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5.08.21 (목)

  • 구름많음동두천 29.3℃
  • 맑음강릉 33.1℃
  • 구름많음서울 29.7℃
  • 구름많음인천 29.1℃
  • 구름많음수원 29.3℃
  • 구름조금청주 30.7℃
  • 구름조금대전 30.6℃
  • 구름조금대구 30.8℃
  • 구름조금전주 31.3℃
  • 맑음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0.5℃
  • 맑음부산 31.2℃
  • 맑음여수 29.7℃
  • 맑음제주 31.5℃
  • 구름조금천안 29.0℃
  • 맑음경주시 31.7℃
  • 구름조금거제 30.6℃
기상청 제공

국제

‘주방은 나의 집입니다’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8

2009, 나는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자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꿈을 안고 한국에 왔다. 9년이란 시간이 지난 오늘 주위의 친구들이 나를 만나면 돈을 얼마 벌어났냐, 집은 몇채 갖췄냐고 자주 묻는데 나는 그 내용에 대한 대답보다는 현재 개성면옥이라는 음식점의 주방장으로 있으면서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조선족으로 한국에 와 한국인 음식점에서 주방장으로 되기까지 역시 쉬운 일은 아니였다. 그만큼 피타는 노력과 땀을 흘려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중국에 있을 때 음식점을 경영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한국에서의 첫걸음은 비교적 순리로왔다. 돈보다는 우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서울의 어느 고기집에 들어갔다. 돈보다는 우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굳히고 서울의 어느 고기집에 들어갔다. 역시 하루 10간 노동에 힘들기는 했지만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참고 견디며 일했다.

그때부터 나한테는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음식점에서든 집에서든 짬만 있으면 TV에서 나오는 명인음식제작 프로를 보았다. 특히 그 프로에서 등장하는 명인들의 강의를 귀담아 들으면서 음식 종류에 따라 소스를 만드는 방법으로부터 김치 담그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배웠다. 그리고 매일 일찍 출근해서는 주방에 무엇이 부족한지 자세히 점검하고 일단 요리사가 일을 시작하면 어떻게 음식을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군 했다. 재미도 있고 진보도 빨랐다. 한동안 지나 주방일이 바쁠때에는 소스도 만들고 필요한 요리도 제작할 수 있었다.

6개월후에는 고기집보다는 좀 더 규모도 크고 잘 되는 음식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로 찾은 음식점이 지금의 이 개성면옥이다. 그러니 이 음식점에서만 거의 8년을 있은 셈이다. 이 음식점은 규모도 크거니와 면옥을 비롯하여 고기, , 영양돌솥밥 같은 등 여러 가지 음식을 동시에 경영하기에 매일 드나드는 손님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항상 일손이 딸리고 긴장했다. 그중에서도 배와 사과같은 것을 깍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고 손이 많이 가야했다. 과일 껍질을 벗기는 일이란 순순하 수공이다. 그 효력을 높이는 방법이란 숙련된 일솜씨였다. 나는 궁리 끝에 자주 계란을 갖고 손놀리는 연습을 했다. 과연 이 방법이 효과를 보아 과일깎는 능수로 되었는데 과일 한박스도 잠간새에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많이는 시키는 일외에도 가급적 경영과정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발견해 보충해주도록 하였다. 주방에서 때로 원자재 랑비가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알고보니 원자제 배정에 문제가 있었다. 예를들어 손님이 3명이 들어와 면을 요청할 경우 3그릇에 해당하는 원자재를 맞게 재정해야하는데 그 양을 잘 맞추지못할 경우 랑비를 초월하게 된다. 나는 시간만 있으면 판사리 치는 연습도 하고 자주 원자재 양을 맞춤하게 배정하는 시범도 해보았다. 과연 이 노력도 헛되지않아 2인분이든 5인분이든 내 눈으로 짐작하여 원자재를 갖추면 별로 오차없이 완성되어 낭비가 없었다. 이러한 기술을 익히는데도 거의 1년은 걸린 것으로 기억된다. 8개월후 나는 이 면옥의 면장으로 되었다. 5년후에는 또 이 음식점의 주방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면옥의 전반 음식경영을 책임지게 된 셈이다.

음식점 주방장이 되던날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거듭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고향이 흑룡강성 벌리현이였던 나는 벌리중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농사에 종사하였으며 행선촌이라는데서 10여년간 단지부서기를 한 경력이 있다. 94년도에는 나도 한번 장사를 해볼 의향으로 가목사에 가 4년동안이나 냉면집을 경영하였다. 그러던중 아들이 대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아들 공부 되바라지를 한다고 몇 년간 할빈에 가 머물렀다. 아들이 길림대학에 입학하자 나도 결국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문화가 다르고 습관이 같지않는 한국에 와 한국음식점의 주방장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쉽게 얻어진게 아니며 그만큼 소중하게 간주게 되었다.

나는 주방을 집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음식자재를 한가지 들여온다든가 한가지 음식을 만든다거나 내 집의 것이라 여긴다. 때로 조금이라도 상하거나 이상이 있는 자재가 들어오면 가차없이 반품한다. 손님이 먹는 것이란 내가 먹는것과 같기 때문이다. 주방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내 몫이지만 냉장고가 고장났다거나 식기가 하나 잘못되어도 모두 내 몫이다.

한편 이 음식점에서 몇 년간 일하면서 실천적으로 막히는 일이 없지만 언제나 이론지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여 그 아쉬움을 음식점 사장님하게 얘기했더니 비용을 대주며 요리학원에 가 학습하라고 하였다. 현재 대림요리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명인은 아니지만 나는 구간 음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업계에서 알아주는 주방장으로 성장했다. 요즈음은 몇몇 음식점에서 돈을 더 줄테니 오라고 하지만 나는 거듭 생각하고 모두 거절하였다. 사람이란 인격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중요하지만 이 세상에 돈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 집이나 다름없는 이 음식점의 주방을 떠나기 싫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내 직업을 사랑한다. 한국이든 어디서든, 또 어떤 상황세서든 이 직업은 버리지 않을 것이며 이를 평생의 동반자로 간주하며 보람찬 삶을 살아갈 것이다 

/전춘봉 기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SNS TV

더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


배너

포토뉴스

더보기

파슬, 2025-2026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 닉 조나스와 함께 독점 컬렉션 'MACHINE LUXE' 캡슐 공개

리처드슨, 텍사스, 2025년 8월 20일 /PRNewswire/ -- 글로벌 슈퍼스타이자 배우, 자선가인 닉 조나스(Nick Jonas)가 세계적인 시계 및 액세서리 브랜드 파슬(FOSSIL)과 손잡고 대담하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였다. 2025년 8월 20일출시되는 이번 한정판 컬렉션은 조나스의 시계 수집 열정, 독특한 개인 스타일,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파슬 디자인 유산을 결합해 시대를 초월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담아내는 동시에 고객들의 브랜드 사랑과 개인적인 유대감을 다시 한번 강화한다. 닉 조나스는 "이 컬렉션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소재의 사용"이라며 "어떤 스타일에도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매우 개인적인 제품들이다.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시계와 이번 컬렉션을 전 세계와 공유하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평생 시계 애호가로서 첫 시계로 파슬을 구매했던 조나스는 이 완벽한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브랜드와 협력해 고향인 뉴저지에서 촬영된 글로벌 캠페인을 선보였다. 이번 캠페인은 유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사진작가 앤서니 맨들러(Anthony Mandler)가 촬영하고,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