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인터넷, 텔레비전을 보면 성폭행 기사가 끊임없다. 기사의 대부분은 자신을 방어하기 힘든 여성, 미성년자, 장애우가 피해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가해자로는 수차례 동일 행각을 벌인 파렴치한 자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폭행 관련 기사가 쏟아지다 보니 그로 인한 국민들의 사회적 피로감이 엄청 나다. 나는 변호사로서 성폭행 사건을 다수 변호해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가해자 개인의 책임만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성장한 10 자녀를 둔 A(남)와 C(여)의 재혼 C의 아들 B와
A의 딸 2명을 방치 사춘기 호기심으로 B가 딸 2명을 강체추행(?)
A(남)는 네 번 결혼하게 된다. 첫째 부인은 딸을 낳은 후 둘째인 아들 B를 출산하던 중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당시 A는 산재로 인하여 허리에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있었기에 부인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하였다. 이후 2남매를 엄마 없이 키우기가 막막했던 A는 두 번째 부인과 재혼을 하지만, 두 번째 부인은 재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으로 자살한다. 그리고 A는 세 번째 부인을 만났다. 그러나 세 번째 부인은 A와 혼인신고만 하였을 뿐, 얼마 되지도 않는 A의 재산을 노린 사기꾼이었다. 그래서 결국 세 번째 부인과도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A는 박복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자살할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2남매를 바라보며 삶의 용기를 이어갔고,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래서 A는 심기일전하여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혼자서라도 2남매를 잘 키워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성실하게 일을 함으로써 수익도 상당히 올렸다.
그렇게 일에만 전념하던 A의 성실성을 지켜보고 있던 지인 한 분이 2006년경 C(여)를 소개시켜 주었다. 돈도 어느 정도 벌었고, 16살인 B에겐 아직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A 역시 모질게 앞만 보고 달려온 터라 삶에 지쳐 있었고, 엄마 없이 커가는 B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숨어 있었다. 소개 받은 C는 전 남편 사이에 낳은 딸 두 명(9살, 6살)을 키우고 있는 이혼녀였다. C는 A의 처지를 알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무엇보다 B를 친아들처럼 대해 주면서 두 명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인생이 그렇듯이 인간의 다짐이 영원할 수만 있으랴.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A였지만 C와의 관계가 발전될수록 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A와 C는 같이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렇게 해서 A는 네 번째 혼인을 하였다. 다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 1가구 2주택에 해당되어 양도세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2년 내에 한 쪽 집을 정리하고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A의 집에는 C, 아들 B, 딸 두 명, 이렇게 5명이 동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2년도 못 가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파탄에 이른다. 정말이지 한 치 앞도 못 보는 게 인간이란 말이 실감난다고나 할까....
동거 이후 A와 C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기 일쑤였다. 당시 C의 아들인 B는 혈기 왕성한 질풍노도의 사춘기 학생이었고, 늦은 밤에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여동생 두 명과 함께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B가 여동생 두 명을 강제 추행한 것이다. 강제추행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폭력을 행사했다거나, 강제로 삽입을 했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라 여성의 특정 부위를 더듬는 수준이었다. B는 이러한 행동을 여러 차례 반복하였고, 우연히 이를 알게 된 C는 경악 그 자체였다. 그래서 C는 B로부터 다시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고, A는 B를 따끔하게 야단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이후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수입이 줄어들면서 A와 C 사이에 불화가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그 불화 속에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틈에 B는 다시 여동생 두 명을 상대로 같은 방법으로 몇 차례 같은 행동을 하였다. 이를 알게 된 A는 C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터라 B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등에 관한법률위반(13세미만 미성년자강간 등)으로 고소하였고, C와 B를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래서 B는 등굣길에 긴급 체포되어 구속되었고, 나는 이 때 C와 B를 만나 사건을 수임하게 되었다.
그 즉시 B부터 만났다. B는 부모님이 항상 집에 늦게 들어오고, 여동생 두 명과 계속 같이 놀다보니 호기심이 나서 몇 번 더듬었던 것이 버릇이 되어 계속 했다는 것이다. B의 말에 따르면 여동생 두 명도 B의 특정 부위를 만지며 같이 재미있게 놀았다는 것이다. 진실은 신만이 알겠지만, 나로선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 A는 딸들이 저항할 수 없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B가 강제로 추행을 했다고 주장하며 법정에서 팽팽히 맞섰다. 이 형사사건의 결말은 B의 행위가 통상의 강제추행에 비해 죄질이 약하고, 보호처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C에게 감호를 위탁하되, 장기 보호관찰을 받는 것으로 정리되었고, 민사소송에선 약 5천만 원을 배상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B는 이후 개선하여 착실하게 졸업하였고 현재는 군에 입대했다. 가끔씩 연락이 오는데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진다.
성범죄는 사후대비보다 사전예방이 더 중요 성교육에
성범죄교육을 함께 해야 성교육의 1차 책임은 가정, 2차는 교육기관
씁쓸하다. 성범죄는 사전예방책과 사후대비책으로 구별하는 게 일반적이다. 전자는 성교육으로, 후자는 형벌로 대표되어진다. 성범죄는 일단 일어나면 깨진 유리조각과 같이 사후대비책이 아무리 잘 정비되어 있어도 이미 늦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사전예방책이 더 중요하고, 그 만큼 성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위 사례를 다시 들어가 보자.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1차적인 책임이 B에게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A와 C는 자녀 셋을 공동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치소에서 B에게 물어보니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은 주로 성병과 임신에 치중해 있었다. 그때 난 학교에선 왜 성범죄에 대해서 교육을 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견으로는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의 1차 책임은 가정에 있다. 자식들에게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하는 부모는 있어도, 면전에서 성범죄는 저지르지 말라고 교육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것인가? 도둑질보다 성범죄가 더 큰 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성교육의 2차 책임은 교육기관에 있다고 본다. 성병이나, 임신과정 등에만 중심을 둘 것이 아니라 성범죄의 중대성, 성범죄에 따른 형사처벌의 무거움, 성범죄 피해자의 피해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열거․교육함으로써 사춘기 학생들 스스로가 진지한 고민과 자기성찰을 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을 보호할 여력이 현저히 부족한 미성년자나 장애우를 상대로 한 성범죄의 비윤리성에 대해서는 보다 진지한 교육이 따라야 함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사후대비책을 여기에서 논하는 것은 지면상, 그리고 내용상 한계가 있으므로 생략한다).
나부터 변해야겠다. 나는 아들이 2명인데 조만간 성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시기가 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부터 성교육의 1차 교육기관으로서 실질적인 성교육과 함께 성범죄의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역할을 다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 또한 간접적인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성범죄의 가해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