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경기침체는 이명박정부에서 원인을 제공한 후 심화되고 있다. 고환율 등 대기업ㆍ수출 위주 정책으로 대기업이 돈을 벌어 투자ㆍ고용 확대를 기대했으나 대기업은 수익금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놓기만 하였다. 그 결과 서민 구매력 감소, 시장 위축, 대기업 투자ㆍ고용 감소, 가계소득 감소, 가계부채 부실화, 내수부진의 악순환이 이어지며 대기업과 서민가계ㆍ중소기업의 소득 격차가 OECD 국가 최고수준으로 심화되었다.
수출 위주 대기업의 경영 전망도 대외경제 하방 리스크로 비관적이다. 환율 하락과 중국을 위시한 신흥공업국들의 약진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투톱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영업이익ㆍ시장점유율 급감 등 위기를 맞고 있다. 삼성이 카피할 수 있다면 다른 외국기업도 할 수 있다.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면 설 곳을 잃는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2분기 사상 최대인 1조1037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복지는 가계의 구매력을 증가시켜서 내수 활성화와 경제성장에 이바지한다. 시장이 생기면 기업은 새로운 투자기회를 찾게 되고 고용ㆍ소비가 회복된다. 획기적인 규제 완화와 금융 지원도 시장이 없으면 기업 투자심리를 자극하기 어렵다.
복지를 통한 지속적인 소득 증대는 궁극적으로 가계대출 감소에 이바지한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올해 163.8%로서 2008년 부동산 부실담보대출로 인한 금융위기 시절의 미국보다 40% 이상 높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일본의 가계부채는 완만히 감소해 왔으나 우리나라는 오히려 급격히 증가하였다.
부채는 언젠가는 갚아야 하므로 궁극적으로 소득 증대로 부채가 감소해야 소비심리 회복, 경기 활성화, 투자ㆍ고용 증가, 경제성장의 선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가계부채가 적정 수준으로 감소할 때까지 가계 소득 증대, 저금리, 부동산 규제 완화를 포함한 장기적인 재정ㆍ금융정책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서민ㆍ중소기업ㆍ소상공인 지원과 가계 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부양책으로 올해 총 41조원이 넘는 통화 완화 정책을 마련해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내년에도 경기부양 예산안을 올해 대비 5% 정도 증가시키며, 최대한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미 대출 악성화 추세가 완화되었다. 야당도 이 기조에 적극적인 소통과 협조가 요구된다.
하지만 재정절벽 상황에서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결국 국가부채를 심화시킨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수출ㆍ내수 모두 경기침체가 심화되며 국세가 3년 연속 계획보다 덜 걷히고 있다. 올해도 8조5000억 원 정도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내년 예산을 5조 원 정도 늘리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명박정부에 이어 재정건전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 대책의 일환으로 최근 지방세, 주민세, 자동차세, 담뱃값 등 서민 세금 인상, 서민 퇴직연금 삭감 등 서민부담을 증가시키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서민에게 돈 걷어서 서민 복지를? 비정규직 복지 증대만큼 정규직 복지 삭감? 그보다는 식품ㆍ의류ㆍ신발 등 생필품 외 소비세, 법인세 등 부자 증세가 바람직하고, 그보다는 ‘양적 완화’가 솔직한 현실적 대안이다.
‘양적 완화’는 야당의 서민 민생 복지안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단 기업과 은행의 곳간만 채워 주는 대신 복지자금으로 서민에게 직접 풀어서 특히 저소득층의 실질소득 증가에 이바지해야 한다. 선진국들도 재정절벽의 위기에서 경기침체를 우려하여 서민 증세는 최대한 자제해 왔다. 세금 올리고 재집권한 정부는 없다. 노무현정부가 대표적인 예이다.
‘최경환 호’ 통화 완화의 총규모는 우리나라 GDP(2013년 1조3045억5400만 US 달러, 세계 14위, 세계은행)의 약 3%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 일본, EU에 비하면 매우 소극적이다. 일본은행의 ‘양적 완화’는 매월 자산 매입으로 GDP(2013년 4조9015억3000만 US 달러, 세계 3위, 세계은행) 대비 1%(약 50조원) 남짓한 돈을 풀고 있으며 미국 연준은 최고조일 때 매월 GDP(2013년 1조6800억만 US 달러, 세계 1위, 세계은행) 대비 0.5%(약 80조원)를 풀었다. EU는 필요하다면 ‘양적 완화’의 규모를 증가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양적 완화’를 통한 복지에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있다. 국가부채 심화와 서민 증세의 부담 없이 경기를 활성화한다. 디플레를 억제하여 사업의욕을 고취시키고 경제성장을 유도한다. 원화 평가절하를 유도하여 수출경쟁력과 채산성을 향상시킨다. 인위적 환율 조정보다 시장 친화적이다. 수입단가 상승에 의한 인플레는 생필품, 원자재 등의 수입관세를 인하하고 세수부족분은 수출기업의 이익에 증세하면 된다. 현금가치 하락은 가계부채 부담을 경감시키고 부익부빈익빈을 완화한다.
또한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 상승을 유도한다. 현재 저평가된 대한민국 부동산은 중국을 필두로 한 초국적 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바겐세일 중이다. 과도한 부동산 디플레는 개인과 금융의 파산에 이어서 금융위기를 부른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도 미국의 부동산 디플레에 의하여 촉발되었다.
저평가된 주식은 외국인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현실을 자초하였다. 그 결과 주식시세는 기업가치보다는 외국인의 투자 동향에 의하여 좌우된다. ‘양적 완화’와 자산가치 상승은 초국적 자본의 무분별한 유입을 자제시키고 진입장벽을 높이며 아울러서 우리나라 경제의 내수 의존도를 높인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 유럽의 ‘양적 완화’ 출구전략과 금리인상으로 초국적 자본이 국내에서 급속히 빠져나갈 때 연착륙을 유도한다.
세계 10위권의 기축통화를 가진 대한민국 정부도 이제 자주적이고 선제적인 재정ㆍ통화 정책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할 역량이 있다. 복지를 통한 성장의 구현을 위하여 나라 살림의 큰 틀에 ‘양적 완화’가 꼭 필요하다.
박길홍 고려대학교 의학과 교수
ghpar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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