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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거버넌스의 붕괴, KBS 사장 선임 파행이 드러낸 구조적 적폐

위법 이사가 뽑은 사장이 계속 재임하는 나라, 근본 원인과 제도적 해법을 찾아서

 

데일리연합 (SNSJTV) 송동섭 기자 | 2026년 5월 13일, KBS 이사회 회의실은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재적 이사 11인 중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만 가결될 수 있는 '박장범 KBS 사장 임명제청 취소' 안건이 상정됐다. 그러나 이사 두 명이 불참했고, 결국 안건은 의결 정족수 미달로 부결됐다.

 

한 명은 건강상 이유를 댔고 다른 한 명은 아무 설명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단 두 사람의 부재가 한국 공영방송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순한 표결 결과를 넘어, 공영방송 거버넌스가 얼마나 취약하고 편향된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낱낱이 드러냈다.

 

이 사태의 실타래는 20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2인 상임위원 체제라는 파행적 구조 속에서 이진숙·김태규 체제로 KBS 이사 7인을 추천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들을 임명했다. 이 7인 이사들만이 참석한 임시이사회에서 박장범 후보자가 KBS 사장으로 제청됐고, 그해 11월 임명이 재가됐다. 그러나 2026년 1월 서울행정법원은 해당 이사 7인의 임명 자체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즉, 자격 없는 이사들이 뽑은 사장이 여전히 공영방송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법원이 임명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그 이사들이 내린 결정의 효력은 여전히 살아 있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국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구조적 결함을 정면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첫째, 방송통신위원회의 설계 자체가 정치적 중립성보다 정치적 지배를 용이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운용되어 왔다.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2인 상임위원 체제로 KBS 이사를 추천하는 행위가 가능했고, 이에 대한 사법적 제동이 걸렸음에도 이미 임명된 이사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은 관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법률의 틈새를 이용한 '알박기식' 임명이 사실상 제도적으로 허용된 것이다.

 

둘째, KBS이사회의 의결 구조가 책임 회피를 가능하게 만든다. 11인 이사 체제에서 6인 이상 찬성이라는 과반 요건은 표면적으로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 한두 명의 이사가 불참 또는 기권만으로도 정족수 미달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번처럼 중요한 안건에서 이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는 것을 제재할 수단이 없고, 불참으로 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제도적으로 묻기 어렵다. 이사직은 공적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수반해야 함에도, 현행 제도는 권한만 부여하고 책임은 비워두는 구조다.

 

셋째, 사법부의 판결과 행정·방송 거버넌스 사이에 실행 연결고리가 없다. 법원이 이사 7인의 임명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그 판결이 이사들의 과거 결정까지 소급하여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법리적으로는 '위법한 행정처분의 취소'와 '이미 이루어진 의결의 효력'이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법률적 공백을 메울 조항이 방송법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결국 법원의 판결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판결 공허'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법치주의의 실질적 작동을 방해하는 핵심적인 제도적 결함이다.

 

이처럼 복합적인 구조적 원인이 맞물리면서 문제 해결이 지연되는 것이다. 여야 구도로 갈린 이사회 구성, 책임 없는 불참, 방통위의 파행 운영, 방송법의 공백, 사법 판결의 현실적 무력화가 겹겹이 쌓여 KBS는 '위법하게 임명된 이사들이 뽑은 사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에 봉착하게 됐다. 이것은 단순히 박장범 사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가 낳은 필연적 귀결이다.

 

그렇다면 근본 대책은 무엇인가. 가장 시급한 것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적 장치 마련이다. 현행 방통위법은 상임위원의 수와 의결 정족수를 규정하고 있지만, 파행적 2인 체제에서도 핵심 권한 행사가 가능하도록 방치하는 조항들이 존재한다.

 

방통위가 법정 정원의 과반 이상으로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 등 핵심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명시적 금지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국회는 이를 방통위법 개정을 통해 입법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KBS 이사회 운영 규정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이사의 정당한 사유 없는 결석에 대해 공개적 소명 의무를 부과하고, 반복적 무단 불참 시 이사직 박탈 요건을 법제화해야 한다. 이사는 단순한 형식적 직위가 아니라 공적 수탁자로서의 위상을 가져야 한다.

 

이사직 수탁자 책임 조항을 방송법에 명문화하여, 고의적 불참으로 중요 안건의 의결을 방해하는 행위를 직무 유기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대의제적 책임 원칙을 방송 거버넌스에 적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위법 임명된 이사에 의한 의결의 효력에 관한 명시적 조항을 방송법과 행정절차법에 삽입해야 한다. 현재는 법원이 임명 처분을 취소하더라도 그 이사가 참여한 의결의 유·무효를 별도 소송으로 다투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법적 판단이 나와도 현실의 변화가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위법하게 임명된 구성원이 단독 또는 다수를 이루어 의결한 사항은 소급하여 무효로 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신설한다면, 유사한 사태에서 신속한 구제가 가능해진다.

 

나아가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편향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해법은 사장 선임 절차의 탈정치화다. 영국 BBC의 트러스티 모델처럼,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특정 행정 기관이 독점하는 구조를 개혁하여 시민사회, 학계, 언론계, 전문가 집단이 균형 있게 참여하는 복수 추천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방통위 단일 창구를 통한 추천 구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이 흔들리는 원천이다. 적어도 추천 권한을 분산시키고 국회 청문 절차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

 

이번 KBS이사회 부결 사태는 한국 공영방송이 처한 구조적 위기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법원 판결이 있어도 바뀌지 않는 현실, 공적 책임을 외면하는 이사, 정치 논리에 종속된 방통위, 제도적 공백을 방치해 온 입법부.

 

이 모든 요소가 중첩되어 KBS는 '정상화의 첫걸음을 뗄 기회'를 또 한 번 잃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공영방송의 정상화 시계가 늦춰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시계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진단에 가깝다.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은 공영방송이 정치 권력의 하청 기관이 아니라 독립적 공론장으로 기능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현재의 법 체계와 거버넌스 구조는 그 기대를 배신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박장범 사장의 재임 지속이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공영방송의 신뢰는 회복될 수 없다.

 

이제 공이 국회로 넘어갔다. 방송법 개정, 방통위법 개정, 이사회 운영 규정 강화를 통해 구조적 해법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이 같은 파행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될 것이다. 공영방송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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