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한영제 장로의 업적은 우선 전16권이나 되는 방대한 한국기독교백과사전을 한국교회에 내 놓았다는 것이다. 근 10년에 걸쳐서 작업을 했던 그 사전은 아직까지도 목회자들이나 교계에서 찾고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그만큼 그 내용이 알차고 방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최초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1,2권)’를 출간하는 일에도 협력하여 한국기독교 역사하면 기독교문사에서 발행한 이 책을 꼽는다. 각 신학대학교나 기독교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영제 장로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는 평안도 출신이고 나는 전라도 출신이었건만 내가 번역한 책 두권을 맡아 출간해 주고 원고료까지 지불해 준 일은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번역책 중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도히아끼오(土肥昭夫) 교수가 저술한 ‘일본기독교회사’는 한국에 일본기독교역사를 소개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 하나는 자비량 전도자로 한국에 상륙하여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추방당한 오나나리찌(織田楢次, 한국명 田永福)의 지게꾼(우리말로 ‘한국을 사랑한 어느 일본인 전도자’)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한영제(1925-2008) 장로는 평북 구성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출생한지 얼마 안되어 경기(驚起)를 일으켜 크게 고생하였는데 그렇다고 한의원에 갈만한 그런 처지는 못 되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죽을 줄을 알고 강보에 싸서 방 한구석에 밀어놓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였다. 그런데 강보에 쌓인 아이가 인기척이 있기에 강보를 쳐다보았더니 아이가 숨을 쉬고 있었다.
어느새 입술 가에는 웃음이 깃들면서 “방긋 방긋” 웃음에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한영제는 자라나면서 부모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이구나”라는 마음으로 성장해 갔다. 그의 가정은 3대째 신앙의 가정으로 한영제는 가는 곳 마다 신앙생활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참외밭 주인에게 참외 1개에 3전씩 구입하여 시장에 나가 5전을 받고 팔았다. 이렇게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기에 자연히 중학교에 진학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돈을 모아서 중학교에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우체국 임시직원으로 취직하여 우편물을 배달하고 때로는 전보도 접수하면서 한 밤중이라도 전보를 배달하는 등 최선을 다해 살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성장하면서 해방을 맞이했지만 마음껏 신앙생활 할 수 없음을 알았던 그는 다신 월남하였고 서울 영락교회에서 가족을 만나게 된다. 그 기쁨도 잠시뿐 그 무서운 6. 25 전쟁을 만나 곧 바로 군에 입대하였다. 그 치열한 강원도 치악산 전투에서 극적으로 살아나 제대를 하고 다시 대구에서 [정문사]라는 서점을 열고 문서운동에 뛰어 들었다. 사업이 확장되자 [기독교문사]라는 간판을 내 걸고 출판업에 손을 대면서 출판업계의 일인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업적이 인정이 되어 1993년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문화부분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출판업계에만 알리진 인물이 아니라 1993년 예장(통합) 총회에서 장로 최초로 총회장(제77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출판업계를 통해서 얻어진 이익금을 한국교회에 환원해야 한다면서 경기도 이천에 [한나원]을 설립하고 오고 갈 곳이 없는 할머니들에게 편히 쉴 수 있도록 하였으며, 문서운동을 하면서 모았던 자료 15만점을 전시하기 위해서 한나원 옆에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07년도에는 한국교회 성령운동 100주년을 맞이해서 성령운동의 발상지였던 평양 장대현교회를 복원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 방문하면 된다.
글․김수진 교수(한국교회역사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