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데일리연합(월간, 한국뉴스신문) 이성용 기자 | 학교에서 선생님이 ‘얘들아, 한국어 시간이다.’라고 하면 그 학생이나 선생님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마찬가지로, ‘얘들아, 한국사 시간이다.’라고 하면 그 학생이나 선생님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그렇다. 국어라고 했을 때는 우리의 말과 글을 지칭하지만, 한국어는 제3국인이 우리 언어를 부를 때의 호칭이다. 마찬가지로, 국사라고 했을 때는 우리의 역사를 지칭하지만, 한국사는 제3국인이 우리 역사를 부를 때의 호칭이다. 당연히 우리의 역사는 국사로 불러야 한다. 국기(國旗), 국악(國樂), 국가(國歌)가 같은 맥락의 용어다.
일제 통치 하에서 우리는 우리의 말과 글을 국어라 부르지 못하고 조선어라 한 적이 있다. 일본이 자국의 언어를 국어라 하면서 제3국인 조선의 언어를 조선어라 불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자국의 역사를 국사라 하고 제3국인 조선의 역사를 조선사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역사임에도 국사라 하지 못하고 조선사라 하였다. 그 조선사가 바로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한국사다. 우리는 우리 역사의 주체가 아닌 제3국인의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주인 의식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편한국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 한국사란 용어로 가득 차 있다. 문패에는 분명 ‘국사’로 되어있는데 안에 들어가니 온통 한국사다.
또, 국사편찬위원회라고 하였으니 다들 국사를 편찬하는 곳으로 생각하겠지만, 지금껏 국사를 편찬한 적도 없고 편찬할 수도 없다. 국사 편찬은 전근대 시대에나 가능한 것으로 현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모든 통치 자료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어 일정 기간 어느 누구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국사편찬’이란 이름을 단 기관에서 국정 교과서를 편찬하니 마치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편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벌떼처럼 일어나 역사에 손도 대지 말라고 했다.
대통령은 국정 책임자로서 교육 정책에 따라 검정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려 한 것밖에 없다. 기껏해야 아이들의 교과서 발행 체제를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대통령이 새로운 역사를 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도한 것이다. 검정이든 국정이든 교과서 집필은 역사 전문가가 하는 것이지 대통령이 사관(史官)을 따로 두고 자신의 의도대로 편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혼란에는 국사편찬위원회라는 이름도 일정부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홈페이지에는 ‘한국사 연구의 심화와 체계적 발전 및 국민의 역사인식 고양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홈페이지 어디에도 국사를 편찬한다는 말이 없다. 이름과 실상이 맞지 않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최고 연구 기관이 이름과 실상이 맞지 않은 채로 있다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서 당당할 수 있는 자산이자 이유이다. 그 한 축인 언어는 국립국어원이 담당하고 있고, 또 다른 한 축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는 그 이름이 실상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국사편찬위원회를 국립국어원에 준하는 이름으로 바꾸고 아울러 한국사도 국사로 바꾸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2. 교과서 집필 기준은 전문가 영역이다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업무지시 2호로 박근혜 정부 때 편찬한 국정 국사 교과서를 공식적으로 폐기하였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미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고 폐기를 주장하였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문제는 역사학자가 아닌 대통령이 합리적 근거도 없이 검정 교과서는 선(善), 국정 교과서는 악(惡)이라는 그릇된 판단 아래 이루어진 업무 지시라는 점이다.
국사 교과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 생산된 역사 자료와 이를 바탕으로 한 역사 연구, 그리고 역사 교육을 하기 위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이를 표로 정리하여 설명하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사료(史料)라 불리는 역사 자료는 다시 문헌(文獻) 사료와 유물(遺物) 그리고 유적(遺蹟)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역사 자료인 문헌을 다시 전근대와 현대로 나누어 살펴보면 전근대에는 자료를 생산하고 수집한 다음 역사서 편찬까지 이어진다.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편찬 사업은 고려 인종 때의 삼국사기(三國史記) 와 조선 문종 때 완성된 고려사(高麗史) 를 이어 조선왕조의 실록(實錄)이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러한 사료 외에도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라든가 동국통감(東國通鑑) 등 관찬(官撰) 사료와 함께 각종 국가 기록물들이 수없이 전해지고 있다.
반면 현대는 생산된 자료를 수집하기는 하나 편찬하는 단계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공공 기관에서 생산된 자료들은 주어진 법령에 따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어 일정 기간 열람이 금지된다. 당연히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한 역사서의 편찬은 이루어질 수 없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있어 마치 우리 역사를 편찬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이름처럼 국사를 편찬하지는 않는다. 즉 국가 주도로 자국의 역사를 편찬하는 일은 조선왕조의 실록으로 끝이 났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역사 자료를 토대로 연구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역사 연구다.
앞서 제시한 역사 자료를 대상으로 역사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역사적 관점과 연구 목적에 따라 다양한 역사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 역사 연구 단계로 이는 전문가 영역이다. 이들 전문 연구자들에 의해 축적된 연구 성과는 논문이나 학술서와 같은 결과물로 남게 된다.
그 중에는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쉽게 합의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연구자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어떤 것은 정설로 정착되고 어떤 것은 계속하여 이설이 존재한다. 이러한 전문가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이 억제되거나 전문성이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에 의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 역사인식의 다양성과 자주성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국정 국사 교과서를 폐기한 현 대통령이 이를 정면으로 위배한 기록을 남겼다. 대통령은 2018년 1월 2일 서울현충원을 방문하여 현충탑에 분향한 뒤 방명록에 적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건국 백 년을 준비하겠습니다.’라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중국 충칭[重慶] 임시정부 청사 방문 때도 같은 뜻을 밝힌 바 있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을 건국 100년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은 역사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설령 전문가라 하더라도 학계에서조차 이설이 있는 부분을 대통령이라는 힘을 빌려 단정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고 싶다면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보는 근거와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타 학설과의 논리적 모순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본다면 그 출발점이 상해 임시정부가 창립된 4월 13일인지, 한성 임시정부가 창립된 4월 23일인지, 아니면 각 임시정부가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된 9월 11일인지 그것부터 밝히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또, 건국을 했으면 왜 우리 대한민국 땅을 두고 수만 리 이국(異國)을 떠돌아다녔으며, 한반도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법을 집행하지 못하였으며,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서 외교권을 행사하지 못하였는지도 당연히 설명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1919년에 건국을 했으면 1941년 11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大韓民國建國綱領)은 왜 나왔으며, 1944년 8월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조선건국동맹은 왜 결성되었으며, 1945년 해방과 함께 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는 또 왜 조직되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연구자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 된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천명한 1919년 건국 설은 당장 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1919년 설을 채택하려면 앞의 논리적 모순을 해명해야 하며, 1948년 8월 15일 설을 채택하려면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야만 한다. 대통령이 이미 건국에 대한 집필 기준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연구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른 통설과 정설을 토대로 다음 단계인 역사 교육이 이루어진다. 역사 교육은 다시 정책 관여자의 교육 정책 수립과 역사 전문가의 교과서 편찬을 거쳐 일선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 먼저 교육 정책은 정책 관여자의 몫으로 사안에 따라서는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결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들은 각 과목의 국민 여론이 있고 관련 전문가의 요구가 있을 경우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를 거쳐 교육 정책을 수립한다. 국사 교과서의 경우 필수과목으로 할 것인지 선택과목으로 할 것인지의 여부와 검정으로 할 것인지 국정으로 할 것인지 여부 등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 교육 정책이다.
만약 국민의 여론이 있고 필요성이 제기되는데도 이를 수렴하여 검토하거나 정책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현 대통령이 취임 후 곧바로 국정교과서의 폐기를 지시한 것은 교육 정책의 일환으로서 정당한 지시였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이 검정 교과서의 문제점을 쇄신하기 위하여 국정 교과서 체제를 택한 것도 교육정책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한 결정이었다. 이는 모두 교육 정책 결정의 최종 책임자에게 부여된 임무이자 권한이기 때문이다.
교육 정책이 수립되면 교과서 집필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교과서를 집필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집필 기준을 어떤 사람이 어떻게 마련하는지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행히 최근에 입수된 집필기준 시안 개발 공청회 순서를 보면 그 정체의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 표를 보면 발표자는 고등학교 교사다.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참여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발표자가 고등학교 교사라면 대학교수는 한 명도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집필 기준은 건축물로 말하자면 설계도나 마찬가지다. 이 설계도에 따라 건축물이 완전히 달라지듯이 집필 기준에 따라 교과서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문가 한 명 없이 일선학교 교사 몇 명이서 집필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교사가 마련한 집필기준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교과서 집필에는 정작 대학 교수가 참여한다는 점이다.
현행 검정 제도에서는 각 출판사가 교수를 비롯한 집필진을 구성하여 교과서 시안을 마련한 다음 교육부의 심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교수들의 전문지식이 반영된 서술이라 하더라도 교사가 마련한 집필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가차 없이 퇴자를 맞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교과서 논란에서 어느 누구도 집필 기준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을 하지 않는다. 더구나 집필 기준을 마련하면 교과서 집필은 이미 그 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역사 해석의 다양성 주장은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음에도 교과서가 여러 종류이기만 하면 마치 역사 인식의 다양성이 실현될 수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도하였다.
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은 전문가 영역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논란은 전문가에게 맡겨 그 답을 요구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비전문가인 정치인이 학술적 내용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국론을 분열하고 갈등을 야기하는 것 외에 얻는 것이 없다.
논어(論語) 에 ‘군군신신(君君臣臣) 부부자자(父父子子)’라는 말이 있다. ‘임금은 임금노릇하며, 신하는 신하노릇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노릇하며, 자식은 자식 노릇해야 한다.’는 뜻이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금언이다.▩
3. 교과서 한 줄 안 읽고 교과서를 비판하는 지식인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3일 만에 자신이 적폐로 규정했던 국정 역사 교과서의 폐기를 전격(電擊) 지시했다. ‘획일적(劃一的) 역사관 강요’라는 것이 그 이유다. 역사 교과서가 하나면 획일화된 역사관을 강요하는 것이며, 여러 종류면 다양성이 보장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국정은 국가 권력이 역사 해석을 독점하는 것이며, 검정은 국가 권력의 개입 없이 역사학자들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 받는 가운데 편찬된 교과서라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현행 7종 검정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와는 달리 집필자의 자주성과 전문성이 충분히 보장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목적이 교육 수요자인 학생들에게 실현되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삼국사기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서를 비롯한 수많은 역사자료를 대상으로 역사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역사적 관점과 연구 목적에 따라 다양한 역사 해석을 제시하여 축적된 학설 중에서 정설이나 통설 위주로 학생들 수준에 맞는 내용을 엄선하여 편찬한 것이 교과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과서 집필자가 이들 학설 중에서 자신의 학문적 소신과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취사선택(取捨選擇)하여 집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 집필에는 교육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이 있어 반드시 그에 따라 편찬한 후 교육부 장관의 검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현재 초·중등교육법 제29조(교과용 도서의 사용) ①항에는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검정하거나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검정 교과서와 관련된 모든 권한은 교육부장관이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교육부장관의 위임을 받아 집필기준을 마련하고 출판사는 집필자를 구성하여 그 기준에 따라 교과서를 집필한 후 검정을 거치게 된다. 당연히 검정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충실해야 하며 집필자의 소신에 따라 집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교과서를 어떤 관점과 시각으로 쓸 것인지 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에 대해 안내한 것이 교육과정으로 교과서 집필의 근간이 된다. 이번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발표한 교육과정 시안을 보면 지금까지 전근대사와 근현대사가 대략 5:5 수준이었던 것이 2.5:7.5 수준으로 수정되어 근현대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만약 집필자가 전근대사의 비중이 높아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7.5:2.5로 바꾸어 편찬할 수 있을까?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교육과정 다음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 집필 기준으로 이는 더 구체적이고 세세하다(<표 참조>). 집필자는 이 기준에 따라야 하며 이 모든 것이 검정 심사의 대상이 된다. 이윤을 창출해야 할 민간 출판사에서는 편찬 과정에 투자한 많은 자금을 회수해야 하고, 또 교과서를 출판하여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당연히 집필자에게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을 지켜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집필자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자신이 집필한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당연히 집필기준을 떠나 자신의 학문적 소신에 따라 집필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집필자는 더 이상 자율적 편찬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덜 틀리고, 좀 더 보기 좋게 꾸밀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편집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이번 집필기준 시안 공청회에서 나온 아래 언급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은 교과서 집필자에게는 금과옥조로 여겨져 내용에 있는 한 글자 한 글자의 의미와 심지어 행간의 의미까지도 세세하게 살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따라 교과서의 방향, 내용, 분량들이 결정되고 이는 대다수 학교의 역사교육을 지배하게 된다.
<2017. 12. 27.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집필기준 시안 개발 2차 공청회 중에서>
이 글은 현행 7종 한국사 교과서 중 채택률이 가장 높은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가 현장에서 경험한 소회(所懷)를 솔직하게 언급한 것이다. 교육부의 집필 기준은 과거 군사정권에서 언론사에 내려진 보도지침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필자에게 자주성과 전문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는 곧 현행 검정 교과서도 아무리 여러 종류로 발행한다 하더라도 국정 교과서의 편찬 과정과 전혀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자율성이 제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검정이나 국정이나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가 발행된 하더라도 교육수요자인 학생들에게 역사 인식의 다양성 실현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설령 발행된 교과서 중에 다소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학생들은 학교에서 정해주는 하나의 교과서로 공부한다. 역사 인식의 다양성 실현은 7종 교과서를 모두 읽고 비교 검토할 때나 가능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하는 교과서 외에는 어떤 교과서가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렇다고 교사가 여러 종류의 교과서를 종합하여 친절하게 가르쳐주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국정 교과서나 검정 교과서나 학생들 입장에서 하나의 교과서로 공부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검정의 차별성이나 우월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번 토론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급이 자유발행제다. 자유발행제라는 것은 집필 기준 없이 집필자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편찬하여 학교에 보급한다는 제도다. 이는 검정제가 안고 있는 자율성 침해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솔직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발행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학능력시험을 비롯한 모든 국사 시험의 폐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출제의 기준으로 삼을 교과서를 특정할 수 없고 학설 문제가 제기될 경우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시험에도 출제되지 않는 국사 교과서를 일선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방대한 우리의 역사를 학생들 수준에 맞도록 편찬하기 위해서나 교육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위해서 집필 기준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국정 교과서나 검정 교과서는 1종과 7종의 숫자 차이 외에 아무런 차별성이 없다. 결국 국정 국사 교과서를 반대한 수많은 지식인과 국민들이 국정은 획일적 역사관을 강요하는 것인 반면 검정 교과서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한 주장은 진실을 호도한 선동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교과서는 학술서가 아니다. 검정이든 국정이든 집필 기준에 의해 편찬되는 현실에서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고 역사 인식의 다양성을 실현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역사학자들과 교육감을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들이 성명서를 발표하여 국정교과서는 악(惡), 검정교과서는 선(善)으로 낙인(烙印)하여 마침내 국정 국사 교과서의 명줄을 끊어 놓았다. 그들은 과연 학술서와 교과서를 구분할 수나 있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국정 국사 교과서를 반대한 지식인들 중에 교과서를 단 한 줄이라도 읽어본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지식인은 자신이 읽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8종 검정 교과서와 국정 교과서를 다 읽고 나서야 검정과 국정의 차별성이 눈에 들어온다. 교과서를 읽지 않고 교과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춘향전을 읽지 않고 춘향전에 대해 떠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교과서 한 줄 안 읽고 교과서를 반대한 지식인들의 행동은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다.▩
4. 다양성을 빙자한 검정 교과서는 폐기만이 답이다
교육부에서는 최근 2020학년도부터 사용할 국사 교과서 편찬을 위한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시안을 마련하여 세 차례의 공청회를 마쳤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비율을 종전의 약 5:5에서 2.5:7.5로 조정하고 집필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하였다. 아마도 집필자의 자율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로 보여진다.
그러나 과거 교학사 교과서 파동 때나 국정교과서 파동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교과서 수요자인 학생의 입장을 고려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교과서의 주인은 학생이며 학생들의 입장을 도외시한 교과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교과서 집필에는 집필 기준이 있어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 집필 기준이 양면성을 띠고 있다. 기준이 지나치게 세세하고 구체적이면 교과서별 차별이 없어져 굳이 여러 종으로 발행할 이유가 사라진다. 반면 집필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집필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면 교과서마다의 차별성이 확연하여 역사 인식의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교과서가 다르다는 것이지 역사 인식의 다양성을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교과서별 차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비교적 구체적이고 세세한 집필 기준에 의해 발행된 현행 7종 교과서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1) 빈약한 집필진-부실 교과서는 필연
2015년 국정 국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에 “민간이 발행하는 검인정교과서들은 모두 집필진 전원은 물론, 내용을 검토하는 연구위원과 검증위원들의 명단까지 공개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은 공개에 자신이 없고 당당하지 못하다는 고백이다.
정부가 집필진의 명단을 숨긴다면 우리는 집필진이 부실하거나 편향됐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당시 교육부에서는 집필진의 숫자뿐만 아니라 대부분 역사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였음에도 각계의 반발과 공세는 누그러들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대해 비난을 퍼부은 측에서는 검정 교과서 집필진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언급했어야 공평하다.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검정 교과서 집필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낸 바가 없다.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훨씬 많은 전문가가 참여하였거나 전문성이 뛰어났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그렇지가 않다. 아래가 현행 7종 검정 교과서의 집필진이다.
이를 보면 모든 검정 교과서의 필진 중에는 비전문가인 교사가 교수보다 훨씬 많다. 더구나 7종 교과서의 모든 교수 수를 합해도 국정교과서 교수 수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검정 7종은 고대와 고려, 그리고 조선을 아우르는 긴 역사를 다루는 부분에 많아야 두 명의 전문가가 전부다. 리베르스쿨의 경우 교사 1명이 고대와 중세(고려)를 집필하는가 하면 국권상실기를 다룬 5단원은 영어과 출신 회사 대표가 전담하였다. 7종 교과서 전반에 걸쳐 오역(誤譯)과 오류(誤謬), 그리고 왜곡(歪曲) 서술이 만연(蔓延)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역사 인식의 다양성-중구난방 서술의 다른 표현
검정 교과서 발행은 기본적으로 ‘다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르지 않다면 굳이 여러 종의 교과서를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검정 제도를 주장하는 측의 논리대로라면 이 ‘다름’은 곧 ‘역사 인식의 다양성’이라는 뜻이다. 명분이야 그럴 듯하지만 교육 수요자인 학생 입장에서는 차별 교육이고 공정하지 못한 교육일 뿐이다.
옹관묘(甕棺墓) 서술을 보더라도 옹관(甕棺) 사진을 실어놓고 버젓이 ‘독무덤’이라 하는가 하면, 어떤 교과서는 신석기 시대, 어떤 교과서는 철기시대의 무덤 양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에서는 신석기시대 무덤 양식으로 알고 답을 쓰면 오답이라는 국편의 답변을 받은 바도 있다. 암각화(巖刻畵)에 대해 두 면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설명한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일부 교과서에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또, 어떤 교과서에는 암각화라 하고 어떤 교과서에는 바위그림이라 했다. 학생들마다 서로 다르게 배우는 것이다.
1882년 조미 조약의 관세에 대해 비교적 높은 관세율을 적용했다는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낮은 비율의 관세를 부과했다는 교과서도 있다. 또, 관세를 부과한 사실만 서술한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교과서도 있다. 1894년 갑오개혁 때의 개국기년(開國紀年) 사용에 대해서도 다양한 서술은 이어진다. 처음으로 개국(開國)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고 한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개국기년을 사용했다는 교과서, 개국기원을 사용했다는 교과서, 아예 서술이 없는 교과서도 있다.
이 경우는 아예 서술이 없는 경우가 차라리 낫다. 개국(開國)은 연호가 아닐 뿐만 아니라 개국기년은 1894년이 아닌 1876년부터 이미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교과서마다 다른 서술에다 엉터리라는 오명까지 덮어썼다.
건국(建國) 논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단원 제목만 보더라도 건국 준비, 건국 노력, 독립 준비, 광복 준비 등 비슷한 듯 다른 용어를 쓰고 있다. 더구나 금성출판사는 건국이란 말이 거슬렸는지 ‘신국가 건설’이라는 이해 불가의 용어를 썼다. 신(新)이라는 글자가 ‘신세계’, ‘신세대’, ‘신여성’과 같이 추상적으로 사용되는 글자인데다 건설은 또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이렇듯 다양성은 곧 중구난방(衆口難防)과 동의어다.
문제는 채택율이다. 채택율이 높은 교과서는 내용이 충실하고 오류가 적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채택율의 차이에는 더 큰 역사 왜곡이 도사리고 있다. 가령 1948년 건국이 다수설이고 1919년 건국이 소수설이라 하더라도 채택률이 낮은 교과서에 다수설이 실리고 채택율이 높은 상위 3개 교과서에 소수설이 실릴 경우 소수설은 그 순간 다수설로 둔갑한다. 같은 또래 중 80%에 가까운 학생들이 상위 3개 출판사의 교과서로 공부하기 때문이다.
조일수호조규 무역규칙의 항세(港稅)에 관한 서술은 또 다른 왜곡을 보여준다. 채택률 하위 교과서에는 항세 부분이 아예 서술되지 않은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상위 3개 교과서에는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고 서술되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역규칙에서 무항세 허용으로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무역규칙 7칙에는 상선(商船)에 대해서는 배의 크기에 따라 항세를 차등 부과하였으며, 일본 정부 소속 선박 즉 관선(官船)에 대해서는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을 두었다. 당연히 서술하지 않은 교과서가 차라리 올바른 교과서이지만 80%에 가까운 학생들이 상위 3개 교과서로 공부하니 오류도 역사적 사실로 둔갑하게 된다.
4) 오류 수정 - 애초에 불가능
검정 교과서의 오류가 제기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는 오류가 있는 교과서는 검정 과정에서 거르면 되고, 나중에 문제가 있으면 그때마다 수정하면 된다고들 한다.
말은 쉽지만 현실은 그렇진 않다. 한때 교육부에서 오류 수정을 권고했을 때 집필자들은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고, 역사교육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시도”라며 수정 권고를 거부한 적이 있다.
그 성명 발표를 보는 순간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집필한 교과서조차 제대로 안 읽는 모양이다.’고 혼자 중얼거린 적이 있다. 솔직히 현행 검정 교과서는 오류가 곳곳에 널려 있다. 그런데도 집필자들이 수정 권고를 거부한 것을 보면서 과연 학자적 양심이나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든 적이 있다.
필자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교과서 출판사와 국사편찬위원회에 교과서 오류에 대해 수없이 많은 민원을 제기하였으며 상당 부분 수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제 제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교과서마다 오류가 예상외로 많은데다가 혼자 8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별 교과서의 단순 오류는 그나마 쉽게 수정하지만, 모든 교과서에 있는 학설 오류는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 경우 출판사는 국편에 책임을 미루고, 국편은 개별 출판사에 대해 관여할 입장이 아니라고 또 미룬다.
신라의 국사(國史)와 백서의 서기(書記)는 역사서가 아닌데도 역사서로 가르치고 있다. 진경산수(眞景山水)는 존재할 수도 없는 용어임에도 실경산수(實景山水) 다음에 등장한 산수화로 가르치고 있다. 동국진체는 최초의 학설 제기자가 초보적인 한문을 오역하면서 제시한 황당한 용어임에도 교과서에 실어 가르치고 있다. 1894년 고부민란 때 전봉준이 집강(執綱)에게 돌렸다는 사발통문(沙鉢通文)은 통문도 아닌 잡기(雜記)라는 지적에도 여전히 교과서에 실려 있다.
모든 교과서에 1873년 흥선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친정(親政) 시작을 선포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승정원일기나 고종실록 등 정사(正史)에는 1866년 2월 13일 조대비가 철렴(撤簾)하고 고종의 친정을 선포했음이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국편에서는 1873년 흥선대원군 하야와 친정 선포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필자에 요구에 최익현의 상소 중 ‘종친의 반열에 속하는 사람들은 단지 지위를 높이고 녹봉을 후하게 주어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함께 하도록 하고 나라의 정사에는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부분을 근거라고 제시하였다.
5) 평가 문제 - 다양성 강화는 평가 불가의 길
집필자의 자율성이 보장될수록 교과서별 서술의 출입(出入)은 점점 더 심해진다. 서술의 출입이란 어떤 책에는 있고 어떤 책에는 없는 것을 이른다. 교과서만 충실히 공부해도 어떤 시험에서도 문제가 없으려면 모든 교과서에 공통으로 서술된 내용을 출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당한 학생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 지문에는 현행 7종 중 3개 교과서에만 수록된 ‘수탈’이라는 단어와 어느 교과서에도 없는 ‘수탈 정책’이 출제되었다. 이에 대해 수차례의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그때마다 ‘현행 교과서와 학계의 통성을 근거로 출제했다.’는 답변만 계속 하고 있다. 현행 7종 교과서는 시험 출제자에게는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곳곳에 오류와 서술 출입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행 검정 국사 교과서는 다방면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몇 안 되는 집필진으로 인한 오역과 오류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다양성을 빙자한 역사 왜곡과 중구난방식 서술은 눈과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서로 다른 학설을 서로 다른 교과서에 실어놓고 다양성이라 강변(强辯)하고 있는 것이다.
검정제로 발행되는 여타 과목에서 서로 다른 학설을 서로 다른 학생에게 가르치는 경우는 없다. 국어 과목에서 학생들마다 다른 문법을 가르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것이 마치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역사는 하나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도 하나다. 다양한 역사 인식을 추구하려면 하나의 교과서에 담아서 가르쳐야 한다. 서로 다른 교과서에 서로 다른 사실이나 대립된 학설을 실어 가르치는 것은 국론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친한 친구끼리도 학교가 다르면 서로 다른 교과서로 서로 다는 내용을 배우는 현실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현행 검정 7종 교과서는 폐기만이 답이다.
5. 국사 교육 표준안을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으로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데 국사는 어떤 책으로 공부하면 좋을지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에는 8종 검정 교과서가 있고 시중에는 수험서가 넘쳐나지만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런데 막상 추천하려고 하니 교과서든 수험서든 떠오르는 책이 없다.
우선 ‘한국사’라는 이름의 고등학교 검정 교과서는 분량으로 보나 서술 출입(出入)으로 보나 너무나 다양하다. 분량 면에서는 가장 많은 것과 적은 것의 차이가 무려 1백 쪽이나 된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어느 교과서에는 있고 어느 교과서에는 없는 서술, 모든 교과서에 실려 있으나 역사를 왜곡한 서술, 일부 교과서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만 못한 엉터리 서술, 교과서마다 서로 다른 서술 등 한마디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이런 교과서를 두고 하나로 공부하자니 불안하고 8종을 다 보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중에 나와 있는 수험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8종 교과서와 앞서 출제된 내용들을 모두 담다 보니 대부분의 수험서가 1천 5백 쪽을 오르내린다. 의지할 곳 없는 수험생들은 결국 학원을 찾게 되고, 덩달아 국사 사교육 시장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고등학교 수준의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믿고 볼 수 있는 통일된 국사(國史)가 없기 때문이다. 국사 교과서 편찬을 위한 집필 기준이 있기는 하나 이는 집필의 방향을 정한 것이지 내용을 서술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집필 기준 마련에 참여하는 인사는 누가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하는지도 알 수 없다.
전문성은 갖추었는지, 좌우 균형은 이루었는지, 시대별 전문가가 골고루 참여하였는지 등 모두가 오리무중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담당자가 몇몇 지인에게 전화로 참여를 요청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것인지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다.
평가원에서 지난 12월에 시행한 3차 집필기준 시안 공청회 순서를 보면 평가원 소속 담당자와 현직 교사가 발제자 명단에 올라 있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이지 전문가가 아니다. 집필 기준은 비전문가인 교사가 마련하는데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는 정작 대부분이 교수다. 교수가 집필한 교과서를 교사가 마련한 집필 기준을 근거로 평가하여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한다.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집필 기준 마련 이후에 진행되는 교과서 편찬 과정은 또 다른 문제다. 집필 기준에 따라 교과서를 편찬할 때 어떤 자료를 근거로 편찬하는지 알 수 없다. 대체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우리역사넷’에 수록된 자료를 기본으로 편찬할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역사넷’의 자료는 그 분량이 방대한데다 애초에 잘못된 서술, 새로운 연구 성과가 반영되지 않은 서술, 논문으로 써서 수정하기 곤란한 사소한 오류 등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역사넷’의 내용은 수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모든 고등학교 교과서에 1873년 최익현의 흥선 대원군 탄핵 상소를 계기로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친정을 선포했다고 서술되어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최익현의 상소에는 흥선 대원군의 탄핵을 요구한 내용도, 고종의 친정을 요구한 내용도 없다. 흥선 대원군은 하야(下野)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며, 승정원일기나 고종 행장(行狀)을 보더라도 고종의 친정은 1866년 2월 13일에 이미 시작되었다.
또,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고부 민란이 일어나기 전인 1893년 말에 배포했다고 소개한 사발통문(沙鉢通文)도 실상은 통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잡기(雜記)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모두가 역사적 사실로 믿고 있는 오류들이 수정되지 않은 채 교과서에 수록되어 학생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류가 한 둘이 아니라는 점과 현행 교과서 편찬 체제에서는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방법은 ‘국사 교육 표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우리 국민이면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표준국어대사전을 편찬하듯이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등재된 자료를 비롯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고등학교 학생들 수준에서 알아야 할 내용을 선별하여 ‘국사 교육 표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각 시대별 전문가들을 모아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인 연구와 편찬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표준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된 담당 연구자들은 학계의 통설과 정설을 위주로 현행 고등학교 교과서 분량의 2~3배에 이르는 대략 1천 쪽 내외의 표준안을 마련하도록 한다.
연구자들은 기존 자료를 수합하여 별 논란이 없는 부분은 바로 정리하고, 이설(異說)이나 소수설이 필요한 경우 부기(附記)하여 참고할 수 있도록 하며,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수정하거나 추가하되, 학설의 대립이 첨예한 부분은 해당 분야 학회나 연구자 등에게 연구를 의뢰하여 결과를 도출하도록 하면 된다.
이렇게 정리된 표준안을 별도의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누구나 열람하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여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한다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표준안이 될 것이다.
현행 검정 교과서의 오류는 출판사마다 일일이 문제 제기하는 것도 어렵지만 출판사 입장에서 재량권을 넘어서는 부분도 적기 않기 때문에 잘못된 서술임에도 수정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표준안이 마련될 경우 문제 제기와 수정이 모두 표준안으로 일원화되기 때문에 효율적인 수정과 관리가 가능해진다.
국사 교육 표준안이 마련된다면 초·중·고 국사 교과서 편찬의 토대가 되고, 각종 시험 출제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검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출판사에서는 굳이 대학 교수가 아니더라도 교과서를 제대로 아는 능력 있는 교사와 출판사 전문 인력만 투입해도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잘만 운용하면 수험생들의 고충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사교육비 절감의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모든 내용이 역사 전문가에 의해 관리되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특정 세력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특히 국사 교과서 개정 때마다 반복되는 국론 분열과 갈등도 당연히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이를 축약 또는 재편집하거나 영어 또는 일본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번역하여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외국에 알릴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가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국사 교육 표준안’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의 유산을 힘입어 온갖 혜택을 받아 온 사람들로서 오늘의 시대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배우고 경험해 왔던 올바른 삶의 가치와 지혜를 현재에 살려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책임과 의무라고 믿는다. 이러한 우리의 반추가 개인이나 나라에게 적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없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과 같이 진리와 자유를 향한 8대 강령을 밝힌다'
1. 우리는 총체적 변화의 위기에 대응하여 한국 사회의 사상적 기반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확고히 함으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고, 실질적으로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전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올바른 사상과 가치관 형성)
2.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파괴하고자 하는 사상과 도전적 세력들을 거부하며, 자유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자유민주사회의 교육적 인간상을 성공적으로 길러낼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다(헌법적 가치 존중하는 교육적 인간상).
3.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임을 믿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토대로, 이론과 실천, 믿음과 행동, 사회적 빛과 소금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실질적으로 사회·정치·경제·문화·교육을 주도할 수 있는 도덕적 헤게모니를 갖추어 나간다(기독교적 세계관을 토대로 한 도덕적 헤게모니).
4. 우리는 주어진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고, 상황을 올바르게 지각할 수 있는 지성과 지혜를 갖추고, 행동하는 실천 역량을 갖추어 나간다(행동하는 실천역량과 책임).
5. 우리는 기성의 질서가 해체되는 시대적 속성을 극복하고, 갈등과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상생과 협력의 박애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데 촉매 역할을 한다(창조질서 회복과 박애공동체 형성).
6.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의 디지털 사고의 현실적 감각을 초월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을 보여주며, 고정된 관념의 틀을 벗어나 하나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창조적 사고를 통해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다(디지털 사고를 초월하는 창조적 변화).
7. 우리는 자랑스런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며 자유와 평등을 확대해 나가는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교회와 사회 개혁의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한다(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건설).
8.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서 이탈한 공교육을 바로잡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지성과 실천력을 갖춘 정직한 대한민국 지도자 양성에 힘쓴다. 이 같은 지도자의 역량과 자질을 준비하기 위하여 ‘다음세대’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고 지원한다(지성과 실천력 갖춘 정직한 지도자 양성).

/발행인/ 이종민·정영수 /편집인/ 김정일·이은옥·나윤서
/발행처/진리와자유·미래교육포럼 /발행일/ 2021. 11. 16.
/포럼 사무처/ 28635 충북 청주시 서원구 탑골로 46 산남교회 (043) 263-9705
/포럼 관련 문의/김정일 공동사무총장 010-9760 1933, 이은옥 간사 010-3431-2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