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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명성교회, 섬김의 리더십으로 한국교회 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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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한국교회 농어촌 장학사업으로 선교에 큰 이바지


      ▲ 장학관 입사생 동계수련

 

어려운 이웃과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을 위한 선교로 칭송 받아..

 

명성교회의 선교는 주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명성교회 성도들의 순례였다. 성도들의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현장이었고, 특히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을 위한 장학선교는 그 동안 한국교회를 세워온 근원인 농어촌 목회자의 헌신과 노력이었고, 김삼환 원로 목사가 경험했던 농어촌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의 사명이었다.

 

결국, 섬김과 나눔 봉사를 통한 희생의 실천이 오늘의 명성교회를 만들어 놓았고, 명성교회는 이제 제2의 선교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섬기기로 시작하고 있다. 계속해서 희생과 섬김으로 이웃사랑의 실천에 모범을 보이고 있는 명성교회는 한 명의 의인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어둠을 밝히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영성과 인성과 그리고 지성을 갖춘 글로벌 크리스천 리더를 양육하기 위해 원로목사 김삼환 목사에 의한 교회개척 초기부터 장학선교의 사명을 꾸준히 이어 진행해 가고 있다.

 

 


                           사진 2 ▲ 광주장학관 전경

 

어려서부터 가난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살아 온 김삼환 목사(현재 명성교회 원로목사)는 명성교회가 자립하기도 전인 1983년 개척 초기 부터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당시 김신호, 임동규, 남병식 전도사와 중고등학생 12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였으며, 가정형편으로 중등교육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성도들을 위해 고등학교 과정의 명성야간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85년에는 장학선교를 보다 체계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교회에 장학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고 그해 3월에는 농어촌 목회자의 자녀들을 위해 교회 인근 주택 한 채를 매입해 10

명의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 하였다.

 

하나님의 인재를 키우는 명성교회 장학위원회

 

명성교회 장학위원회 이종순 장로(이하 이 장로)는 “당시 김삼환 담임목사님께서 농촌가정에서 혹독한 가난을 경험하며 성장했고, 교회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가 되셨기에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시작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로는 “평소 목사님 설교 시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인재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늘 말씀하셨고, 이 때문에 장학사업이 교회개척 4년 만에 실천된 것으로 안다.”며 “서울에서 시작된 장학관이 현재 전국 7개 도시에 계속 세워져 지금까지 5,082명의 학생이 큰 도움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전국 7곳에 설립된 명성장학관

 

 


                                      사진3 ▲ 대구장학관 전경

 

 

 지방장학관 1호는 전남 목포에 설립됐다. 목포 주변의 섬 출신 학생들은 서울유학은 엄두도 못 내고 목포까지 나와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사례비가 거의 없는 섬 교회 교역자들은 등록금 걱정 뿐 아니라 비싼 하숙비, 자취방, 월세를 걱정해야했다. 무료장학관은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줬다.

 

이어 광주, 전주, 순천에 장학관이 순차적으로 설립됐고 대구와 부산으로 확대됐다. 이렇듯 명성장학관은 현재 7개 도시에 전체 수용인원 230명 규모로 성장해 연간 3억여 원의 교회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동안 장학관에만 105억 원의 예산이 지출됐다.

 

2003년에는 총 건축비 12억 원이 든 목포장학관의 재산권과 운영권 등 권리 일체를 목포노회에 양도하였다.

 

장학관에서 공부한 수많은 학생들이 목회자, 교수, 외교관, 변호사, 의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장학위원회의 큰 보람이다.

 

특별히 세계로금란교회 주성민 목사는 명성교회 장학관을 잊지 못한다. 주 목사는“시골교회에서 목회했던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신 뒤 서울로 올라와 신문을 돌리고, 독서실 총무로 일하며 어렵게 지낼 때, 명성교회의 배려로 장학관에서 2년 간 머물 수 있었다.”며“힘들었을 때 이곳에서 믿음을 재충전하고 신학교에 입학해 목회자로 거듭났다.”고 회고했다.

 


                           사진 4 ▲ 목포장학관 전경사

 

제1기 서울장학관 출신으로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우주호(52·한양대) 교수도 “성악가로 자리매김하고 활동할 수 있기까지 교회의 많은 도움을 받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고 했다.

 

101명이 생활하는 서울 명성장학관 이선희(55) 사감은 “영양사와 조리사를 두고 맛있는 식단을 짜는데 주력한다며, 전액 무료로 운영되는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입소 2년 차인 강하은(24·한성대) 양은“규칙적인 생활과 예배로 신앙성장에도 유익이 되고 있다”며 “또래 친구들과 토론도 많이 하고 다양한 정보도 공유할 수 있는 장학관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국내외 장학사업에 총 184여억 원 지원

 

명성교회 장학선교의 확장은 장학관 운영에서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장학금 규모면에서도 큰 발전을 이루어 왔다. 1987년에는 장학금 지급대상을 해외 유학생에게 까지 확대, 윤철호 전도사(가레트 신학교 박사과정)에게 연 7,000달러의 장학금 전달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해외 유학 장학생을 2명(한상화, 김인수) 더 추가하여 총 3명에게 각각 연 7,000달러를 전달하였다.

 

1989년에는 장학위원회를 장학관 운영부, 국내장학부, 해외장학부로 확대 개편하였으며, 2월 26일에는 장학위원회 헌신예배를 드리고 국내 장학생 35명에게 총 400여만 원의 장학

 

금을, 해외 유학생에게는 1인당 7,000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하였고, 8월에는 독일의 이승현 목사에게 해외유학장학금을 제공하는 등 이후 명성교회의 장학금 지원규모는 꾸준히 확대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사진 5 ▲ 순천장학관 전경

 

 

 금년 2학기에도 2억원(연간 4억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생활이 어려운 대학생, 오지에서 헌신하는 선교사의 자녀들, 그리고 해외유학생 등 200여명의 학생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특히 글로벌 크리스천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2005년 4월부터 다윗아카데미를 설립, 이의 운영에 필요한 장학기금 25억 원을 조성하여 별도로 운영하고 있으며, 2010년 2월에는 그동안 김삼환 원로목사가 외부 강사 사례비와 집안의 경조사금 등 사재를 모두 모아 교회에 기부한 60억 원을 은파장학기금으로 조성하여 매년 10~20여명의 대학생들에게 1인당 300여만 원씩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도 명성교회는 장학기금을 계속 확충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며, 이 기금들이 전문적이고도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의 담당기구를 설치하여 운영하게 할 계획이다.

 

장학사업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오태호(59·사회복지학 박사) 집사는 “교회는 복음전파와 해외선교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기독교신앙을 가지고 정진해 나가는 청소년과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통해 자신감과 긍지를 심어주는 것 또한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명성교회가 유독 장학 사업에 정성을 쏟는 이유는 김삼환 원로목사가 설교할 때 자주 사용한 예화에서 찾을 수 있다. 김 목사는 안동 경안성서신학원 재학 시절, 개학에 맞춰 어머니가 싸주시는 송편을 학교에 갖고 왔다. 음식이 귀하고 항상 배고팠던 시절이라 사물함에 넣어두고 혼자 먹으려 했다고 한다.

 


                                           사진 6 ▲ 전주장학관 전경

 

그런데 6명이 기숙사 한 방을 쓰고 있어 혼자 몰래 먹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결국 송편은 다 상하고 말았다. 이때 김 목사는 “혼자 몰래 먹는 것은 기쁨도 없고, 결국 손해만 본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고, 나눔과 섬김, 사랑의 목회를 지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목회

 

명성교회는 장학사업 외에도 1,000여 곳의 농어촌교회 및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2018년부터 ‘빛과 소금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2012년엔 서울 연남동에 거처를 마련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기증했고, 2010년 아시아 최초로 민영교도소인 소망교도소 설립을 주도했다. 또 안동성소병원과 영양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해 2002년에는 에디오피아에 최신 시설을 갖춘 명성기독병원(MCM : MYUNGSUNG Christian Medical center)을 설립했다.

 

한국의료선교의 새장을 열었다는 점에서‘에티오피아의 세브란스 병원“으로 불리고 있으며, 2018년 타임지 주관 세계 병원평가에서 아프리카지역 최우수병원으로 선정되었다.

 

이 장로는 “우리교회는 앞으로 장학사업은 물론 선교와 봉사, 나눔의 사역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며“2019년인 올해에는 탈북자를 비롯해 다문화가정과 알코울 ·도박 중독자를 돕는 일에도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명성교회의 선교가 한국교회 부흥의 모퉁이 돌이 되었다면, 앞으로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아름다운 성교를 통해 더 좋은 기독교의 아름다운 유산들을 후대에 남겨 주어야 할 것이다.

 

이성용 기자  sylee57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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