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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M

인간과 사회의 이상을 바라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은 무엇을 목표로 하며 자라고 있는가?

지나가는 고등학생 10명중에 9명을 붙잡고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좋은 대학가는 거요'라고 대답한다.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모두 대학이라는 관문을 거쳐가야 한다고 여기고 있고 대학을 목표로 하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하려하면 ‘왜 힘든 길을 선택하느냐’라며 특이하게 여긴다.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 "너는 꿈이 무엇이니?"냐고 물어보면 자신의 꿈에 대해서 명확하고 자신있게 말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이 않다. 심지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도 허다하다. 꿈을 꾸게 된 동기를 들어보면 그것 또한 명확하지 않고 대충 그것밖에 없다는 식의 대답을 흔히 듣게 된다. 그리고 또 물어본다. "너는 어떤 사람이니?"라는 이 질문에 아이들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이런 질문보다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아이들은 "어느 학교 몇학년 몇반이고 어디에 살아요"정도로 대답한다. 천편일률적인 이 대답은 질문에 대한 답안지(?)처럼 흔히 우리가 쓰고 있다. 또 이 범주를 벗어난 대답을 하면 '특이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아이들은 왜 그럴까?

아이들은 왜 그럴까? 아니 아이들만 그럴까? 그렇지 않다. 이 사회에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목표도 비슷하고 살아가는 모양도 비슷하다. 초등학생은 좋은 중학교에 진학하려하고 중학생은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려하고 고등학생은 보다 수도권에 있는 보다 이름 있는 하이클래스 대학을 가려하며 대학생들은 좋은 일자리를 갖고 좋은 상대(애인, 결혼상대)를 찾는다. 그런 틀 안에서 20~30년의 인생을 비슷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선호하는 것도 비슷하다. 만약에 당신이 춤을 잘 추는 사람이라면 '마이클 잭슨'의 백댄서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쩔 것인가? 당연히 'OK'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영광'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사회와 세상에서 널리 유명해진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몹시 부러워하며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20~30년 전만해도 당시 아이들은 과거의 위인들을 책을 통해 보면서 그들의 삶과 정신을 닮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너무 드물다. 그리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연예인'을 선호하고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대화의 초점과 생활의 관심사 중에 빼놓아서는 안 될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린 셈이다. TV와 인터넷의 눈부신(?) 보급으로 생활문화와 성공 모델이 매스컴의 테두리에 너무 갇혀버려서 일지도 모른다. 지위가 떨어진 교사의 말보다 TV스타의 말이 더 귀에 쏙쏙 들어오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풍토가 일상이 되어버린 근본의 이유는 바로 '완성되지 못한 자아와 정체성' 때문이다. 그래서 분별력없이 마냥 ‘매스컴 따라쟁이’식의 문화가 팽배한 것이다.
 

   왜 우리는 '자아'가 미완성된 채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이 미완성된 채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학교의 교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주입식 교육'의 그늘 아래서 매우 '수동적'인 체질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그 '수동적'인 습관이 능동적, 도전적, 창의적 사고와 행동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주입식은 마치 공장에서 수천만 개를 똑같이 찍어놓은 제품처럼 이 사회의 교육의 현실은 그와 같아서 별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렇다면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교육계? 아니면 부모? 특정한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어른이든 그렇게 그냥 자신의 삶을 내버려두고 사는 아이든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특히 변화의 필요성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책임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마치 그것은 길에 쓰러진 사람을 쳐다본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도움이 필요하네'라고 인식한 사람까지 모두의 책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얼마나 우리는 그 책임에 대해 행동하고 있는가. 실례를 들자면, 과거에 일어난 살인사건 하나가 있다. 새벽3시경에 아파트건물 아래서 한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모두 38명이었다. 두 명 정도의 사람이 베란다에서 "괴롭히지 말라","그냥 두라"는 정도의 말로 말릴 뿐이었지 직접 내려와서 말리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러고는 모두 불을 끄고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괴롭힘을 받던 그녀는 그 길에 죽어있었다. 이처럼 곳곳에 현존하고 있는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느끼고 실행으로 옮기려는 노력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을 의식하는 문제일 수도 있고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하겠지'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사고와 행동 때문이다.

 

   변화라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것일까?

그렇지 않다. 변화라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부터 하나씩 변화시키고 이상향을 향해 발전시켜나가면 되는 것이다. 돈이 드는 문제도 아니고 나라를 빼앗겨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독립운동처럼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상업적인 문화에 휩쓸리지 말고 부조리한 모습과 타협하지 말고 누군가를 함부로 비판하지 말고 물질과 이상을 바꾸지 말고 보다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소신 있게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기만 한다면 일단은 충분히 기본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나 교사와 같이 자신이 아이를 지도할 위치에 있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더 이상 수동적으로 공부만 하는 아이로 키우지 말고 능동적인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진정으로 아이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조언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깨닫고 많은 것에 도전하여라.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이상적인 삶을 위해서 끊임없이 달려가거라. 주변의 판단과 비난에 흔들리지 말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이상적인 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여라."
 

   능동적인 자세로 '분명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것과 함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분명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것과 함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진진한 태도이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진정한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진정으로 상대를 위해주고 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칭찬할 때와 지적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너무 무시하거나 너무 보호해주는 식으로 치우쳐서 가르치면 안 된다. 전자든 후자든 아이들은 병든 병아리처럼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너무 감정에 휘둘리거나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너무 성급하고 조급해한다. 흔히 지나가다 보면 부딪칠 수 있는 아이와 대화해보면 자주 보이곤 한다. 그 아이의 내면의 모습이. 몹시 흔들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책임감이 느껴진다. 바로 그 아이의 모습이 잘못된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몫

요즘 매스컴과 주변에서 ‘나눔’과 ‘힐링’이라는 단어를 쉽게 접하게 된다. 그만큼 부족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시대적 바람이 매스컴과 문화까지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부족한 사람들뿐 아니라 부족해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까지도 세밀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아이들이 해결점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불안함 속에서 그렇게 외로운 방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도 문제고 알면서도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도 문제다.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이 사회가 따듯해지고 사람들이 따듯한 사랑을 베푸는 것에 대해서 풍족해지길 바란다. 배척시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버리고 포용하고 받아드리며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이해심이 가득한 인간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이야기를 건 낼 수 있는 용기 가득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이 안정을 찾고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이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미래는 나이든 사람이든 나이 적은 사람이든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인생의 황혼이 지는 이들에게는 ‘삶에서 가장 값진 가치’를 조언으로 물려주어야 할 몫이 있고 젊은이들과 아이들에게는 그 조언을 통해 삶을 깨우치고 이 사회의 미래를 잘 가꾸어나가야 할 몫이 있다.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이 적든 많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 우리 사회의 온도는 항상 영상이 될 것이다. 마치 햇살 가득한 봄날처럼.

 

김민제(에너메이티스트 cremoti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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