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연합 (SNSJTV) 김용두 칼럼 | 서울 마트에서 라면과 식빵 가격이 “유난히” 비싸게 느껴졌던 시간은 단순한 체감이었을 가능성이 커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간 국내 B2B 밀가루 시장에서 가격·물량을 합의했다는 혐의로 7개 제분사를 조사·심의 절차에 착수했고, 담합 영향을 받은 관련매출액을 약 5조8000억원으로 산정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최대 과징금은 관련매출액의 20% 수준까지 거론된다.
핵심은 “과징금 규모”가 아니라 “밥상으로 전가되는 구조”와 “피해 회복 장치의 부재”다. 밀가루는 라면·빵·과자·외식 원가에 광범위하게 들어가는 중간재다. 제분 단계에서 가격이 인위적으로 왜곡되면, 제조·유통 단계의 가격 결정(또는 ‘편승 인상’)을 거쳐 소비자 가격으로 누적 전가될 수 있다. 그래서 담합은 소비자에게 ‘조용한 세금’처럼 작동한다.
이번 사안에서 시장 파장이 큰 이유는 3가지다.
첫째, 시장 집중도가 높다. 공정위 조사·보도에 따르면 해당 7개사가 B2B 시장에서 88% 수준 점유율을 가진 것으로 언급된다. 경쟁 압력이 약한 구조에서 담합이 결합되면 가격 왜곡이 길어지고, ‘원가 하락분 미반영’ 같은 비대칭 가격 조정이 반복될 유인이 커진다.
둘째, 공정위가 ‘가격 재결정 명령’ 카드를 다시 꺼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담합으로 형성된 가격을 폐기하고, 원가·마진 근거로 가격을 재산정해 보고하도록 하는 강한 시정 조치로 소개된다. 2006년 제분 담합 사건에서 이 조치가 활용됐고, 당시 밀가루 가격이 약 5% 인하된 것으로 당국이 파악했다는 보도가 있다.
다만 “정상화”로 이어지려면, 제출 자료 검증(원가 산정, 마진 기준, 거래조건 변화 반영)과 사후 모니터링(실제 납품단가·리베이트·물량 조건 점검)이 함께 가야 한다. 숫자 맞추기식 보고로 끝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셋째, 피해자 구제가 구조적으로 약하다. 한국은 담합 등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의 최대 3배까지 배상(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최종소비자처럼 거래 단계가 여러 번 끼는 사건에서는 개별 소비자가 손해와 인과관계를 입증해 청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크다.
결국 “과징금은 국고로, 피해는 소비자가 떠안는” 비대칭이 남기 쉽다.
앞으로 필요한 ‘강력 조치’는, 공정위 제재만으로는 부족하다. 담합이 “남는 장사”가 되지 않게 만들려면, 행정제재(과징금·시정명령) + 민사구제(집단적 손해배상) + 형사·경영책임(개인 처벌·임원 제한) + 자본시장 규율(공시·조달비용 페널티)을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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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또는 경쟁법 분야 집단적 손해배상) 도입: ‘피해자에게 돈이 돌아오게’
EU는 경쟁법 위반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Antitrust Damages Directive(2014/104/EU)’로 증거개시·소멸시효·연대책임 등 장벽을 낮추는 방향을 제도화했다.
영국은 2015년 제도로 경쟁법 사건에서 ‘옵트아웃’ 집단절차를 도입해, 개별 피해액이 작은 대규모 피해도 한 번에 다루는 구조를 만들었다.
한국도 전면 도입이 부담이면 “담합(카르텔)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핵심은 (1) 피해자 범위 추정, (2) 손해액 산정의 표준화(예: 초과가격률 추정), (3) 소송수행 주체(소비자단체·특별목적기구)와 남소 방지 장치(법원 허가, 엄격한 요건)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
오너·경영리더십 책임 강화: ‘개인에게 불이익이 가는 구조’
해외에서는 카르텔을 ‘기업 범죄’로 다루면서 개인 제재를 강하게 건다. 미국은 가격담합을 형사 범죄로 보고 개인 징역형 및 기업 벌금 상한을 두며(규모에 따라 이득·피해액 기준 가중 가능), 경쟁당국이 강하게 집행한다는 점을 공식 자료에서 명시한다.
호주는 카르텔 가담 개인에 대해 징역(최대 10년) 가능, 임원 취임 제한(관리자 결격) 등 제재 수단을 제시한다. 또한 회사가 임원에게 벌금·제재를 사실상 보전해주는 행위(인디머니파이) 제한 취지도 명확히 한다.
한국형 옵션은 다음이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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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위반 기업에 대해 ‘준법감시 의무(컴플라이언스 모니터) 부과’와 외부 감사를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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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관여 임원의 사후 취업 제한·임원 결격(특정 기간 상장사·대기업 임원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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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환수(클로백)·보상체계 개편을 ‘시정조치 패키지’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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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 제도의 실효성 강화(내부자 보호·보상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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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재결정 명령’의 실효성 담보: 유통·가공 단계까지 연동 점검
이번 조치가 소비자 체감으로 이어지려면, 제분 가격만 내려서는 부족하다. 라면·빵·과자 등으로 전가된 구간에서 “원가 하락분이 최종가격에 반영되는지”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공정위·지자체·소비자단체가 협업해 품목별 원가-가격 연동 지표(밀가루 투입비중, 납품단가 변동, 판매가 변동)를 공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가격 정상화의 혜택이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했는지”가 성과지표가 돼야 한다. -
금융·자본시장 강제력: ‘공시’와 ‘조달비용’을 벌로 만들기
담합은 결국 기업가치와 신용에도 반영돼야 억제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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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상장사가 중요한 소송·행정절차 등 “중요한 법적 절차”를 공시하도록 하는 규정(Item 103)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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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투자판단에 중요한 ‘리스크 요인’을 투자설명서(프로스펙터스)에 포함시키는 원칙을 두고 있다(Prospectus Regulation의 위험요인 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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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는 신속 공시해야 하는 연속공시 체계를 운영한다(ASX Listing Rules 3.1 등).
한국에서도 IPO(기업공개)·유상증자·회사채 발행 등 ‘공모’ 단계에서 (1) 경쟁당국 조사·제재 리스크, (2) 손해배상(3배 배상 포함) 가능성, (3) 준법통제 실패(내부통제) 항목을 “정량·정성”으로 더 촘촘히 요구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즉, 담합이 적발되면 과징금뿐 아니라 “자본조달 비용 상승(가산금리), 투자자 신뢰 하락, 주가 리레이팅”이 동시에 벌어지도록 설계를 바꾸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번 밀가루 담합 이슈의 본질은 “담합의 근절”과 “피해 회복”이 분리돼 있다는 데 있다. 공정위가 과징금과 가격 재결정 명령을 병행하는 방향은 ‘시장 가격 정상화’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 자체로 소비자 피해가 자동 복구되지는 않는다.
집단적 손해배상(집단소송) 도입, 오너·임원 개인책임 강화, 자본시장 공시·조달비용 페널티까지 결합될 때 “담합은 손해 보는 장사”로 구조가 바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