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표
일본 미야자키국제대학 교수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운영이사
카터정부의 국가안보 자문관을 역임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2012년 출판한 『전략적 비전』에서 “미국은 세계질서를 위하여 NATO를 기반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가 되는 터키를 연결하고, 인도와는 동맹이 아닌 우호관계를 맺으며, 러시아와 협력하여 중국을 견제하여 세계질서를 유지하자”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문제가 부시행정부의 핵심정책이었다. 2009년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의 발전과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중국에 대처하기 위하여 2010년부터 소위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 Rebalancing)을 결정하고, 2020년까지 전 세계 미 해군의 60%를 이 지역에 재배치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울러 다른 한 축인 경제적 수단으로 일본을 포함한 12개국으로 구성된 환태평양파트너십(TPP)을 구축해왔다.
중국 시진핑의 외교철학은 ‘상호 이익과 윈-원의 공동운명체’와 ‘발전과 번영을 공유하는 이익공동체’에 기반한다고 한다. 이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후진타오정부가 지속해 온 ‘화해 세계와 평화적 발전’이란 개념에서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중국은 강대국 관계뿐만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우호 및 협력관계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다하고 있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 지난 35년 간 매년 두 자리 숫자의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생산설비에 과대한 투자를 하였으며, 2010년에는 일본을 능가하는 세계경제의 제2위 자리에 오르면서 현재 약 3조 달러 이상의 막대한 외화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는 오히려 중국경제에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2012년 이후 경제발전이 둔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을 GDP의 7%로 하향 수정하고 있으며, 수출 및 투자지향 정책에서 국내소비에 치중하는 소위 ‘신창타이’ 발전모델로 전환시켰다.
중국은 안보측면에 있어서는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이 미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에 대한 영유권 문제에서 일본과 충돌을 하였으며, 남중국해에서는 국가의 핵심이익이 미국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아시아판 NATO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혹독한 내외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타게 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2013년에 들어와서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하였다. 베이징대 왕용 교수에 따르면, “일대일로 정책은 시진핑 정부가 중국의 전략적 동원공간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서방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중국 전략가들의 구상을 수용하면서 실행에 옮겨졌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전문가들의 정책제안은 안보와 에너지수입 및 해양의 상업노선의 취약성에 대한 깊은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서 지금까지의 수세적인 행위에서 “방어를 위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 (offensive for defensive)”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대일로와 AIIB는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과 TPP에 대응하기 위한 반응이며, 이는 국제적 공공선에도 이바지하며 미국에도 기회와 도전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금년 1월 20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2016년 11월 그의 당선으로 인한 세계여론은 2차 세계대전 후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유지해온 패권국의 미래 역할에 대하여 긍정 보다 우려가 앞서고 있다. 특히 예상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상거래 외교(transactional diplomacy)’가 이러한 우려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우려론자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의 동맹과 적에 대하여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온 결과 그에 따른 징후는 여러 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2016년 7월 12일 헤이그 상설중제재판소 산하 국제해양법원이 중국이 필피핀의 주권에 대하여 불법을 행하였다는 결정에도 불구하고, 현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의 오랜 동맹에서 벗어나 중국과 경제를 중심으로 지정학적 동맹으로 옮겨가고 있다. 오랜 기간 미국과 정치적 마찰을 가져온 말레이시아도 중국과 안보유대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으로 중국과 가까운 라오스도 중국의 일대일로 경제정책에 더욱 매료되고 있다. 캄보디아도 시진핑의 방문과 함께 AIIB를 통해 예상되는 투자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여 중국과 더욱 밀착되고 있다. 중국과 남중국해에서 갈등을 빚어온 베트남은 적대국이었던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친구인 러시아와 계속하여 정치경제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태국의 군사정부도 중국과 무기수입 및 무역에서 강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 4월 사실상 미얀마의 국무총리가 된 아웅산 수지는 과거 군부가 지속해온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그의 첫 해외 방문국가로 중국을 택했다. 이는 앞으로 미얀마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에서도 경제 분야에서 예외 없이 중국과 밀접해지고 있다.
한편, 중동에서도 시리아문제를 둘러싸고 이란과 터키는 일관성 없고 소심한 미국을 배제한 체 러시아와 협력을 하고 있다. 푸틴은 석유감산을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사우디아라비아 및 카타르 등 권위주의국가들과 협력을 도모하고 있으며, 중동의 다른 국가에게도 미국 보다 러시아에 대한 호감이 증가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밀접한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도 EU탈퇴에 대한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였으며, 심지어 독일에서도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미국의 실패는 유럽으로 대량의 피난민 유입을 초래하였고, 범대서양무역투자파트너십(TTIP)도 사산 상태로 동맹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에 의해 점령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보듯이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기대에 전략적으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는 2016년 12월 16일 러시아 푸틴을 자기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온천장으로 초대하여 양국 간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태평양과 오호츠크해를 가르는 쿠릴열도의 최남단으로 홋가이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북방 4개 섬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을 선언한 날인 1945년 8월 15일 이후 9월 초에 소련에 의해서 불법 점령당한 섬들로써 그간 양국 간 국교수교에 걸림돌이 되어왔다. 일본인들에게는 고향으로 여겨지는 이 섬들이 전략적으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러시아가 이곳 두 개의 섬에 미사일기지를 설치하고 있다. 이번 일러 정상회담에 임했던 일본의 목적은 이들 섬의 반환을 최우선으로 관심을 가졌지만, 북방 4개 섬에 대한 영토분쟁이 없다는 푸틴의 주장에 따라 일본은 이 지역과 극동발전에 러시아와 협력을 위한 투자라는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선회하였다. 일·러정상회담을 통하여 러시아는 극동의 석유개발과 발전을 기대하며, 미국과 유럽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자세와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하여 의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당선자가 푸틴의 손을 들어 준다면 유럽과 중동에서 러시아의 영향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일본은 극동의 친구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짐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으로부터 오는 우려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일본의 아베는 푸틴이 다녀간 10일 후인 2016년 12월 26일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지역 시발점인 진주만 공격 75주년을 맞아 하와이를 방문하여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한 아리조나함 기념관에서 애도를 표했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히로시마 원폭현장을 방문한 것에 대한 보답의 형식이었으며 일본과 미국이 공동가치를 공유한다는 안보동맹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예상외로 러시아와의 협력을 모색하는 공화당의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하여 미국과 공조한 대러시아 제재정책이 실효성을 잃게 되었다. 이는 아베가 지난해 11월 17일 외국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트럼프 당선자를 방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일 트럼프가 취임 후 선거공약에서 강조한 TPP폐지와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대하여 이들 국가가 방위비를 더욱 증가시키기를 요구한다면,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이 이 지역 무역의 룰 메이커가 될 것이며, 이는 일본에 대하여 불길한 징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오는 방위비 증가 압력은 현재 GDP의 1%를 할애하고 있는 국방비 예산을 2%로 증가하게 되면 일본은 세계 제3위의 군사국가가 될 것이고, 나아가 아베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평화헌법을 개정하게 될 뿐만 아니라 안보불안을 느끼면서 지금까지 자제해온 저비용의 핵무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아시아는 트럼프가 원하는 군비증강의 길로 들어서는 상황이 될 것이다. 아베 수상이 진주만 연설을 한 날 오후에 일본 방위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트럼프시대의 미국과 중국관계는 어떻게 되나? 후버연구소의 코리 스체키가 조지타운대학의 리버 교수와 존스홉킨스대학의 코헨교수의 연구를 종합하여 발표한 ‘미국은 세계질서를 포기하는가?’라는 제목의 연구에서 미국의 현실이 강력히 반영되었다고 한 오바마 행정부의 ‘경비절약 및 역외균형정책’을 분석하였다. 오바마는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위하여 동맹국의 자율적 참여를 유도하고 미국이 해외분쟁에 개입을 절제하면 테러로 부터의 위험을 감소시킬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오히려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과 동맹국들에게 신뢰를 약화시켰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거대한 외화를 보유한 중국의 영향력이 이들 국가들에게 확대되어 왔다. 이러한 정책결과의 현상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만일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 후 선거기간에 선언했던 공약을 견지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한편 미국과 중국의 경제관계에서 시카고대학 폴슨연구소의 페이건바움 연구원은 중국의 국제기구에서 행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중국은 현 질서에 대하여 혁명적이지는 않지만 분열적이라고 본다. 중국은 마오쩌둥 시기에 세계혁명을 주장하였으나 개혁개방 후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로는 이 체제에서 다루기 어려운 이익상관자 및 안보무임승차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중국의 굴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현존하는 세계질서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이미 가입한 국제기구에서 현존하는 자유주의적 국제경제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이입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자들을 개별적으로 지지하면서 이 시스템을 분산시켜 다양화하려고 한다. 더불어 자신에게 더 많은 대표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에서 미국은 중국의 도전, 즉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AIIB의 도전에 대하여 주의 깊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과 동맹국의 안보에 치명적이지 않는 한 동맹국으로 하여금 양자택일의 상황에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어디에 자신의 핵심이익이 있는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문제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지역에 있어서의 룰과 규범과 기준이며, 자유주의적이며 개방의 시장경제에 기초한 경제 질서이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에 대처하기 위하여 아시아의 다양한 파트너와의 연결에 적극적이어야 하며, 자신의 힘(기술, 혁신, 글로벌 자본시장에의 연결)을 길러야 한다. 중국의 굴기에 대응하는 최선의 정책은 ‘더 강한 공격(offensive)’을 갖추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되면 미국은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가치에 기반 한 외교정책이 더욱 퇴색되고, 미국 자신을 위한 비즈니스와 군사이익의 ‘상거래 외교’로 돌아 설 것으로 예상된다. 상거래 계약이란 철저히 주고받는 빈틈없는 흥정이며, 이는 가치에 기초한 팍스 아메리카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트럼프의 내각구성을 보면 이러한 상황이 정치, 경제 등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국제질서의 지배국인 미국은 중국에 대하여 ‘공격적 대응’을 하는 반면, 굴기하는 중국은 미국에 대하여 ‘공격적 도전’을 하는 양자가 정면으로 대치하게 될 때 이는 어떤 현상을 초래할까? 트럼프 당선자가 선거기간 주장한 그의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2차 세계대전 후 지금까지 유지해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한 신고립주의의 ‘군사대국’ 미국과 막대한 외화를 보유한 ‘경제대국’ 중국이 대립하게 되며, 이에 따른 국제질서에 미칠 영향과 현재의 미국 동맹국들의 중미 양자 사이에서의 동향은 어떠한 현상이 될까?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극도의 불확실성의 상황으로 변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제국의 특징은 포용력에 있었고,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국의 특징은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든 실패로 이어졌든 자신감에 있었다.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저물고 있는가? 강대국들의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한국은 안보에서는 미국과 경제에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들 사이에서 한국은 사회 통합과 한반도 통합 그리고 통합된 민족의 중흥을 위하여 역사와 미래를 보는 ‘지혜’와 현실을 개혁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불어 모두를 화합할 수 있는 ‘정의와 책임감’이 필요한 때이다. 한국은 북한보다 경제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통일과 동북아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통합을 포함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 사이에서 외교력으로 강대국을 아우를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의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위기사에 대한 법적 문제는 길림신문 취재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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