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프로《731부대의 진실》방송 후 일본 네티즌들 분노,당시 일본군의 폭행 질책
네티즌: 731 죄행 요귀보다 더 무서워
8월 13일 밤, 일본 NHK텔레비죤방송국(주:일본의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은 《731부대의 진실》이라는 특별프로를 방송, 관중들을 인류역사상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잔인무도한 세균전연구센터에 접근시켜 2차 세계대전 역사중 가장 극악무도한 아시아편장을 목격하게 했다.
731부대는 중국항일전쟁 기간 중국침략 일본군이 생물전, 세균전 연구와 인체실험 해당 연구에 종사한 비밀군사의료부대의 별칭으로 본부기지는 할빈시 평방구에 위치했다. 자료에 따르면 731부대 세균실험과 인체실험 가운데서 사망한 중국인과 러시아인이 3000여명에 달했다.

731부대(사진내원: NHK 영상 캡처)
이번에 NHK텔레비죤방송국은 러시아로부터 원 731부대 성원의 자백 녹음자료를 얻었다. 이 성원들은 대부분 1945년에 쏘련홍군에 포로로 잡혀 씨비리에 수감되었고 하바롭스크법정에서 심판을 받았다.
20시간의 녹음자료는 731부대 핵심성원들이 중러 사형수를 ‘실험재료’로 세균무기 개발실험을 진행한 역사사실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 가운데는 관동군 군의관 부장의 자백도 있고 또한 중국인과 러시아인 살해에 직접 참여한 군의관과 병사의 자백도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부 문자자료만 발견했었다. 20시간에 달하는 자백 녹음자료는 당시 731부대의 포악을 완정하게 환원, 참으로 값지고 귀중한 자료이다!


20시간에 달하는 자백 록음자료는 당시 731부대의 폭악을 완정하게 환원했다.
프로는 또한 당시 731부대의 노병 인터뷰, 수백건 역사자료와 일부 당시의 다큐멘터리 전시를 통해 731부대의 잔인무도한 행위를 진실하게 폭로했다.
프로가 방송된 후 일본에서 강렬한 반향이 일어났다. 많은 정의의 일본 네티즌들은 분노하면서 당시 일본군의 폭행을 질책했다.

또한 많은 네티즌들은 자손후대를 위해 이 역사자료들을 잘 보존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히로히토 천왕은 〈종전조서〉를 방송하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선포했다. 이로써 8월 15일은 일본 2차 세계대전의‘패전일’로 되었다. 비록 72년이 지났지만 그 전쟁이 조성한 거대한 상처는 오늘까지 잊을 수 없다. NHK텔레비죤방송국은 일본‘패전일’에 즈음하여 《731부대의 진실》이라는 특집프로를 방송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재차 ‘8.15’의 역사의의를 사색하게 했다. 망각, 거짓말과의 대치는 일본사회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현실과제이다.
일본 항복 전후, 731부대의 절대다수 성원들이 일본으로 도망쳤다. 전 후(战后) 심판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731부대에 있었던 경력을 감추려 했다. 그들은 은둔하고 이름을 바꾸며 지어는 가사(假死)의 방식으로 전범심판을 피하기에 애썼다. 응당 심판 받아야 했던 일본 전범들은 악마의 허울을 벗은 채 공공연히 일본 정부기구, 군사부문, 의료기구, 학술기구 및 대학교와 전문대학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중요직무를 담당하며 지금까지 일본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731부대에 참가했던 기구 및 인원 명단(사진래원: NHK 영상 캡처)
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 네티즌들은 일본 민중 지어 대부분이 731부대의 진상을 모르고 있다고 표시했다. 비록 인류역사에서‘731’라는 단어가 공포, 마귀, 잔인무도 등 어휘와 연계되었지만 일본정부는 줄곧 이 인간성을 상실한 역사에 대한 승인을 거절하고 있다. 교또대학 의학부 자료관은 원래 731부대 세균전 관련 게시판을 설치했었지만 얼마 안되여 철수되었다. 일본군 731부대‘세균전’의 중국 피해자 가족이 일본에 가려 했지만 일본정부는 사증 발급을 거절했다. 일중 화해를 추진하는 민간 노력은 일본 외무성의 권력람용으로 장애에 부딪쳤다.
중일 관계중 역사문제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 왕의 부장은 일본의 집권자가 이 문제에서 어떻게 했는가는 우선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고 표시했다. 세상 사람들도 자연히 공론이 있기 마련이다. 70년전 전쟁에서 실패한 일본은 70년 후 더는 양심을 잃어서는 안된다. 계속하여 역사의 짊을 지고 갈 것인지 아니면 단호하게 과거와 절연할 것인지는 최종 일본이 자기절로 선택해야 한다.
전쟁 죄행에 대한 일본의 추궁은 철저하지 못하다.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는 사상이 씨앗을 남긴 것이다. 전쟁은 결속됐다. 하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못했다. 평화를 수호하는 명제도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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