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연합 (SNSJTV) 박용준 기자 | 26년 새해 글로벌 자본시장은 분명히 달라졌다. ESG는 더 이상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부가 지표가 아니다. 투자, 무역, 규제, 공급망 관리가 한 방향으로 수렴하면서, 지속가능성은 사실상 기업의 자금조달 능력과 시장 접근권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재편되고 있다. 다만 시장에 유통되는 수치와 해석 중 일부는 정교한 구분이 필요하다.
예컨대 “2026년 글로벌 ESG 투자자산 34조 달러”라는 수치는 블룸버그의 최신 확정치라기보다 PwC가 2022년 제시한 ESG 중심 기관투자 자산 전망치 33.9조 달러를 가리킨다. 반면 Bloomberg Intelligence는 2022년 ESG 자산이 30조 달러를 넘어섰고 2030년에는 40조 달러를 상회할 수 있다고 봤다.
즉 2026년 초 시장의 본질은 “ESG가 꺾였다”가 아니라, 과장된 구호형 ESG에서 자본배분형 ESG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
이 변화의 선두에는 유럽의 규제가 있다. 2026년 1월 1일부터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확정 시행기가 시작됐다. 유럽연합 집행위와 관세당국 설명에 따르면 수입업자는 허가된 CBAM 신고자로 등록하고, 일정 품목의 내재배출량을 보고·정산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사실상 탄소 가격을 무역의 문턱으로 끌어올린 제도다.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원가표에 원재료·인건비·물류비뿐 아니라 탄소배출량 데이터와 배출비용이 실질 항목으로 편입된 셈이다.
한국 정부도 2025년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중기부, 관세청 합동 설명회를 열어 배출량 산정 컨설팅과 설비개선 지원을 안내했고, “CBAM 대응 역량 강화”를 별도 정책 과제로 다뤘다. 이는 탄소가 더 이상 추상적 평판 이슈가 아니라, 수출 제조업의 현금흐름과 직결되는 비용이 됐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ESG 2.0의 핵심은 “탄소만 줄이면 된다”가 아니다. AI 열풍이 폭발하면서 기업 지속가능성의 무게중심이 물과 전력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수요가 2030년까지 약 945TWh로 늘어 2024년 대비 두 배 수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AI 최적화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는 같은 기간 4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다시 말해 생성형 AI 확산은 소프트웨어 혁신이면서 동시에 대규모 전력 소비 구조의 확대다. 이는 곧 전력단가, 전력망 안정성, 재생에너지 조달, 지역사회 수용성까지 기업 전략의 핵심 변수로 끌어올린다. “AI는 가볍고 디지털이라 친환경적”이라는 인식은 현 시점에서 이미 현실과 거리가 있다.
물 문제는 더 직접적이다. 데이터센터는 냉각을 위해 지역 기후와 설비 방식에 따라 상당한 양의 물을 사용한다. Google은 2025년 환경보고 기준으로 2024년 자사 수자원 보전 프로젝트를 통해 담수 소비량의 약 64%, 즉 45억 갤런을 보전·환원했다고 밝혔다.
Microsoft는 2024년부터 AI 워크로드에 최적화된 차세대 데이터센터 설계를 적용해 센터 한 곳당 연간 1억2500만 리터 이상의 냉각용 물 사용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WS도 2024년 말 기준 자사 ‘워터 포지티브’ 목표 달성률이 53%라고 공개했다.
중요한 점은 이들 기업이 스스로 “물 사용량이 문제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크기 때문에 정량 목표를 제시하고 냉각 기술과 보전 프로젝트를 경영의 전면에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ESG 2.0의 실체는 바로 이 지점, 즉 선언이 아니라 측정과 감축, 그리고 기술 대체에 있다.
물과 에너지가 왜 기업 생존 변수인가. 답은 산업 외부에도 있다. UNEP는 전 세계 인구의 최소 50%, 약 40억 명이 1년 중 적어도 한 달은 물 부족을 경험한다고 설명했고, 2025년에는 18억 명이 절대적 물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짚었다.
물 부족은 단지 가정용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물은 반도체, 철강, 화학, 배터리, 데이터센터, 식품, 의약품 생산의 공통 투입요소다. 전력 역시 마찬가지다. IEA는 2024년 세계 전력수요가 4.3% 증가했다고 집계했고, 이후 2025~2027년에도 높은 증가율이 지속될 것으로 봤다.
기업이 겪는 현실은 명확하다. 탄소는 규제 비용이 되고, 전력은 생산 지속성을 좌우하며, 물은 사회적 갈등과 입지 리스크를 키운다. 결국 미래 산업은 “누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느냐” 못지않게 “누가 더 적은 물과 더 안정적인 전력으로 그것을 운영하느냐”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ESG 2.0’은 구호인가, 실제 구조변화인가. 적어도 공시와 규제 측면에서는 구조변화에 가깝다. IFRS 재단은 2025년 기준 ISSB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도입했거나 도입 절차에 들어간 관할권이 37곳에 달하며, 이들이 세계 GDP의 약 60%, 글로벌 시가총액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유럽에선 CSRD와 CSDDD가 2025년 단순화 논의를 거치며 범위 조정과 부담 완화가 추진됐지만, 그것이 지속가능성 공시와 실사의 방향 자체를 되돌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업들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남았다. 이제 시장은 ESG 문구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데이터와 재무적 영향 설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2026년 초 현재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ESG를 할 것인가”가 아니라 “탄소·물·전력·인권 데이터를 얼마만큼 재무와 연결해 설명할 수 있는가”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이 변화가 특히 뼈아프다. 한국은 수출 제조업 비중이 높고,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크며, 반도체·배터리·철강·화학·자동차처럼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경제의 중심이다.
여기에 AI 인프라 확장까지 더해지면, 한국 기업은 이제 세 가지 질문에 동시에 답해야 한다. 첫째, EU CBAM과 같은 무역 규제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 배출량을 정밀하게 산정하고 있는가. 둘째, AI와 디지털 인프라 확장에 필요한 전력을 어떤 방식으로 안정 조달할 것인가. 셋째, 물 부족과 지역사회 갈등이 현실화될 때 생산거점과 데이터센터 운영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정부가 2025년 CBAM 합동 설명회를 수차례 열고 지원사업을 확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응이 늦은 기업일수록 규제 리스크뿐 아니라 거래처 이탈, 금융비용 상승, 납품 단가 압박을 동시에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물과 에너지는 인간 생존의 필수재인 동시에, 이제는 기업 생존의 필수재가 됐다. 반도체 공장은 초순수 없이는 돌아갈 수 없고, 데이터센터는 냉각과 전력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은 광범위한 전력망 안정성과 금속 공급망을 전제로 한다.
이 때문에 앞으로의 기업 경쟁력은 단순히 “친환경 이미지를 얼마나 잘 포장하는가”가 아니라, 물·에너지 집약도를 얼마나 낮추고 그 과정을 공개적으로 입증하는가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Google이 데이터센터 담수 조달의 86%를 물 고갈 위험이 낮거나 중간 수준인 지역에서 가져온다고 밝힌 점, Microsoft가 PUE와 WUE 같은 지표를 전면화하는 점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기업의 환경 전략이 브랜드 홍보에서 운영 효율 지표로 이동한 것이다.
여기서 글로벌 사회 속 기업의 역할 변화도 읽힌다. 과거 기업은 이익을 내고 고용을 창출하면 충분하다는 논리가 강했다. 그러나 2026년의 기업은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첫째, 기업은 에너지 전환의 수요자다. 재생에너지 구매계약(PPA), 효율 설비 도입, 저탄소 전력 조달이 단순한 친환경 선택이 아니라 사업 연속성의 수단이 됐다. 둘째, 기업은 지역 수자원의 사용자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대규모 제조시설은 지역사회와 물을 공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얼마를 썼는가”만이 아니라 “얼마를 줄였고 얼마나 돌려줬는가”까지 설명해야 한다. 셋째, 기업은 공시 주체다. 투자자와 소비자는 이제 비전보다 수치를 원한다. 넷째, 기업은 공급망 관리자다. 원청이 탄소와 물, 인권, 전력조달 기준을 협력사에 전파하지 못하면 결국 전체 공급망의 경쟁력이 흔들린다. ESG 2.0은 곧 기업을 생산주체에서 자원관리·데이터공시·사회적 조정의 주체로 바꾸는 흐름이다.
결국 2026년 1월 5일 이전 기준으로 확인되는 결론은 단순하다. 지속가능성은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무역·투자·운영·입지의 공통 언어가 됐다. 탄소는 비용이고, 전력은 생산성이며, 물은 존속 가능성이다. PwC의 33.9조 달러 전망이든 Bloomberg Intelligence의 2030년 40조 달러 시나리오든, 수치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의 방향은 다르지 않다.
자본은 점점 더 측정 가능한 감축 성과, 검증 가능한 공시, 물과 에너지 리스크에 대한 실질 대응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기업은 ESG를 ‘홍보팀의 언어’로 다뤄서는 안 된다. 재무팀, 생산팀, 구매팀, 전략팀, 이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생존 체계로 바꿔야 한다. 물과 에너지는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산업의 심장부로 들어왔고, 그 관리 능력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ESG 2.0 시대의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기업은 자원을 소비하는 기업인가, 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기업인가를 되돌아볼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