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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선구이사장 배고픔과 고통 없는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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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과 고통이 없는, 모두가 행복하고 향기로운 세상 만들자”

. ▲ 빨간 밥차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선구 이사장

 

매일 끼니 걱정으로 신음하는 홀몸 어르신들의 무료급식을 위해 ‘사랑의 빨간 밥차’를 운행하여 주 8회 이상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구촌사랑의쌀독’, ‘강남사랑이동푸드마켓’ 노인행복지원센터 등을 운영하여 취약계층에게 식료품 및 생필품 지원에도 앞장서고 있는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선구 이사장을 만났다.

 

(사)사랑이쌀나눔운동본부는 전국 300만 소외계층에게 식량과 무료급식 지원 사업을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경로당을 비롯해 미자립 복지시설, 무료급식 단체 등 소외계층에게 쌀과 식료품을 지원해 연간 150만 명의 먹거리를 해결하고 있다.

 

또한, 모델하우스 개관, 결혼식, 사무실 이전, 개업 등의 행사에서 한순간 사용했다가 버려지는 축하 화환 대신 쌀로 받는 ‘쌀 화환’ 보내기 캠페인을 벌여 해당 지역의 불우한 이웃과 나눔으로써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고 있다.

 

언제부터 나눔 봉사를 시작하셨나요?

1997년 IMF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건설회사를 35년간 운영했었다. 그러나 IMF 때 연대보증으로 연쇄 부도가 나면서 전 재산이 경매로 넘어가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1998년 죽으려고 하다가 2년여 동안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계속 책만 읽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2000년도에 극동정보대학교에서 외래교수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가 도산하기 전에 (사)한국신장협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했었는데, 전 과기처장관을 2번 지내고 한국과학기술원 설립을 주도하신 정근모 이사장을 모시고 7년 동안 협회장으로서 신장병 환자에게 신장을 나누는 나눔 봉사를 했던 경력을 대학 측이 크게 인정한 것이다.

당시 한경직 목사, 조용기 목사, 이만신 목사, 김창인 목사 등 귀한 분들이 함께했다. 결국 외래 교수직을 수락하면서 그것을 계기로 사회생활을 다시 하게 되었고, 신학 공부도 열심히 해서 목사 안수도 받았다. 두 번째 삶을 시작한 것이다.

새 삶과 함께 목회 활동을 하면서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소외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소외된 계층, 노숙자, 장애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서 2006년 10월에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를 설립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는 어떤 일들을 하나요?


. ▲ 계양구청에서 사랑의 쌀 나눔 콘서트 - 케냐 두 아이 초청 불치병 치료.위한 바자회. 재정지원 등.

 

 설립한 지 13년째인 나눔운동본부는 ‘사랑의 빨간 밥차’, ‘사랑의쌀독’, ‘강남사랑나눔아동푸드마켓’ 노인행복지원센터를 통해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즉 쌀, 밥, 반찬 등 먹거리와 의류를 나누는 운동이다.

연간 약 1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있는 ‘사랑의 빨간 밥차’는 연간 약 50여만 명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농산물과 식품은 인천 삼산농산물도매시장에서 잉여 농산물을 기증받아 사랑의빨간밥차를 지원하고 서울 가락동시장은 강남 이동푸드마켓을 지원하여 생필품과 함께 연간 60여만 명을 돕고, 300여개의 복지시설에도 반찬거리와 농산물 , 생필품, 의류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연간 150만 명의 먹거리를 지원한다.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한 탁아소에 3만 여명이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료인 밀가루와 식용유, 설탕, 마요네즈 등을 보냈다. 향후 빨간밥차가 북한에 들어가서 직접 밥을 지어 북한의 굶주린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해 급식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바람이며 소망이다.

 

 사랑의 쌀 나눔 운동본부는 그 동안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2012년 10월에 화재가 난 적이 있다. 당시 행주대교 부근에 밥차를 지원하는 주방시설과 물류창고가 있었는데 옆 음식점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밥차와 창고, 주방 등이 완전히 불에 타버렸다. 물류창고에는 쌀 20톤과 반찬, 의류, 주방기구 등이 가득 있었다. 당시 피해액으로는 환산하면 4억 원이 넘는 피해였다. 정말 절망적이었다. 매일 500여 명의 홀몸노인과 장애인,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무료급식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이웃사랑은 꽃을 피웠다. 주방시설 제공과 함께 500명분의 추어탕과 자장면, 700명분의 도시락 등을 지원 받아 단 하루도 무료급식이 중단되지 않았다. 또 떡 8kg짜리 80상자, 김치 10kg짜리 20상자, 성금 1천만 원, 삼계탕 500명분과 1억 5천만 원 상당의 ‘사랑의 빨간 밥차’를 ‘사랑의 열매 중앙회’를 통해 고려아연이 기부해줬다.

 

또 한 가지는 그동안 주방 일을 도맡아 하며 밥차 아줌마로 봉사에 앞장섰던 아내(이정숙 사모)가 암에 걸렸었다. 매일 500명이 먹을 수 있는 밥과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주방 봉사원의 90%가 여성인데 이들을 직접 이끌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암이 발병했지만 초기라서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암이 재발되지 않도록 많은 이들의 기도 속에 무료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후 완치가 됐는데,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화재로 인해 서울역 무료급식을 매주 2회에서 1회로 줄였을 때였다. 식단도 밥과 된장찌개, 깍두기가 전부였다. 그때 70대 중반의 한 할머니가 깨끗이 비운 식판을 들고 오시더니 “많이 힘드시죠, 반찬값에 보태세요”라며 가슴팍에서 흰 편지봉투를 꺼내 주셨는데, 수없이 폈다 접은 흔적이 있는 10만 원이 들어있었다. 손주 차려주는 점심 한 끼가 큰 위로가 됐다며 돈이 얼마 되지 않아 미안하다면서 건네 준 흰 봉투. 그 할머니는 쪽방에서 남편의 병간호를 받으며 후도암 투병 생활을 하는 기초 생활 수급자였습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어렵더라도 결코 봉사를 쉬지 않겠노라고 결심을 하게 됐다. 그 후 지금까지 급식 횟수를 단 한 번도 줄이거나 멈추지 않고 무료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지구촌 사랑의 쌀독’과 ‘노인행복지원센터’에 대한 소개 바랍니다.

지구촌 사랑의 쌀독은 국내와 해외의 어려운 극빈층 이웃들에게 구제와 전도를 위해 복음과 함께 사랑의 쌀을 지원해 주는 교량 역할을 담당한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그 나눔이 개인 및 기업, 단체 기부 행렬로 이어져 국내 24개 지역, 해외 30개 국가와 지역으로 뻗어 나갔다.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땅끝 어디에도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리라’ 이 사명으로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전국 교회에 사랑의 쌀독을 설치해 전도와 구제 사역을 함께 펼치는데, 많은교회와 목사님들의 참여를 바란다.

 

노인행복지원센터는 건강한 노후, 행복한 100세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의 어르신들을 내 부모님처럼 섬기는 곳이다. 2013년 10월에 개교하여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이, 더 넓게, 더 유익하게 지역의 어르신들이 행복한 노후를 영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야외 실습 활동, 그리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제도를 도입하여 건강한 노후의 삶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국악 교실, 건강 강좌, 웃음 치료, 치매 교육, 감성 힐링 터치, 노래교실 등 각 분야의 전문 강사진은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최고 명강사 과정 강사진의 재능기부를 통해 수준 높은 교육복지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더 많은 노인 분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기업체들의 참여와 협조를 바란다.

 

‘착한 사업장 전국연합회’와 ‘행복한 날 한끼 나눔운동’에 대한 소개 바랍니다.

착한 사업장이란 기업이나 점포 등 사업장의 수익금 일부를 십시일반 나눔을 실천하여 사회에 환원하는 뜻으로 소외계층을 돕는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착한 사업장을 뜻한다. 현재 전국에 210여 개가 넘는 착한사업장과 선한교회들이 뜻있는 사회공헌에 앞정 서고 있다.

 

착한사업장인증서와 인증 현판을 제공하고 각종 언론보도 등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한 홍보, 사랑 나눔 모금함 설치해 나눔을 실천하는 존경받는 착한 사업장으로 소비자들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며 연말에 사회공헌도에 따라 착한사업장 선정과 표창을 실시하고 있다.

 

행복한 날 함께 나누기란 생일, 결혼기념일, 환갑, 칠순, 고회, 개업식, 창립기념일 등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날을 기념하여 몇몇 사람의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용으로 더 많은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한 끼 식사를 나눔으로써 더욱 값지고 뜻있고 기억에 남는 축복의 날로 만드는 것이다.

끝으로, 나눔운동본부는 개인 후원을 넘어 범국민적 운동으로 정부기관, 기업, 사회단체 등의 사랑 나눔 실천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아주 작은 정성이라도 서로서로 십시일반 나눔정신으로 함께 해나간다면 배고픔과 고통이 없는, 우리모두가 행복하고 향기로운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확신한다.

임학근 기자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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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한 화가는 성화로 외길을 걷고 있다

이 요한 화가에게 있어서의 그림은 지나간 그림 보다는 평생에 남는 최고의 작품에 도전하는 것이다. 성화를 그리기 위해 이스라엘에 직접 가서 그들의 문화 속에서 사역했던 예수의 생생한 모습을 그리고 쉽을 뿐이다. 기독교에서 사순절을 보내면서 예수 고난의 모습을 한국뉴스에 기재해 본다. 이 요한 권사는 성화를 그리는 화가이다. 그가 처음부터 성화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인물작가가 되기를 원하였지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여러 번 번민 하다가 결단하고 시작한 것이 성화였다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귀한 성화작가로서 자리 메김 하기까지는 79년 반 아이크의 작품을 통해 감명받고 성서작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30여 년 전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예술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후원자도 없고, 모델도 없는 아무 조건도 갖추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림 그리기를 밤이 새도록 그리다가 잘못되면 다시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의 그림은 눈물이었고, 기쁨이었다. 성경을 그림 작품으로 표현해 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거기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 모습을 구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기도였다. 어느 날 한 소녀의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