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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생산적 금융'의 역설 , 대출은 늘고 연체는 쌓여.. 은행권 딜레마

 

데일리연합 (SNSJTV) 김용두 기자 |  정부와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을 기치로 내걸고 혁신 기업·산업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를 독려하는 가운데, 국내 은행권이 묘한 압박 속에 놓이게 됐다.

 

대출을 늘리라는 정책 신호는 분명하지만, 이미 연체율 상승세가 가시화되면서 늘어나는 대출이 곧 늘어나는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음도 함께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아야 하는 상황, 은행권의 딜레마가 현실이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76%로 전월 대비 0.09%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5월(0.77%)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 상승폭이 0.03%포인트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기업 부문의 건전성 악화 속도가 세 배나 빠르다.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0.19%로 2023년 10월 이후 2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92%까지 치솟았다.

 

그중 중소법인 연체율은 1.02%로 지난 1월 0.89% 대비 0.13%포인트 오르며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도 0.78%로 올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한계 부실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는 흐름이 감지된다.

 

대출 잔액 또한 빠르게 불어났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 1분기 기업대출 잔액은 전 분기 대비 약 15조 원 증가해 859조 7737억 원에 달했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80조 7618억 원으로 6조 3356억 원, 대기업 대출은 179조 119억 원으로 8조 7127억 원 각각 늘었다. 대출이 늘어난 만큼 부실 지표도 동반 상승했다. 부채가 빠르게 팽창하면서 그 그늘 역시 짙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의 구조적 배경에는 생산적 금융이라는 정책 방향과 가계대출 규제 강화라는 두 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은행권이 혁신 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5대 금융그룹은 올해부터 5년간 약 508조 원 규모의 생산적·포용금융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공표했으며,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생산적 금융 관련 신규 여신에 핵심 성과지표(KPI)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독려하고 있다.

 

문제는 은행이 자체 판단으로 대출 규모를 줄이기도 어렵다는 데 있다. 정부의 기업 지원 및 지역균형발전 요구가 강한 만큼, 연체율 상승 신호가 감지되더라도 브레이크를 밟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는 이 우려를 수치로 뒷받침한다. 2분기 기업 신용위험지수는 대기업이 25, 중소기업은 36으로 직전 분기보다 모두 상승했다. 양(+)의 값은 신용위험 증가를 의미하는 만큼, 은행 스스로도 기업 부문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동전쟁 여파로 유가가 오르고 물류비가 상승하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수익성 악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점, 고환율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출금리까지 오르며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중동 리스크가 중소기업에는 원부자재 수급 차질, 대중동 수출 감소, 경영환경 전반의 복합 충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대출 확대가 건전성에 미치는 파장은 단순한 연체율 통계 이상이다.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높아 위험가중자산(RWA)을 키우고, 이는 보통주자본비율(CET1) 하락 압력으로 직결된다. 부실채권이 늘어날수록 은행은 대손충당금을 더 많이 쌓아야 하고, 이는 곧 당기순이익 감소로 이어진다.

 

실제로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NPL) 커버리지비율은 평균 171.8%로, 전년도 204.3% 대비 32.5%포인트나 하락했다. 부실채권 증가 속도가 충당금 적립 속도를 앞서고 있다는 뜻이다. 이 흐름이 이어지면 은행의 수익성과 자본 여력이 동시에 훼손될 수 있다.

 

금감원은 취약 부문을 중심으로 연체율 및 부실채권 발생 현황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은행권이 충분한 대손충당금을 쌓고, 상·매각 등을 통해 연체채권을 적극 정리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주요 은행들도 자체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은행은 AI 기술을 여신 심사에 도입해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고 있으며, 하나은행은 신용평가모형과 조기경보모형 고도화를 통해 부실 차주에 대한 사전 대응력을 키우고 있다. NH농협은행은 기업의 비재무 신용평가 체계인 벤치마크모형을 개선해 리스크 관리의 촘촘함을 더하겠다는 목표이고, 신한은행은 기업의 성장 단계·산업 특성·경쟁력 등을 종합 평가하는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영도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이 생산적 금융으로 본격 전환할 경우 기업대출 확대와 재무안정성 유지 간 불균형적 성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2026년은 국내 금융산업의 근간인 은행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시험하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권 관계자도 "기업대출 연체율 상승 가능성이 큰 만큼 은행들이 건전성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향후 여신 성과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늘려야 한다는 압력과 지켜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은행권의 줄타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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