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연합 세계 보도망 확충 전 세계 6억 5000만뷰 송출망 확보!

중국 최초 핵복사 피해자 병세악화, ‘나는 살겠다’

  • 등록 2018.01.02 12:01:11
크게보기

 올해 겨울 의족을 신고 휄체어에 앉은 숭쉐원(宋学文)이

 지린(吉林) 고향집에서 눈을 쓰는 장면受访者供图 


 2001년의 숭쉐원

“가장 시름놓지 못할 것은 27개월되는 아들로서 현재 확실히 살길이 막막하다.”

12월 29일 중국CCTV(央视网)보도에 따르면 12월 28일 41세의 숭웨원(新京报)이 중국 신징보() 기자의 취재에서 사회가 제공하는 도움을 바라며 그가 치료를 통해 좀 더 살며 27개월 되는 아들을 동무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간은 1996년 1월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의 지화집단 건설공사(吉化集团建设公司)의 노동자 숭쉐원(宋学文)은 작업중 금속 사슬 하나를 주웠다. 두 시간후 숭쉐원은 현기증이 나고 메스꺼우며 신체가 붉게 붓고 수포가 가득하게 됐다. 

사후 조사에 따르면 숭쉐원이 주은 금속 사슬은 방사성 금속 이리듐-192였다. 진단 결과 숭쉐원의 전신 복사량은 약 2.4 gy, 국부적으로는 3738.8 gy, 0.5 gy정상적 복사량의 7477여 배에 달했다.

숭쉐원은 그후부터 7차 수술을 경력했는데 사지는 오른 팔을 제외하고 모두 절단했다. 

숭쉐원이 소송을 제기한후 지린성 고등법원(吉林省高院) 2000년 종심판결로 지화집단 건설공사가r선 결함탐지기 방사원을 분실한후 과다 분량으로 숭쉐원을 방사하여 종신장애를 초래했다고 종심판결을 내렸다. 이 공사는 이미 지급한 구조치료 비용 외 별도로 숭쉐원에게 48만 위안을 배상했다. 이 사건은 중국 최초의 핵복사 사례로서 숭쉐원은 이에 따라 당시 최대 핵피해자로 됐다.

그후 10여년 시간에 숭쉐원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으며 생활의 희망을 가지고 좋은 나날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숭쉐원의 병세가 악화되고 수시로 사망할 위험성이 있다고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치료가 방법이 없고 억지로 견디는 수밖에’

숭쉐원은 신징보의 취재에서 지난해 연말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고 현지 병원이 검사한 결과는 간경화와 난종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7월 베이징 307병원 재 검사 결과 눈에 방사성 백내장, 기억력 훼손, 오른 손 신경종양에 간경화와 위장출혈과 당뇨병으로 확인됐다. 의사는 몇십차 검사 항목을 열거하고 가장 빠르면 한달내 검사를 마무리하는데 비용이 적어도 5만 위안이 들며 이 비용에는 후속 치료비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너무도 비싸다. 병원에서 한주일 입원한후 방법이 없어 출원하고 귀가했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치료가 많은 돈을 쓰게 되며 그의 수입으로는 겨우 생활을 유지할 정도이고 밖에서 또 근 30만 위안 빚을 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도 당뇨병으로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올해 베이징에서 의사는 그의 간경화가 정맥류 확장을 초래하여 수시로 파열될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별 방법이 없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부모”잊을 수 없는 슬픔과 어쩔수 없는 눈빛’

사고 생 사흘후 부모와 누이 동생이 병원에 와 그를 방문했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쳐다 보기만하고 슬픔, 좌절과 참는 눈빛이었다.


그가 집을 떠날때는 건강한 청년이었는데 결과 사람이 갑자기 병상에 눕고 머리외 신체 기타 부위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지금 그가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픔이다. 하루 24시간 끊임없는 아픔이다. 핵복사를 당한 신체에서 가장 선명한 증상은 피부가 곪는 것이다. 그가 처음에는 오른 다리를 펴지 못하고 후에는 붉게 봇었으며 온몸에 수포가 생겼다. 그리고 또 근육괴사로서 원래 정상적이던 손가락이 천천히 젓가락처럼 변했다. 현재 그의 오른손 손가락도 절반 베어버렸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육체적 고통은 참을수 있지만 진정하게 힘든 것은 출원후의 정신적 스트레스이다. 

그가 처음 치료를 받을때 의사는 그가 기껏해야 40세까지 살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그는 41세이다. 현재 가장 불편한 것은 기억력 훼손이다. 어떤 사람은 두번째 만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근육도 위축되고 있다.


“最放心不下的就是27个月的儿子,但现在实在是走投无路。”昨日,41岁的宋学文告诉新京报记者,希望能得到来自社会的帮助,让他可以通过治疗多活一段时间,陪陪只有27个月的儿子。

时间回溯至1996年1月5日,20岁的吉化集团建设公司工人宋学文,在工作途中捡到一个金属链。两小时后,宋学文头晕恶心、身体红肿、布满水疱……

事后查明,宋学文所捡的金属链为放射性金属铱-192。经诊断,宋学文全身受照剂量约2.4gy,局部达3738.8gy,超过正常剂量0.5gy的7477多倍。此后宋学文历经7次手术,四肢除右胳膊外都已被截去。

宋学文提起诉讼后,吉林省高院2000年终审判决,吉化集团建设公司r射线探伤机放射源失落后,超剂量误照宋学文致其终身残疾。该公司除已支付的抢救治疗费用外,另行赔偿宋学文48万余元。此案是国内首例核辐射案,宋学文也成为当时受核伤害最严重的人。

此后十几年里,宋学文娶妻生子,他感觉生活又有了奔头,好日子就要开始了。但从去年开始,宋学文病情突然恶化,被告知随时可能离世。

谈治疗“现在没有办法,只能硬挺着”

新京报:现在身体情况怎么样?

宋学文:去年年底病情突然恶化,开始吐血。当地医院查出的结果是肝硬化和囊肿。今年7月在北京307医院复查,结果是眼睛有放射性白内障、记忆力损伤、右手神经瘤,还有肝硬化、胃肠道出血和糖尿病。医生列了几十个要检查的项目,最快一个月能检查完,费用最少要五万元,还不包括后续治疗。太贵了,在医院待了一个星期,没办法,我自己办出院回家了。

新京报:之前都经历了哪些治疗,效果怎么样?

宋学文:1996年核辐射昏迷后在307医院治疗。3年里,四肢中除了右胳膊,其他的都截去了部分。然后又从肚子上开始往伤口植皮,吃各种药。后来出院了,虽然身体感觉一直不是很好,但也没出过大问题,而且也没什么钱去复查。

新京报:接下来如何治疗,家里经济情况还能不能去维持(治疗)?

宋学文:治疗要花很多钱,家里的收入只能勉强维持生活,外面还欠了将近30万元的债。妻子也有糖尿病,每天要注射胰岛素。今年来北京,医生说我肝硬化导致了门静脉曲张,随时都可能破裂。但是现在没办法,只能硬挺着。

谈父母“忘不了他们忧伤无奈的眼神”

新京报:最初的那段时间,你是怎么挺过来的?

宋学文:出事后的第三天,父母和妹妹来医院看我。我们就互相那么看着对方。忘不了他们那天的眼神,充满了忧伤、无奈和强忍,看得出来他们不知道该说些什么。我能理解他们的心情,离家时还是个健康的大小伙子,结果突然人就躺在病床上,除了脑袋,身体其他地方都动不了。

我冲着他们强挤出一点笑,跟他们说我没事。就是从那一刻起,我告诉自己,既然什么都做不了,那就为了父母活下去。

新京报:对你而言,当时最痛苦的是什么?

宋学文:疼!24小时不间断的那种疼。受到核辐射,身体上最明显的一个症状就是皮肤溃烂。我最开始是右腿不能伸直,之后就变得红肿,全是水疱。还有就是肌肉坏死,眼看正常的手指,慢慢变得像筷子一样。现在我右手的手指也都被截去了一半儿。说实在的,这些肉体上的痛苦我还可以忍。真正让我感觉到压力很大的是,出院之后的精神压力,那段时间我很自卑。

新京报:孩子现在多大了?

宋学文:27个月,男孩儿,特别可爱、懂事儿。刚还叫我去吃饭。结果一个没站住,摔地上了。现在放心不下的就是我这个儿子,他还太小了。我唯一的想法就是能有个好身体,然后可以照顾他,给他一个保障。

新京报:儿子知道你生病了,而且很严重吗?

宋学文:孩子还小,很多事情不懂。但他知道照顾我,很听话,有时给我捶背。前几天我摔倒了,他赶紧去扶。但说实话,我现在的身体,就像脖子上悬着一把利剑,不知道什么时候就落下来了,心里真的是没底。

新京报:以后还有什么打算?

宋学文:当时第一次治疗的时候,医生说我只能活到40岁,今年我41岁了。其实这些年都习惯了,笑着面对吧。现在生活上的不便就是记忆力受到损伤,有的人见第二面就不记得了,肌肉也在萎缩。如果可以,多活一段时间,陪着孩子。

/ 央视网


데일리연합 온라인뉴스팀 김준호 & (길림신문통신) 기자 hidaily@naver.com









데일리연합 | 등록번호 : 서울 아02173 | 등록일 2008년 7월 17일 | 대표전화 : 1661-8995 사무소 :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529, 5층 (역삼동,함양재빌딩) | 발행인 : (주)데일리엠미디어 김용두 월간 한국뉴스 회장 : 이성용 | 주)한국미디어그룹 | 사업자번호 873-81-02031 | 충북 청주시 흥덕구 풍년로 148, 7층 모든 컨텐츠와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