 모두 생동하는 인간적 따스함을 발산한다. 특히 르누아르는 평범한 대상들에서도 환희와 행복을 끄집어내 활발한 몸짓과 자세, 매력, 우아함으로 화폭을 가득 채웠다. 이런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르누아르는 다양한 주제를 사용했지만, 그가 가장 관심을 가진 대상은 여성과 꽃이었으며, 둘 중에서도 여성이었다. 이는 그의 낙관적인 세계관과 더불어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된다.

 

르누아르에게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찬란한 살결을 지닌 여체는 생명 그 자체를 사랑한 이 화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주제가 될 수 있었다. 르누아르는 젊을 때부터 여인을 그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옷을 입은 모습이며, 의상과 장신구의 화려한 효과까지 합쳐서 여성미를 표현하고 있으나 반드시 육체의 미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이 여성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화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성용 기자/ 사진제공·르누아르 전시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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