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편집자의 말: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수많은 중국조선족은 세계 여러 나라, 지역에 진출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였다. 본지는 이번기부터 멀리 고향을 떠나 어려운 여건에서도 끈질긴 노력과 분투로 자신의 운명을 개변시킨 ‘글로벌조선족성공인’을 널리 홍보하여 조선족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취지로 본 기획을 통해 지금껏 알려지지않는 조선족성공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기로 한다. 한국, 일본, 미국 등 나라를 비롯하여 이국타향에서 조선족을 빛낸 성공인들이야말로 민족의 자랑이고 이 시대 존경할만한 창업자들이 아니겠는가! 여러 독자들과 지인들의 관심, 중시를 바란다.
상업지로서 일본최고의 땅값을 기록하고 있는 번화도시 긴자(銀座), 패션문화의 중심지로도 유명한 그곳에 자리잡은 네일샵 RAFFINE에서 ‘동경RAFFINE네일학원’ 원장 최분희씨를 만났다.
“저는 그렇다할만한 학력도 없는데요!”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환한 웃음과 맑고 잔잔한 목소리의 주인공이였다. 한편 세상의 편견에 면박을 주는 당당한 오기도 엿보였다.
고향이 료녕성 심양시인 분희는 일찍 중국심양중흥상업호텔(瀋陽中興商業大廈)에서 8년간 서비스업에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레스토랑, 화장품코너에서 주임 경리 등 주요직책을 맡았던 그녀는 2000년 일본어어학공부를 목표로 남편과 함께 일본센다이(仙台)에 오게 되었다.
일본어학교를 졸업한후 전업주부로 있는 몇년동안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는 그녀이다. 학력이 인생을 좌우지하는 요즘 세상에서 적어도 주변과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고 두 딸앞에서 당당한 엄마로 살기 위해 자기의 일을 갖고 싶었다는 분희. 발전한 일본에 몸을 잠그고 있는 동안 단 한가지만이라도 기술을 익히고 싶었다는 그녀다.
일본특유의 문화의 하나인 ‘장인정신’은 분희의 방황에 계기를 주었다. 섬세하고 정밀한 손기술을 대대로 전해가는, 일본인들의 전통의식에 흥취를 느끼게 된 것이다.
내 손끝에 기술을 담고 싶었다
2006년부터 근 1년간 파티시에, 프리저브드, 요리사 등 여러업종의 전문지식을 공부하면서 자기가 가야할 길을 모색하던중 네일아티스트 토노사키마이(外崎舞2016년 네일엑스포 전일본선수권대회 우승자)씨와 만나게 되었다.
미를 추구하는 여성의 특권을 남김없이 향수할 수 있는,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의 조화를 그녀에게서 느꼈다는 분희는 그 매력에 끌리워 네일아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그녀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태여난지 두달반 되는 둘째딸을 보육원에 맡기면서 일주일에 서너번씩 네일전문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2007년이였다. 전문분야의 언어장애때문에 힘든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거듭되는 연습과 노력으로 어려운 장벽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의 세배네배로 연습하면서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이론을 이해하고 기억했다는 그녀만의 학습방식이다.
전문학교과정을 거쳐 평균합격율이 30%밖에 안되는 네일리스트자격시험에서 단번에 1급을 따내고 말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러분야의 여성들과 만날 수 있는 네일리스트, 끊임없는 기술연마와 상상력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네일아트, 손끝에서 전해지는 마음과 마음의 대화… 분희는 네일아티스트의 매력에 점점 매혹되었다.
2009년 일본네일리스트협회 인정강사(認定講師)자격을 따내기 위해 분희는 상경을 결정했다. 갓 흥성하기 시작한 업종이였던만큼 그때 센다이에는 인정강사자격증코스가 없었던 것이다. 고민끝에 그녀는 두 딸을 고향의 부모님께 맡기고 주말부부의 형식을 택하였다.
동경에서 네일명문학교에 다니면서 일본네일협회가 인정하는 강사자격을 따낸 그는 네일리스트를 배양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엑스포, 뷰티월드 등 네일협회의 여러가지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과 시험관자격을 갖게 되었다.
NPO법인네일리스트협회 정회원, NPO법인일본네일리스트협회본부 인정강사, JNE네일리스트기술검정시험시험관, JNA제일네일검정시험시험관 등 자격증은 전문기술영역에 엄격한 일본사회에 굳건히 발붙일 수 있는 자본으로 되었다.
2010년 6월, 드디여 긴자중심거리에 자기의 샵RAFFINE를 담크게 오픈했다. 하얀색과 연분홍색의 고급스러운 조화로 이름처럼 세련된 분위기의 샵이다. 99%를 차지하는 일본인고객과 일본의 유명한 네일리스트가 자주 드나드는 분희의 근거지이자 안식처, 그리고 99%를 차지하는 중국인 네일리스트지망생으로 붐비는 배움의 터전이다. 샵을 오픈하면서 동시에 설립한 학원에서 이미 300여명을 졸업시켰고 시험합격율을 98%정도로 끌어올렸다 한다.
며칠전에 제2호점을 동경이케부쿠로(池袋)에 오픈한 최분희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일류의 일에는 일류의 마음이 필요’ 일본의 서비스문화를 중국에 전파하고 싶다
최근 중국네일협회가 네일인정체계CPMA를 설립했다. 네일리스트, 네일강사, 네일전문학교와 네일상픔에 대한 규범과 통일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네일리스의 기술, 그리고 네일샵의 서비스와 관리수준의 발전을 목적으로 중국네일협회가 자체로 발상한 체계이다.
CPMA의 부리사장을 맡은 최분희는 요즘 한달에 한번씩 북경, 상해, 광주, 성도, 정주, 심양 등 중국의 중심도시에 강의하러 가야 한다.
네일에 대한 중국사람과 일본사람의 인식이 다른 것처럼 네일리스트의 교육방식도 다르다고 한다.
중국일경우 먼저 샵에 제자로 들어와서 선배한테서 배우고 손님을 상대로 연습을 하면서 기술을 연마한다. 특별한 자격중이 필요없다.
일본일경우 먼저 학교에 와서 이론을 배우고 충분한 실천을 거친후 시험을 거쳐 자격증이 있어야 샵에서 손님을 맞을 수 있는데 빨라야 1년혹은 1년반의 시간이 걸린다.
현재 중국에서 네일리스트의 지위가 너무 낮고 네일에 대한 인식이 너무 차하기때문에 고객들의 요구가 높지 않다. 재료가 절반, 기술이 절반인 네일은 자칫 조절을 잘 못하면 손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최분희였다.
그리고 테블하나를 마주하고 진행되는 네일업이 궁극적인 기술을 손님에게 제공하는것은 당연한 일이고 1대 1의 접근거리에서의 스킨십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커뮤니케이션의 장소이고 아름다움을 의탁받는 정말 어려운 직업이다. 때문에 자신의 미의식을 높이고 자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네일업계에서는 상식이라고 말하는 분희이다.
이런 네일문화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그녀는 중국국내용 ‘전업네일기술체계계렬교재1’과 ‘전업네일기술체계계렬교재2’를 만들었다. 그리고 ‘美甲帮’ 전업인터넷강의도 맡았다.
분희가 꾸는 꿈
중국에서 흔히 말하는 풀뿌리네일리스트들을 볼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지하상가에서 책상하나 걸상하나에 싼 가격으로 아주 짧은 시간내에 여느 잡지에 실린 표본의 흉내를 내면서 웃음소리 하나 없이 묵묵히 손님을 대하는 그들이, 언젠가는 네일리스트가 가방하나와 자신의 손끝으로 꽃피는 삶을 창조할 수 있는 그런 직업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을 위해 정확한 네일문화를 하루빨리 중국에 전파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대중국과 고대이집트에서 매니큐어가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봐도 네일은 여성들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뷰티아이템인 동시에 스쳐 지날 수 없는 패션중의 하나이다.
중국부유층의 소비자와 그들을 상대하고 있는 네일리스트가 점차 늘어 나면서 네일리스트뿐만 아니라 전문학교강사를 대상으로 최분희의 강의를 요구하는 곳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네일세계의 첫발자욱을 일본에서 내디딘 최분희는 섬세하고 정확하고 책임성있는 기술과 더불어 일본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모데나시’(환대)의 서비스문화를 중국의 네일업계에 전수하는 메신저가 될 것이다.
/리홍매 일본특파원
위기사에 대한 법적 문제는 길림신문 취재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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