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한국농아인협회(이하 협회) 고위 간부 4명에 대해 수천만 원 상당의 고가 골드바 제공 등 업무상 배임 및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협회의 공적 자금 사적 유용과 권력 남용 실태가 드러나면서, 복지 예산의 투명성과 장애인 단체의 책무성 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드러난 비리 혐의와 복지부의 수사 의뢰 배경

복지부는 특정감사를 통해 협회 고위 간부 4명의 범죄 혐의를 확인하고, 다음 달 중 형법 및 관련 법령 위반 혐의로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에 따르면,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국농아인협회 감사 조치사항 보고'에는 △2021년 조남제 전 사무총장에게 2,980만 원 상당의 골드바를 제공한 행위(업무상 배임) △2023년 세계농아인대회 예산의 불투명한 운영 및 부정 집행(업무상 배임) △복지부 승인 없는 허위 문서 발송(업무방해) △수어통역사 외부 행사 참여 금지 및 협회 내 취업 방해(장애인 차별) 등의 혐의가 포함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근로기준법, 형법 위반 혐의로 다음 달에 수사의뢰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며, "관련 의혹을 추적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핵심 개혁 과제- 보조금 투명성 및 내부 견제 시스템 강화

이번 사건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공익 단체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했음을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제도 개혁 방안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① 보조금 '신탁관리제' 도입 추진

전문가들은 공적 자금 집행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보조금 신탁관리제(Trust Management System for Subsidies) 도입을 제안했다. 이는 대규모 정부 보조금을 단체 계좌가 아닌, 정부가 지정·관리하는 독립된 신탁 계좌를 통해 집행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단체는 지출 요청서를 제3의 전문 검토 기관에 제출하고 승인받아야만 예산을 집행할 수 있게 되어, '골드바 제공' 등 사적 유용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② 공익 이사 의무 선임 및 내부고발자 보호 법제화

내부 권력의 전횡을 막기 위한 민주적 견제 장치 강화도 촉구됐다. 정부 지원금 규모가 일정 기준 이상인 단체는 이사회 구성원 중 25% 이상을 복지부가 승인하는 외부 공익 이사로 의무 선임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익 이사는 회계, 법률 전문가 등 비리에 민감한 전문 인력으로 구성하여 이사회의 감시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더불어, 비리 신고를 용이하게 하고 협회 내 차별 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한 내부고발자 특별 보호 및 포상 제도의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③ 통합 감사 전담 기구 신설 및 빅데이터 활용

복지부의 임시적 감사로는 복잡한 비리 의혹 규명에 한계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공익 법인 및 단체의 감독 기능을 통합하고 회계/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통합 감사 전담 조직을 신설하여 정기적이고 전문적인 감사를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또한, 정부 보조금 통합 관리 시스템과 연동하여 비정상적인 고액 지출, 특정 업체와의 연속 거래 등 이상 징후를 자동으로 포착하는 빅데이터 기반 시스템을 개발하여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이수진 의원은 "복지부의 엄중한 처분, 형사처벌을 넘어 진정 농아인들을 위한 한국농아인협회가 될 수 있도록 협회의 정상화가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가 장애인 복지 예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모든 공익 단체가 투명성과 책무성이라는 원칙 아래 운영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