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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이슈분석)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정점에서 삼성전자 노사 충돌

 

데일리연합 (SNSJTV) 송동섭 기자 |  타이밍이 잔인하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7조 2000억 원이라는 제조업 역사에 유례없는 수치를 찍은 바로 그 시점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총파업 위기가 덮쳐왔다.

 

세계 반도체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 돌파를 목전에 둔 슈퍼사이클의 절정, 그 한가운데에서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소속 조합원 3만 7000여 명이 23일 경기 평택 반도체 사업장 앞에 집결하며 '영업이익의 15%, 상한 없는 성과급 제도화'를 외쳤다.

 

노조가 예상하는 올해 영업이익 270조 원의 15%를 대입하면 40조 5000억 원, 1인당 평균 6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 요구다. 노조는 다음 달 21일부터 18일간 5개 사업장 반도체 라인을 전면 정지하겠다고 예고했고, 사측은 수원지방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최고의 호황기가 최악의 내홍으로 뒤덮이고 있다.

 

이 갈등의 배경에는 삼성과 SK하이닉스 사이의 보상 격차가 자리한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상한 없이 지급하기로 고정해두고 있으며, 올해 SK하이닉스 직원들이 받을 성과급은 평균 7억 원, 최대 1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보상 차이가 수억 원대로 벌어지면서 최근 4개월간 삼성전자에서 약 200명의 엔지니어가 이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조 관계자가 "현 상황이라면 삼성전자 직원들이 SK하이닉스로의 이직을 고려하지 않겠나. 핵심 인재가 빠져나가는 건 삼성전자가 망하는 길"이라고 말한 것은 허언이 아니다. 이미 인재 유출의 물줄기는 시작됐다.

 

사측의 거부 논거도 분명하다. 반도체는 자본집약형 산업의 극단에 있다. 파운드리 공정은 2나노를 넘어 1나노 시대를 향해 질주 중이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차세대 제품인 HBM4 경쟁에서 뒤처지면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영영 내줄 수 있다.

 

이규복 전 반도체공학회 회장은 "AI 반도체 시대에는 훨씬 큰 돈이 필요하다. 개발 시기를 놓치면 경쟁사에 고객들을 뺏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지금 파운드리 흑자전환을 목전에 두고 엔비디아, 테슬라, 애플 등 빅테크 수주 확대에 전력을 기울이는 시점이다.

 

영업이익의 15%를 매년 성과급으로 고정 지출하는 구조가 제도화되면, 그 자금이 R&D와 설비투자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이 사측의 핵심 우려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이찬희 위원장도 "삼성은 단순 사기업이 아닌 국민의 기업"이라며 노조에 신중한 판단을 촉구했다.

 

글로벌 시각은 더 냉정하다. 블룸버그는 이 사태를 "AI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정점에 달한 시점에 발생한 심각한 악재"로 진단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자동차, 컴퓨터, 스마트폰 등 반도체를 사용하는 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경쟁사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짐작된다. 파운드리 1위 TSMC, 메모리 선두권의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인텔은 모두 안정적인 노사 관계 속에서 생산 라인 확충과 R&D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이크론은 최근 한국 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에도 착수했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의 타격은 협상 카드가 아닌 실질적 재앙이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한 번 멈추면 재가동에 한 달 이상이 걸린다. 장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웨이퍼는 정해진 공정 시간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비가역적으로 손상되며 전량 폐기해야 한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웨이퍼 시장은 2030년까지 20% 이상 공급 부족이 지속될 전망이어서 폐기된 물량을 재확보하기도 어렵다. 최대 1대당 5000억 원에 이르는 첨단 설비도 전원 차단 후 재가동 시 수개월의 복구 기간이 필요하고, 세정 설비 내부 공정용 마스크가 손상되면 신규 제작에만 한 달이 걸린다.

 

노조가 18일 파업 시 최소 20조~30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직접 공개 경고한 것은 이 위협이 실현 가능함을 노조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단기 손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 비중은 지난달 전체 수출의 38.1%(328억 3000만 달러)에 달했다. 삼성전자 5개 사업장의 반도체 라인이 멈추면 이 수치는 곧바로 한국 경제 성장률로 번진다. 2000여 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들의 연쇄 피해도 불가피하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전 세계에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사업 역량을 모두 갖춘 반도체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며 "내부 갈등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것은 공들여 쌓아온 반도체 제국을 무너뜨리는 자멸적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HBM과 파운드리 시장은 적기 공급에 대한 신뢰가 생존의 핵심"이라며 "삼성이 수십 년간 글로벌 빅테크들과 어렵게 쌓아온 파트너십이 노사 갈등이라는 내부 변수로 인해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논리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이 같은 산업 사이클에서 평균 7억 원의 성과급을 받을 때, 삼성전자 직원들이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보상을 받는다면 우수 인재의 이탈은 자연스러운 시장 반응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핵심 기술자 한 명이 빠져나가는 것은 단순한 결원이 아니라 수년치 기술 축적의 손실로 이어진다. 성과급 제도화를 통한 예측 가능한 보상 체계가 인재를 붙드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노조의 주장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문제는 그 방법론이다. 수십조 원 손실을 협상 카드로 공개 거론하며 '반도체 타격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이 글로벌 고객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 사태의 핵심 아이러니다.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느냐, 기각하느냐가 다음 분수령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시설이 공익상 중요한 시설이자 안전보호시설로 인정받으면 파업 범위에 제한이 걸린다. 그러나 법원 판단이 어느 쪽으로 나오더라도 노사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1분기에 57조 원을 벌어들인 회사와 그 수익을 함께 만든 노동자들의 보상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합의가 없는 한 이 충돌은 반복될 것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2028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이 위기를 어떻게 봉합하느냐는 단순한 노사 협상의 차원을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10년 경쟁력을 좌우하는 질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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