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의 행복한 세상만들기>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아동이 있다. 하얀 얼굴에 조금은 헝클어진 단발머리, 웃으면 보조개가 들어가고 이쁘게 보이려고 애를 쓰던 아동이었다. 학교의 복지실을 통해 의뢰 되어온 아동으로 의뢰사유는 공부방에서 2학년 남자친구에게 가슴을 보여주어서다.
보통 이런 일이 발생되면 어른들과 선생님, 혹은 복지사들은, 당황스러워하며 아동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하게 되고 이전과 다른 행동패턴의 반응을 보이게 된다. 갑자기 탐문하듯 질문하게 되거나, 아동의 성적가치관에 대해 의문을 갖거나, 과도한 안타까움으로 너무 잘 대해주거나, 비난하는 등의 반응이 그런 것이다.
아동의 애정결핍 원인
이 아동의 경우는 가슴을 보여주어서라도 친구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애정결핍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 된 친구가 가슴을 보여주어야 날 좋아해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아동은 성이 무엇인지, 섹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성인들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랑을 받고 싶은 애정의 궁핍 상태에서 인터넷, 매스미디어에 의해 배운 대로 행동한 것이며, 이를 통해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할 수도 있는 성폭행과 같은 결과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어린 나이인 것이다. 아동의 이러한 상황은 자칫 왜곡된 성적 가치관으로 진행 될 소지가 다분하지만, 다행이도 그렇게 진행되기 이전에 만나게 되었다.
아동의 가정은 편부이며 조모의 양육을 받고 있다. 아버지는 아동의 어머니와의 이혼 사유로 할머니를 비난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할머니와의 관계는 악화되어 있었다. 또한 아버지의 직업은 외근이 많은데다 할머니와의 악화된 관계로 인해 외박도 잦은 상황, 즉 6개월씩 외부에서 살기도 하는 등의 생활을 하여 아동과 소통 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적은 편이고, 아동의 양육에 대해 책임을 질 의욕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머니는 아동에 대해 의식주는 해결해주지만 정서적 교류도 없고, 화를 잘 내고 욕을 잘 하며, 귀찮아하는 행동으로 대하고 아동의 학습에 대하여 무관심한 편이었다.
아동과의 초기 상담 진행
아동은 불안감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상담사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자기욕구를 숨기고 눈치를 보였으며 이런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난다. 의뢰되어 왔을 때는 올바른 성가치관 형성으로 왔으나 상담 목표를 변경하여 아동의 자존감 회복과 건강한 사회관계 맺기에 초점을 두어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동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를 진행하면서도 항상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아동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가치에 대해 세상에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할 만큼 절망적으로 자기부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심리치료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생활환경이 변화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아버지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였다. 서너 번의 요청으로 겨우 아버지와 아동이 함께 상담을 하게 되었을 때 아동은 눈물을 계속 흘리면서도 소리를 내어 울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며 울부짖었다. 아동의 이러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서러움에 아버지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딸아이를 가만히 안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면서도 아버지의 잘못에 대한 합리화를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며 주 양육자인 할머니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면서 아동의 동의를 얻으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강담 진행
상담이 끝나갈 때 즈음해서 아동을 내보내고 아버지와 상담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아동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마음이 안가는 딸이라고 하였으며 본인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고, 아동과 공감하고자 하는 의지가 미약했다. 또한 할머니가 주 양육자임에도 할머니와의 갈등이 딸아이에게 미칠 영향쯤을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본인 위주로 한풀이 하듯 할머니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들만 하였다. 아동이 사랑받고자 하는 어린 마음에 가슴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자기 연민에 빠진 아버지의 불평을 한동안 들어주다 조용히 아동의 심리 상태와 사회관계를 맺는 패턴을 심리검사를 토대로 직면시켰다. 아동이 이 상태로 사회관계 맺기를 진행할 경우 성폭력을 당할 위험은 100배나 된다고 이야기 하였으며 자존감이 너무 낮은 관계로 소속감의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괴감과 자기부정, 욕구좌절을 경험하게 되며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였다. 아동의 아버지로써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부정을 기대하며 차분하게 사실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동안 아버지는 점점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보였다.
조용히 서로 같은 생각이었을지 다른 생각이었을지 모를 침묵을 주고받으며 상담을 마무리하였다. 이후 아버지에게 전화로 딸과의 관계 맺기에 대해 긍정적 경험과 표현의 횟수가 많아지도록 부탁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조금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상담 후 아동의 변화
이후 아동의 변화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웃음이 많아졌고, 다른 친구들에 대해 의기소침하거나 욕구를 좌절시키기보다 의견말하기가 잘 진행되었으며, 할머니에 대한 생각도 점점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갔다. 할머니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줄어들어 할머니와의 관계도 조금씩 개선되어졌고, 이러한 변화는 학습에도 영향을 미쳐 성적이 향상되고 다양하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흔히들 ‘문제 아동은 없다, 문제가정만 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부모들에게 아동의 문제행동에 대한 많은 책임을 떠넘기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상담을 하다보면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건, 해결은 가정 안에서 시작되었을 때 훨씬 빠르게 변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외부에서 원인을 찾아 남 탓하기보다 가정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한다면 가정의 행복을 되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김진희(한국학교상담지원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